조선 11대 중종의 두번째 왕비 장경왕후가 잠들어 있는 고양 서삼릉의 희릉(禧陵)입니다. 원래는 1515년(중종10) 서울 강남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태종)의 서쪽에 있었으나, 1537년(중종 32)에 현재의 자리로 천릉하였습니다.
1544년 중종을 현재의 예릉(철종)자리로 장사를 지내면서 동원이강릉의 희릉이 되었으나, 문정왕후(중종의 2계비)가 중종의 릉을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의 정릉으로 천릉하면서 단릉이 되었습니다. 능의 좌우로 있어야 할 수라간과 수복방은 아직 복원되지 못 하였습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서삼릉에서 희릉의 위치를 표시한 참고 그림입니다
- 능의 구성
희릉은 조선 11대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 윤씨의 단릉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침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무석인은 큼직한 이목구비와 당당하고 위엄 있는 자세로 칼을 쥐고 있으며 갑옷의 조각 수법을 보면 작고 섬세한 문양들을 촘촘히 새기고 있다. 문석인 역시 큼직한 체구에 맞게 홀 역시 크게 묘사되어 있으며 두 손을 노출시켜 맞잡고 있다. 소매의 안쪽으로 작은 소매가 한 번 더 돌아가는 이중 소매를 보여 주고 있다.
- 능의 역사
1515년(중종 10)에 장경왕후 윤씨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의 헌릉(獻陵) 서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1537년(중종 32)에 희릉 조성 당시에서 문제점이 있다는 김안로의 주장에 따라, 현재의 자리로 천장하였다.
이후 1544년(중종 39)에 중종이 세상을 떠나자 중종의 능을 희릉 서쪽 언덕(현 철종 예릉)에 조성하면서 동원이강릉 형식으로 취하고 능호를 정릉(靖陵)이라 하였으나, 1562년(명종 17)에 중종의 능을 현 서울 강남구로 천장하면서 다시 희릉으로 부르게 되었다.
- 장경왕후(章敬王后) 이야기
장경왕후 윤씨(재세 : 1491년 음력 7월 6일 ~ 1515년 음력 3월 2일)는 본관이 파평인 파원부원군 윤여필과 순천부부인 박씨의 딸로 호현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중종 1년(1506)에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淑儀, 내명부 종2품)로 책봉되었다가, 중종의 첫 번째 왕비가 폐위되면서 이듬해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 사이에서 효혜공주와 인종을 낳았으며, 1515년(중종 10)에 인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경복궁 동궁별전에서 25세로 세상을 떠났다.
▼ 중종의 가계도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서삼릉의 희릉의 주인은 장경왕후 윤씨 입니다. 장경왕후는 인종을 낳은후에 7일만에 세상을 떠났으니 25세 였습니다, 너무나도 복이 없는 왕비였습니다.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는 아버지가 중종반정에 가담하지 않은 죄로 인하여 폐비되었던 왕비인데, 나중에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 수라간과 수복방이 없는 상태의 희릉입니다.
▼ 배위상태를 보면 바닥이 전돌이 아닌 박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 정자각의 여러 모습입니다.
▼ 정자각 서계로 이어지는 신로가 안보입니다.
▼ 신로를 보면 사초지앞까지 뻗어 있습니다.
▼ 예감에는 뚜껑이 덮혀 있는데, 왕릉에서는 처음 보는 모양입니다
▼ 사초지 위에 있는 능침은 올라 갈 수 없기 때문에 자료사진으로 대신합니다.
▼ 동계도 서계와 마찬가지로 향로와 어로가 안보입니다.
▼ 운계의 소맷돌의 눔양으로 마모가 되어서 무슨 문양인지 알 수 없습니다
▼ 정자각의 배례청에서 바라보는 홍살문의 모습니다.
▼ 비각에서 올려다 보는 능침입니다.
▼ 희릉의 능침 자료사진입니다.
▼ 양쪽에 망주석과 장명등의 자료사진입니다. 장명등은 8각으로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 망주석의 세호의 모습을 보면 형태는 호랑이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예전 릉의 망주석의 세호 보다는 문양이 추가 되었습니다.
▼ 릉의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는 각각 둘씩 세워져 있는데, 대표로 문인석과 무인석, 석마를 넣어 보았습니다.
▼ 석양과 석호의 모습을 정면에서 찍은 자료사진입니다.
▼ 비각의 모습입니다.
▼ 표석의 앞과 뒷면의 자료사진입니다. 음기를 읽어 보면 표석을 세운때가 영조29년(1753년)에 세웠는데, 장경왕후가 세상을 떠난지 238년만에 표석을 세웠습니다. 표석이 늦게 만들어진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
묘표 전면 : 조선국 장경왕후 희릉
묘표 후면 :
선소 의숙 장경왕후 윤씨는 중종대왕의 계비로, 홍치 4년인 신해년(성종22, 1491) 7월 6일에 탄생하였다. 정덕 원년인 병인년(중종1, 1506)에 뽑혀서 숙의에 봉해졌고 정묘년(1507)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을해년(중종10, 1515) 3월 2일에 승하하여 윤4월에 광주 헌릉의 오른쪽 능선에 장사지냈다가 가정 16년인 정유년(중종32, 1537) 9월 6일에 고양 남쪽 원당리 간좌(북동쪽을 등진 방향) 언덕으로 이장하였으니, 향년은 25세이다. 숭정 기원후 126년(영조29, 1753)에 세우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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