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진보의 설치는 효종 대에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봉림대군 시절 강화에서 직접 병자호란을 겪었던 효종은 보장처로서의 강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진보 설치에 적극성을 보여 8개의 진보를 세웠습니다.
용진진은 1656년(효종 7)에 설치됐으며,. 각 진보에는 첨사(종3품)나 만호(종4품)나 별장(종9품)이 지휘자로 파견되어 해당 병력을 통솔했습니다. 용진진은 만호가 책임자로 가리산돈대·좌강돈대·용당돈대를 관할했습니다.
하지만 효종이 만든 진과보는 손자인 숙종에 의해 48개의 돈대가 만들어지면서 강화수비를 위한 군사시설은 최고의 상태로 격상 되었습니다. 문루는 참경루(斬鯨樓)인데 홍예 부분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고 좌강돈대(左岡墩臺)도 새로 쌓았고, 용진돈대라고도 합니다.
▼ 강화동로를 용당돈대에서 북쪽 방향으로 가다보면 갑자기 나타나는 참경루(斬鯨樓)입니다. 문루의 이름이 좀 무섭습니다. 벨참(斬), 고래경(鯨)인데, 아무리 큰 적이 쳐들어와도 무찌른다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참경루는 강화 외성에 설치된 문루 6개중 하나입니다.
▼ 용진진으로 드나드는 문루는 참경루입니다. 용진진 소속 돈대부대는 용당돈대,좌강돈대,가리산돈대가 있으며 대포로 무장한 포대는 배치되어 있지 않고, 돈대내부에 배치된 불랑기포로만 무장되어 있는 방어부대입니다. 가리산돈대는 훼손되어 형태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 용진진은 현재 지도와 문서로만 존재하는 군사시설이며, 설명를 보면 좌강돈대가 용진진으로 혼동 할 수 도 있습니다. 좌강돈대는 용진진의 예하부대였습니다.
▼ 강화외성은 현재 극히 일부분만 남아 있고, 대부분 멸실되어 흔적조차 찾기가 불가능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강화외성이 보존되어 있었다면 현재 참경루의 계단옆의 초록색 부분과 연결되어 있을 것 입니다.
▼ 홀로 외로히 서 있는 참경루를 보면 쌩뚱맞게 보이는데, 그나마 좌강돈대가 이어져 있어서 조금은 덜 어색한 모습입니다.
▼ 참경루 앞뒤로는 사유지인듯 합니다.
▼ 참경루와 좌강돈대는 성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 강화해협과 아주 가까이있는 참경루입니다. 강화의 진과 보는 대부분 해안에 설치되어 있는데 이는 나루터를 기준으로 진과 보의 출입문이 만들어진듯 합니다.
▼ 참고로 강화외성(23km)에 설치된 문루는 총6개인데, 1)조해루(월곶진), 2)복파루(제물진), 3) 진해루(제물진), 4)참경루(용진진), 5)공조루(덕진진), 6)안해루(광성진)입니다.
▼ 좌강돈대는 용진돈대라고도 하며, 성벽으로 참경루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 좌강돈대의 출입문은 서쪽방향이며, 문짝은 안보이지만, 원래는 모든 돈대의 출입문에는 문짝이 달여 있었으며, 그 흔적은 문을 잘 살펴보면 보입니다. 물론 복원 하면서 누락된 돈대도 있습니다.
▼ 좌강돈대의 문에서 바라보는 내부 모습입니다. 포좌 4문입니다
▼ 돈대의 성벽이 아주 두껍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멀리 문수산과 강화대교가 보이는데, 갑곶진이 있는 곳 입니다.
▼ 강화해협이 아주 잘 보입니다.
▼ 돈대 밖에서 보는 문수산입니다. 산성의 흔적이 잘 보입니다. 강하도의 방어에는 문수산성과 덕포진은 한몸이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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