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광성보는 사적 제 227호이며,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중 하나입니다. 처음에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 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쌓은 성이었으며, 조선 광해군때 고쳐 쌓았었고,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후 숙종 때(1679)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습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때( 1871년(고종 8) 4월 23일) 벌어졌던 미해군 육전대()와의 전투에서 어재연장군등은 대부분의 조선군은 전사하고, 장군기인 수자기(帥字旗)를 빼앗겼다가 최근에 돌려받았던 아픔의 역사가 있는 현장입니다._ 자료사진은 강화군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광성보 매표소옆에 있는 안내도입니다_클릭하면 크게 보입니다.

 

▼ 현재 손돌목돈대(용두돈대포함), 손돌목포대가 광성보 내부에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 조선시대때의 편제에는 덕진진 소속이었습니다. 조선시대때의 광성보는 광성돈대, 오두돈대,화도돈대가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 먼저 매표소옆의 광성보 안내문을 보고 갑니다.

 

▼ 강화도의 모든 돈대와 진,보는 거의 숙종때 만들어졌습니다. 숙종때는 병자호란의 상처도 아물어가고, 정치도 안정되어 가던 시대로, 방어시설이 급속히 확충되던 시대였으며 전국에 수많은 산성과 각종 방어시설이 숙종때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 강화의 옛지도입니다, 신미양요 이후에 그려진 지도라는데, 현재의 모습과 대부분 비슷고, 다만 외성(外城)이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포대는 3개로 나누어져 있는데, 포구가 19개로 현재의 포병대대 수준의 대단한 화력이었습니다. 그림지도에 보이는 손돌목돈대(용두돈대포함) 손돌목포대는 광성보 소속이 아니라 덕진진소속이었습니다.

 

▼ 안해루(按海樓);바다를 누른다는 뜻의 광성보의 안해루입니다.

 

▼ 안해루 홍예문 천장 용의 그림입니다.

 

▼ 안해루의 밖, 즉 해안쪽의 모습입니다. 안해루와 성벽으로 이어진 성광돈은 2019년 10월 현재 보수공사중입니다

 

▼ 무명용사비와 쌍충각의 모습입니다.

 

▼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의 모습인데, 신미양요때 아군은 어재연장군을 포함하여 59명이 전원 전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전사한 장군들을 제외한 조선군의 이름을 확인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무명용사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 신미양요때 순국한 59인의 순절비입니다. 고종때 부터 제사를 지내왔으며, 1970년 부터는 어재연장군의 후손들이 제사를 받든다고 합니다.

 

▼ 신미양요때 순절한 이름없는 51인을 7개의 봉분에 나누어서 안장한 무덤이 신미 순의총입니다

 

▼ 신미 순의총을 지나서 신미양요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손돌목돈대를 찾아갑니다

 

▼ 성첩까지 완벽하게 복원한 손돌목돈대입니다.

 

▼ 손돌목돈대는 포가 3문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손돌목이 바라보이는 용두돈대로 가는길에 올려다보는 손돌목돈대 입니다.

 

▼ 어느때나 신하나 백성을 믿지못한 왕들은 가끔 나라를 망치기도 했습니다

 

▼ 건너편 통진의 덕포진의 손돌의 묘가 있는 곳을 담아 보았습니다.

 

▼ 덕포진의 덕포포대와 광성보 사이의 강화해협은 엄청 가까워 보입니다

 

▼ 광성보 해안에서 바라보니 북한산의 백운대가 가까이 보입니다.

 

▼ 신미양요때는 광성보에 포대가 없었다가 신미양요 이후에 포대가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 신미양요 이후에 설치 광성포대의 모습입니다,

 

▼ 용두돈대는 원래 손돌목돈대의 전진초소였으나, 1977년 이후 갑자기 돈대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돈대라고 부르기에는 낮 간지럽습니다. 그냥 소형포 2문 정도가 있던 전진초소를 돈대로 부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일단 명칭이 용두돈대로 되버렸으니 그냥 용두돈대로 해 봅니다

 

▼ 전진초소로 쓰기에는 아주 적당한 지형입니다.

 

▼ 건너 통진의 해안이 아주 가깝게 보입니다.

 

▼ 용두돈대에서 보는 광성포대의 모습입니다.

 

▼ 용두돈대를 나와서 해안쪽의 공원을 걸어 봅니다.


▼ 다음은 강화군청에서 인용한 드론사진들을 몇장 올려보았습니다. 안해루와 붙어 있는 광성돈대의 모습이 아주 잘 보입니다.

 

▼ 하늘에서 보니 손돌목돈대의 포문이 3개가 보입니다. 자료에서 포좌 4문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포좌 3문입니다

 

▼ 한꺼번에 보는 광성보의 손돌목돈대, 용두돈대, 광성포대의 모습입니다.

 

▼ 만조때의 강화해협의 모습입니다.

 

▼ 다음은 신미양요때 손돌목돈대에서 전투가 끝난후의 사진들을 올려보았습니다. 돈대의 성첩들은 다 무너지고 전사한 조선군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습니다._출처는 강화군청입니다

 

▼ 돈대의 출입문이 보이고 성첩밖에 쓰러진 조선군을 보니 아마도 백병전이 벌어진듯 합니다.

 

▼ 돈대 지휘소로 보이는 건물앞 차양막옆에 미군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 전투가 막 끝난후인지 돈대 내부에는 포연이 자욱합니다

 

▼ 100년도 더 지난 사진이지만, 전사한 조선군들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손돌목돈대에서 내려다 보는 용두돈대의 모습입니다. 오른쪽 아래 해안쪽에는 해안포대가 있었는지 포좌모양의 구멍들이 보입니다

 

 

▼ 미국의 아시아함대중에서 초지진,덕진진,광성보(진)의 상륙작전을 지원했던 모노카시호가 육전대를 단정에 태우고 철수하는 모습입니다.

- 끝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