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의 강화관방유적중에서 돈대(墩臺)만 선별해서 답사를 하여 보기로 했습니다. 돼지열병으로 난리를 치른후여서 다행히 마음의 부담이 덜한 상태로 첫번째로 초지대교에서 가까운 초지돈대(초지진)부터 들려보았습니다. 초지진은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의 해안선을 지키기 위하여 설치한 진으로서, 현재의 초지진은 초지돈대만 남아있습니다.

 

▼ 초지진은 조선 효종 7년(1656)에 안산에 있던 초지량영을 강화로 옮겨 진으로 승격시켰다. 1666년(현종 7) 병마만호()를 두었다가 1763년(영조 39)에 첨사(使)로 승격시켰는데 이 때의 병력은 병마첨절별사(使) 1명, 군관 11명, 사병 320명, 진선() 3척과 무기 다수가 있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이 곳에서 프랑스 함대의 로즈 소장과 싸웠으며, 1871년(고종 8)에는 미국 아시아함대의 로저스 중장이 이 곳에 침입하였을 때 필사의 방어전을 전개하다 함락된 바 있었고, 1875년(고종 12)에는 일본 군함 운요호[]와도 이 곳에서 교전하였다._지식백과

 

▼ 초지진(지휘관 만호)은 예하돈대로 초지돈대,장자평돈대,섬암돈대가 있었으며, 장자평돈대는 멸실되었고, 섬암돈대는 토축일부만 남아 있으며, 지금은 초지돈대만 복원되어 초지진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 초지진(草芝鎭)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 지금은 초지진의 형태를 찾을 수 가 없고, 그나마 형태가 남아 있는 초지돈(草芝墩)을 복원하여 초지진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 입니다. 군사 편제를 보면 진(중대급)은 돈대(소대급)의 상급부대입니다. 입장료가 있으며, 개방시간은 09시부터 18시까지 입니다.

 

▼ 초지돈대앞과 김포의 대명항 사이의 강화해협입니다. 강화군 홍보자료나, 여러 인터넷 자료에 보면 염하(鹽河)라는 용어를 많이 쓰는데, 이또한 일제 잔재용어 라고 합니다.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의 극동함대 로즈제독은 한강과 강화해볍의 해도를 그리는데, 이때 Rive're Sale'e로 기록하였습니다, 그후 일본이 프랑스군의 해도를 구하여 일본어로 직역하면서 고려서안 염하지도(高麗西岸 鹽河地圖)라고 제목을 붙이게 되었고, 강화해협이 염하로 불리게 된 비극의 시초였다고 합니다. 지금이라도 자료의 염하를 빼고 강화해협이라고 해야 합니다.

 

▼ 강화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초지진과 김포의 대명항은 1km의 거리에 있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면 강화해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암초에 부딫히면서 무엇인가 땅으로 오르려는 물체가 있는듯이 느껴집니다.

 

▼ 밖에서 보는 초지돈대는 깔끔하게 복원이 되었습니다.

 

▼ 초지돈대 주위에는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소나무가 있는데, 조선말기 미군과 일본군한테 무참히 망가지는 모습을지켜보던 소나무들입니다

 

▼ 초지진(초지돈대)의 소나무 안내문을 잘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미양요나, 운요호사건때는 초지진에서의 전투는 초지돈대에서만 있었것 같습니다. 초지진의 예하돈대 장자평돈대와 섬암돈대에서의 전투기록은 안 보입니다

 

▼ 신미양호와 운요호사건을 거치면서 소나무와 성벽에 남겨진 포탄자국입니다

 

▼ 초진돈대(초지진)은 초지대교와 가까워,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 이어서 돈대의 상태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공휴일 아침 일찍 왔더니 차량들이 거의 없습니다

 

▼ 신미양요와 운요호사건의 포격을 받으면서 완전히 무너졌던 초지돈대는 복원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 초지돈대 내부의 모습인데, 대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돈대내부에는 군사들이 거주하던 막사와 무기고가 있었습니다. 사실 초지돈대에는 3구의 포구가 있는데, 돈대에서 쏘던 포는 불랑기나, 소형포로 추정이 되고, 전시되어 있는 포는 초지진의 포대에서 쏘던 대포(홍이포)로 추측이 됩니다. 초지돈대 좌우로 2개의 포대 있었는데, 초지포대(좌6혈), 진남포대(우6혈)이 있었습니다.

 

▼ 포지돈대 안에서 보는 강화해협의 초지대교 입니다

 

▼ 돈대내부의 모습은 좀 좁은 느낌이 드는 모습입니다.

 

▼ 대포가 전시되어 있던곳은 원래 군막이나, 무기고가 있었던 곳인듯 합니다. 돈대에서는 평상시에는 4~5명이 교대로 경계근무를 서다가 전시에는 100여명이 주둔하였던듯 합니다

 

▼ 초지돈대에 전시되어 있는 포는 홍이포라는 대포 입니다

 

▼ 강화도의 여러진,보,포대에 홍이포가 전시되어 있기는 한데, 거의 모조품이며 다만 초지돈대에 있는 포만 진품이라고 합니다. 사거리는 최대 700m로서 강화해협의 방어에는 적당한 사거리를 갖고 있지만, 조준기도 없고, 탄 내부에 화약이 없는 그냥 쇳덩어리라서 적의 배에 명중되더라도 터지지 않는것이 치명적인 흠이었습니다. 그래서 최신식 무기의 도입이 꼭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현재는 초지돈대 주위에 포대의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강화옛지도에 포대 배치도를 보면 보면 초지돈대 앞의 황산도에 6문, 초지돈대와 덕진돈대 사이에 6문이 있었습니다.

 

▼ 초지돈대의 포구로 보는 강화해협입니다. 돈대 내부에서 미군의 포나 운요호의 포탄을 맞으면서, 싸웠던 그때의 조선군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느껴봅니다

 

※ 다음은 사진으로 보는 신미양요때 미군들의 초지돈대의 점령사진들입니다_사진자료는 강화군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여기서 알아 볼 신미양요(擾)는 1871년 발생한 조선과 미국 간의 전쟁으로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빌미로 미국은 조선에 대해 무력에 의한 강제통상을 계획했으나, 조선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1871년 4월 덕진진과 광성보를 점령한 미국 함대는 조선에 심한 피해를 입혔다.

 

4월 23일 로저스는 공격작전을 지시하여 450명의 해병대가 물류도를 출발하여 초지진에 상륙했으며 이튿날 아침 미국 해병대는 전진하여 덕진진을 공격·점령하고 이어 광성보로 육박해왔다.

 

광성보는 진무중군 어재윤이 경군(京軍)을 거느리고 엄중히 수비하고 있었는데, 수륙양면으로부터 포격을 받아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교섭에 응할 것으로 기대했던 것과 달리, 대원군의 결사항전을 본 미국은 결국 함대를 이끌고 청으로 돌아간 사건입니다.

 

이후 미국은 일본을 꼬드겨 4년후에 운요호사건을 일으겼고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통해 조선의 무릎을 꿇렸습니다.

 

▼ 미군 아시아함대가 초지돈대를 점령후에 찍은 사진이라고 하며, 돈대의 성첩은 포격에 무너졌으나, 출입문은 멀쩡합니다. 미군은 초지진을 점령하고, 해안선을 따라서 덕진진을 공격하였습니다.

 

초지진 앞의 강화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미군 아시아함대의 모노카시호(좌)와 팔로스호(우)인데, 아마도 초지돈을 점령직후 찍은 모습인듯 합니다(신미양요). 맞은편은 김포의 동명항으로 보입니다.

 

- 다음은 미국 아시아함대의 기본 구성에 대한 자료입니다_나무위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미국 아시아함대의 로저스제독은 기함 콜로라도호(Colorado號)를 비롯하여 군함 5척에, 수해병 1,230명, 함재대포 85문을 적재하였다.1871년 5월 초순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함대를 집결, 약 보름 동안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고 5월 16일(음력 3월 27일) 조선원정 길에 올랐다.

 

미국 아시아함대 군함
- USS Colorado;코로라도호(1856년 건조 / 3425톤 / 10인치 포 2문, 9인치 포 28문, 8인치포 14문)
- USS Alaska;알라스카호(1868년 건조 / 2394톤 / 11인치 활강포 1문, 60파운드 포 1문, 20파운드 포 2문)
- USS Palos;팔로스호(1865년 건조 / 420톤 / 포 2문)
- USS Monocacy;모노카시호(1864년 건조 / 1370톤 / 13인치 구포 1문, 32파운드 포 2문)
- USS Benicia;베니시아호(1868년 건조 / 2400톤 / 11인치 활강포 1문, 9인치 활강포 10문, 60파운드 강선포 1문, 20파운드 후장식 강선포 1문)

 

미국은 6월 10일 초지진(草芝鎭) 상륙작전을 단행하였다. 상륙 군 부대를 10개 중대로 편성하고, 포병대·공병대·의무대, 그리고 사진촬영반 등이 동원되었다. 수륙 양면공격을 개시하여, 역사상 최초로 조·미전쟁(朝美戰爭)이 발생하였다.

 

▼ 초지진의 초진돈내에서 미군 아시아함대 육전대들이 돈대점령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돈대 성첩에서는 불랑기포를 쏘았었고, 전사한 조선군을 앞에 두고 사진을 찍는 점령군의 모습은 여유만만한 모습입니다.

 

▼ 자료사진으로 전사한 조선군의 방탄복인 면갑을 찾아보았습니다. 전사한 조선군이 입고 있는 면갑과 동일한 면갑으로 보입니다

 

▼ 초지돈대를 점령한 미국 아시아함대 육전대의 다른 사진입니다. 성첩이 미군 포격에 완전히 파괴되어 있고, 불랑기포는 아무렇게나 딩굴고 있습니다. 건물은 창고로 보이며 초지돈대 내부에는 두개의 건물이 있었것으로 보입니다. 그나저나, 미국은 그때 어떻게 사진을 찍었는지 참 놀랍기만 합니다.

 

▼ 신미양요때 사용하던 불랑기포의 자료사진을 만들어봤습니다. 불랑기포는 카트리지(자포)에 장약과 포탄을 넣고, 모포의 홈에 끼운후 발사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소형포입니다. 돈대에서 쏘던 포는 대부분 불랑기포로 추정이 됩니다.

 

▼ 다음 사진은 초지돈대(초지진)의 공중사진들입니다, 초지돈대를 입체적으로 볼수 있어서 돈대가 위치한 해안의 방어기능에 이해를 높혀 줍니다 _ 강화군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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