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의 세번째 왕릉인 현릉(顯陵)은 조선5대왕 문종과 현덕왕후의 동원이강릉입니다. 홍살문을 지나서 왼쪽으로 꺽어 들어가야 정자각앞에 다다릅니다. 정자각에서 봤을때 왼쪽이 문종, 오른쪽이 현덕왕후릉입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현릉의 능주 문종은 세자 기간이 길어서, 7세인 1421년 부터 세자를 하고, 29세에 보위에 올랐습니다. 세자로 있는 동안 과로를 했는지 보위에 오른지 2년3개월만에 승하하셨는데, 동생(수양대군)을 잘못만나서 아들(단종)이 비명횡사 하고, 왕비 권씨의 능은 세조에 의해 무덤이 훼손되는등 사후에도 편치 않았던 왕이었습니다.
동궁시절에는 상당한 꽃미남이었다고 합니다만, 여자운이 없어서 인지 아니면, 여자에 관심이 없었는지 세자빈마다 해괴한 일을 벌려서 아버지(세종)에 의해서 강제로 폐빈이 되는등 우여곡절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 능의 구성
현릉은 조선 5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의 능이다. 현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문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현덕왕후의 능이다.
- 능의 역사
1452년(문종 2)에 문종이 세상을 떠나자 수양대군(세조), 황보인, 김종서, 정인지 등의 대신을 비롯하여 풍수지관이 현지를 답사하고 건원릉 남동쪽에 현릉을 조성하였다. 처음 문종은 세종의 구 영릉(서울 내곡동 헌릉 서쪽) 근처에 묻히기를 원하였으나 자리가 좋지 않아 현재의 자리로 정하였다.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이 세상을 떠나기 11년 전에 왕세자빈 신분으로 1441년(세종 23)에 먼저 세상을 떠나, 안산의 소릉(昭陵)에 모셔졌었다. 이후 세조 즉위 후 단종 복위 사건에 친정 어머니와 남동생이 연루되는 바람에 폐위되었다가, 1512년(중종 7)에 복위되어 다음 해인 1513년(중종 8)에 문종의 현릉 동쪽 언덕으로 사후 72년만에 왕의 곁으로 능을 천장하였다. 이 때 두 능 사이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이유 없이 저절로 말라 죽어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문종(文宗) 이야기
문종(재세 : 1414년 음력 10월 3일 ~ 1452년 음력 5월 14일, 재위 : 1450년 음력 2월 23일 ~ 1452년 음력 5월 14일)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첫째 아들로 1414년(태종 14)에 사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세종이 즉위하자 1421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세종재위 말년에 부왕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대리청정기간에 문무 관리를 고르게 등용하고 언로를 자유롭게 열어 민정파악에 힘쓰는 등 나라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문종은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며 말이 적고, 학문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문종은 천문에 능통하였으며, 측우기도 발명하였다. 1450년에 조선 최초로 적장승계의 원칙에 따라 세종을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내에는 『동국병감(東國兵鑑)』이 출간되었고, 『고려사(高麗史)』 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등이 편찬되었다. 한편 병제(兵制)를 정비하여 3군의 12사를 5사로 줄인 반면, 병력을 증대시키고 각 병종을 5사에 배분하였다. 그러나 1452년(문종 2)에 경복궁 천추전에서 39세로 세상을 떠났다.
- 현덕왕후(顯德王后) 이야기
현덕왕후 권씨(제세 : 1418년 음력 3월 12일 ~ 1441년 음력 7월 24일)는 본관이 안동인 화산부원군 권전과 해령부부인 최씨의 딸로 1418년(태종 18)에 홍주(충남 홍성) 합덕현 사저에서 태어났다. 1431년(세종 13)에 세자 후궁으로 승휘(承徽)가 되었고, 양원(良媛)을 거쳐, 1437년(세종 19)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다.
문종은 세자시절 1427년(세종 9)에 김오문의 딸을 왕세자빈(휘빈)으로 맞이하였다. 그러나 휘빈 김씨는 문종의 사랑을 얻기 위해 은밀한 술법을 쓰다가 발각되어 폐위되었다. 그 후 1429년(세종 11)에 봉여의 딸을 왕세자빈(순빈)으로 맞이하였다. 하지만 순빈 봉씨도 문종과의 잦은 갈등과 동성애 스캔들에 휘말려 폐위되었다.
그 후 세종은 세자후궁 중에서 왕세자빈을 간택하려 하였는데, 이미 자식이 있고 후궁의 서열 중에 가장 높은 권씨를 의리상 왕세자빈으로 올려야 한다는 뜻을 밝혀 권씨를 왕세자빈으로 책봉하였다. 그러나, 현덕왕후는 1441년(세종 23)에 원손(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다음날에 경복궁 자선당에서 24세로 세상을 떠났다. 처음 경기도 안산에 왕세자빈묘의 형태로 조성하였고, 문종이 즉위하자 현덕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소릉(昭陵)이라 하였다.
그러나 세조 즉위 후 단종복위 사건에 어머니 최씨와 남동생 권자신이 연루되어 체형되면서, 현덕왕후 역시 폐위되어 종묘에 신주가 철거되고, 능이 파헤쳐지는 수난을 당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복위론이 있었으나 무산되었다가, 1512년(중종 7)에 종묘 문종실에 홀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민망하다는 명분으로 폐위된 지 56년 만에 복위되어 종묘에 신주를 부묘하고, 능을 현재의 현릉 좌측 언덕으로 천장하게 되었다
▼ 능의 이모저모를 알아보기 전에 능주의 가계도를 살펴보는것도 그 당시의 시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문종의 가계도에 6대 단종까지 가계도를 그려 보았습니다. 문종도 2세에 대한 복이 별로 없었는데, 세종때에 세자로 있으면서 일이 너무 많았었나 봅니다.
▼ 배위가 홍살문 앞에 넉넉하게 나와 있습니다. 기신제를 지낼때는 왕이 직접 와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왕이 축문을 써서 지명한 신하에게 주면 신하가 대신 기신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배위에 올라서서 4번 절을 합니다.
▼ 넉넉한 하늘의 정원으로 들어 갑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곧 법인만큼 조상에 대한 제례는 틀림없이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 조선의 왕릉은 기본적으로 테조의 건원릉을 기반으로 조성되어서 거의 비숫합니다. 그래서 사진만 보고는 어느 왕의 릉인지는 구분을 못합니다.
▼ 정자각 앞에서 보면 왼쪽이 문종릉, 오른쪽이 현덕왕후릉입니다.
▼ 현덕왕후 능침에 직접 올라 가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멀리서 봐야 합니다,
▼ 비각 내부에 있었기 때문에 비바람을 피해서인지 음각된 글자가 생생합니다
▼ 문종은 39세에 현덕왕후는 세자빈으로 24세에 승하하였다.
▼ 현덕왕후릉입니다
▼ 당겨본 현덕왕후릉입니다만 이렇게라도 보는것이 최선입니다.
▼ 신로는 능침 가운데로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왼쪽은 문종릉, 오른쪽은 현덕왕후릉입니다
▼ 문종릉의 참고 사진입니다. 병풍석에 난간석까지 건원릉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 현덕왕후 릉입니다. 병풍석이 없는 능입니다
▼ 수복방이 깔끔하게 복원이 되었습니다. 수복방은 대부분 소실되어 버렸지만, 유규가 남아 있어서 조사후에 복원한것입니다.
▼ 비각뒤에서 바라보는 문종릉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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