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시 동구릉의 서쪽 맨끝에 있는 제18대 현종과 원비 명성왕후릉인 숭릉(崇陵)의 사진들입니다. 숭릉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침이 각각 있는 쌍릉의 형태이고. 숭릉의 정자각은 익릉의 형태에 조선왕릉중에서 유일한 팔작지붕입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하늘에서 보는 숭릉입니다_출처는 경기도청입니다
▼ 숭릉의 능주와 능의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갑니다
- 능의 역사
1674년(현종 15)에 현종이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숭릉을 조성할 때 8도의 승군 2,650명을 징발하여 능을 공사하였다. 숭릉의 혈을 파기 위해 겉흙을 걷어냈을 때 부도를 세우려 했던 흔적이 나왔으나, 깊이가 3척밖에 되지 않아 지맥을 손상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광중 밖이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하였다. 숭릉 조성 후 9년이 지난 1683년(숙종 9)에 명성왕후 김씨가 세상을 떠나, 그 다음 해 숭릉에 쌍릉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 능의 구성
숭릉은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숭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형식이다.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난간석으로 두 봉분을 연결하였으며 능침 앞에는 혼유석이 각각 1좌씩 놓여 있다. 그 밖의 석양, 석호, 망주석, 문무석인, 석마 등은 일반적인 조선왕릉의 형태로 배치되었다. 숭릉의 석물은 효종의 구 영릉(寧陵)의 석물을 다시 사용한 것으로, 영릉(寧陵)이 여주로 천장될 때 석물을 묻었다가 다시 꺼내 사용하였다. 망주석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위쪽에는 ‘세호’라고 불리는 작은 동물 조각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능침 아래에 있는 정자각은 조선왕릉 40기 중 유일하게 남은 팔작지붕 정자각이며, 보물 제1742호로 지정되었다.
- 현종(顯宗) 이야기
현종(재세 : 1641년 음력 2월 4일 ~ 1674년 음력 8월 18일, 재위 : 1659년 음력 5월 9일 ~ 1674년 음력 8월 18일)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아들로 1641년(인조 19)에 청나라 심양 관사에서 태어난 조선 역대 임금 중에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다. 1645년(인조 23)에 인조의 세자인 소현세자가 급서하고 아버지 봉림대군이 왕세자로 책봉되는 동시에 원손이 되었고, 1648년(인조 26)에 왕세손이 되었다.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세자가 된 후 1659년에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동안에 함경도 산악지대를 개척하고,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된 북벌정책을 중단시켰으며, 호남 지방에 대동법을 시행하였다. 동철활자 10만 자를 주조시켰으며, 천문 관측과 역법 연구를 위하여 혼천의를 다시 제작하게 하는 등 다양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두 차례의 예송논쟁으로 붕당의 싸움이 치열하기도 하였다. 1647년(현종 15)에 창덕궁 재려에서 34세로 세상을 떠났다.
- 명성왕후(明聖王后) 이야기
명성왕후 김씨(재세 : 1642년 음력 5월 17일 ~ 1683년 음력 12월 5일)는 본관이 청풍인 청풍부원군 김우명과 덕은부부인 송씨의 딸로 1634년(인조 12)에 장통방(현 서울 종로2가 관철동) 사저에서 태어났다. 1651년(효종 2)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현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현종 사이에 1남(숙종) 3녀(명선공주, 명혜공주, 명안공주)를 낳았다. 명성왕후는 지능이 뛰어나고 성격이 과격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에 궁중의 일을 다스림에 있어서 거친 처사가 많았고 공공연히 조정의 정무에까지 간여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후 1683년(숙종 9)에 창덕궁 저승전에서 42세로 세상을 떠났다.
▼ 현종은 원비 명성왕후 외에는 계비나, 후궁이 없었나 봅니다.
▼ 숭릉의 홍살문에서 바라보는 정자각의 모습이며, 우측에는 수복방 복원공사중이어서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장자각의 모습들입니다.
▼ 정자각의 뒷쪽에는 예감이 보입니다
▼ 능침에는 오를 수 가 없기 때문에 당겨 보았습니다
▼ 숭릉의 자료사진들 입니다. 하나의 곡장안에 쌍릉으로 되어 있습니다.
▼ 정자각의 후면에는 능침의 혼백이 드나드는 신도가 보입니다.
▼ 숭릉의 정자각의 배위청의 지붕은 팔작지붕이라서 그런지 비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널이 안보입니다
▼ 정자각의 처마부분입니다
▼ 숭릉 비각의 모습입니다. 비각도 최근에 보수한듯이 보입니다.
▼ 숭릉의 표석과 표석의 후면에 새겨진 비문의 자료사진 모습입니다.
묘표(전면) : 조선국 현종대왕 숭릉 명성왕후부좌
묘표(후면) :
현종 순문 숙무 경인 창효 대왕은 숭정 14년인 신사년(인조19, 1641) 2월 4일에 탄생하였다. 기해년(현종즉위, 1659)에 즉위하고 갑인년(현종15, 1674) 8월 18일에 승하하여 12월 13일에 양주 건원릉의 서남쪽 외딴 능선 유좌(서쪽을 등진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재위가 15년이고 향년은 34세이다.
왕비 현열 정헌 문덕 명성왕후 김씨는 임오년(인조20, 1642) 5월 17일에 탄생하였다. 신묘년(효종2, 1651)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기해년(현종즉위, 1659)에 왕비로 봉작이 올랐다. 계해년(숙종9, 1683) 12월 5일에 승하하여 갑자년(1684) 4월 5일에 장사지냈으니, 향년은 42세이다.
▼ 수복방의 복구공사중인 가림막에 숭릉의 자료사진들이 부착되어 있어서 담아 보았습니다.
▼ 수복방의 유구가 드러난 상태의 모습인데, 현재 수복방은 복구공사중입니다
▼ 수복방의 발굴조사 당시 사진인듯 합니다.
▼ 따사로운 가을의 햇빛이 홍살문을 비출때 문을 나섭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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