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의 재실을 지나서 처음 마추치는 능이 수릉입니다.수릉은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의 추존왕 문조(익종)와 신정왕후의 합장릉입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동구릉에서 수릉의 위치를 표시하였습니다.

 

▼ 효명세자는 왕이 되기전에 아깝게 죽었으나, 그 아들 헌종이 대를 이어 조선의 왕통을 이어 나가기는 했습니다.

 

▼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왕들의 2세 이어 나가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 능의 구성

수릉은 추존 문조익황제와 신정익황후 조씨의 능이다. 수릉은 한 봉분 안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보통의 합장릉은 혼유석을 각각 2좌씩 놓았으나 조선 후기부터 조성된 합장릉은 혼유석을 1좌로 줄여서 조성하였다. 문석인은 기존의 복두관복 대신 금관조복으로 조각하였다.


일반적으로 왕릉은 우상좌하(右上左下)의 형태로 왕이 오른쪽, 왕비가 왼쪽에 모셔지는 것이 원칙이나 수릉은 왕이 왼쪽, 왕비가 오른쪽에 모셔져있다. 이는 세상을 떠날 때의 신분차이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 능의 역사

문조는 처음 효명세자의 신분으로 1830년(순조 20)에 세상을 떠나, 경종의 의릉(懿陵) 왼편에 연경묘(延慶墓)라는 이름으로 묘를 조성하였다. 1834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자 익종(翼宗)으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수릉(綏陵)이라 하였으며, 1846년(헌종 12)에 풍수상 불길하다 하여 양주 용마봉(현 광진구 용마산)으로 천장하였다. 그러다가 1855년(철종 6)에 다시 천장론이 거론되어 현재의 동구릉에 마지막으로 조성되었다. 이후 1890년(고종 27)에 신정익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수릉에 합장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 이야기

추존황제 문조(재세 : 1809년 음력 8월 9일 ~ 1830년 음력 5월 6일)는 순조와 순원숙황후 김씨의 아들로 1809년(순조 9)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태어났다. 1812년(순조 12)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827년(순조 27)에 부왕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왕세자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시기였으나 대리청정을 통해 강인한 군주의 모습을 보였다. 특정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그동안 소외되어 있던 인재들을 고루 등용하였으며, 백성을 위하는 선정을 펼쳤다. 또한 실학파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와 교류하며 견문을 넓히고, 타문화 수용에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예악진흥을 위해 궁중연회에 쓰이던 춤과 노래인 정재(呈才)를 발전시켜 손수 악장, 치사, 전문 등을 직접 지었고, 춘앵전을 편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830년(순조 30)에 창덕궁 희정당에서 2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명세자(孝明世子)라 하였다. 이 후 아들 헌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익종대왕으로 추존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 추존으로 문조익황제로 추존되었다.

 

 -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 이야기

신정익황후 조씨(재세 : 1808년 음력 12월 6일 ~ 1890년 음력 4월 17일)는 본관이 풍양인 풍은부원군 조만영과 덕안부부인 송씨의 딸로 1808년(순조 8)에 두포 쌍호정 사저에서 태어났다. 1819년(순조 19)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1827년에 헌종을 낳았다.

 

효부라는 칭찬을 듣던 왕세자빈은 불행히도 1830년에 남편 효명세자를 잃었다. 이후 1834년 아들 헌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으며 1857년(철종 8)에 순조의 왕비 순원숙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1863년에 철종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종친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고종)을 양자로 입적시켜 왕위에 올렸으며,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렴청정을 실시하여 흥선대원군과 함께 정국을 주도했다.

 

수렴청정 기간에 흥선대원군과 함께 경복궁 중건과 서원 철폐 등의 개혁을 실시하였고, 국가가 여러 재난에 시달리자 눈물을 흘리며 죽지 않은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그 후 1866년(고종 3)에 수렴청정을 거두고 왕실 최고의 어른으로 살다가 1890년(고종 27)에 경복궁 흥복전에서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 추존으로 신정익황후로 추존되었다.

 

 

▼ 홍살문에서 바라본 수릉의 정자각입니다. 좌,우로는 수라간이나, 수복방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 신들의 영원한 안식처인 능이라지만, 나무나 아름답습니다.

 

▼ 수복방터는 복구를 위해 대기중인것으로 보입니다.

 

▼ 비각 안에는 2개의 표석이 있는데, 하나는 익종 묘호의 표석이고, 다른 하나는 문조 묘호의 표석입니다

 

▼ 익종대왕 표석입니다.

 

▼ 고종때 문조로 추존되면서 세워진 표석입니다.

 

▼ 비각 뒤에 있는 굽어진 소나무가 인상적입니다.

 

▼ 사초지 위에 능이 안보입니다.

 

▼ 수릉의 자료사진들를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 망주석의 자세한 모습을 담은 자료사진인데, 망주석의 세호를 자세하게 보는 맛도 재미 있습니다. 대부분의 능에 있는 망주석에는 세호가 조각이 되어 있는데, 동쪽과 서쪽의 세호가 가는 방향이 서로 틀리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 문석인과 무석인을 하나씩 뽑아서 석마와 함께 꾸며 보았습니다

 

▼ 석양과 석호의 모습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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