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 24대 헌종과 효현왕후,효정왕후가 나란히 잠들어 있는 조선왕릉중 유일한 삼연릉인 경릉(景陵)입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동구릉에서 경릉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입니다.

 

▼ 하늘에서 보는 경릉입니다_출처는 경기도청입니다.

 

▼ 경릉의 조성 이야기와 능주인 헌종과 원비 효현왕후, 계비 효정왕후의 이야기를 자료를 통해서 알아봅니다.

 

▼ 먼저 헌종의 계보를 알아보겠습니다. 23대 순조의 외아들 효명세자가 20세에 요절을 하였으나 다행이 세자때 낳은 이환(헌종)이 있어서 7세에 보위에 올랐습니다.

 

- 능의 구성

경릉은 조선 24대 헌종성황제와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와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의 능이다. 경릉은 세 개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의 형태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정자각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성황후, 오른쪽이 효정성황후의 능이다. 세 봉분은 모두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난간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 봉분 앞에는 혼유석을 따로 설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판위 등이 배치되었으며, 비각에는 한 개의 표석이 있다. 표석은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 추존으로 바꾼 표석으로, 전면에는 ‘대한 헌종성황제 경릉 효현성황후 부좌 효정성황후 부좌’라 써있다.

 

- 능의 역사

처음 경릉자리는 선조의 목릉(穆陵)이 있던 자리였는데, 1630년(인조 8)에 목릉에 물길이 있고 풍수상 불길하다는 심명세의 상소로 목릉천장을 확정하고 구릉을 파고 현궁을 열어 보니 물기가 없어 그의 불길론은 해소되었다. 이 후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가 1843년(헌종 9)에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처음 능을 조성하였다.

 

 6년 뒤인 1849년에 헌종이 세상을 떠나자, 13곳의 택지를 간심한 끝에 ‘십전대길지(十全大吉地)’의 명당이라고 주장한 효현성황후의 경릉 오른쪽에 능을 조성하였다. 대한제국 선포 후 1904년(광무 8)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가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 헌종성황제(憲宗成皇帝) 이야기

헌종(재세 : 1827년 음력 7월 18일 ~ 1849년 음력 6월 6일, 재위 : 1834년 음력 11월 18일 ~ 1849년 음력 6월 6일)은 추존 문조와 신정익황후 조씨의 아들로 1827년(순조 27)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1830년(순조 30)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834년에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으므로 할머니인 순원숙황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하였다.

 

 헌종 연간은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도정치가 서로 대립하여 두 차례의 역모 사건이 일어났으며 ,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큰 부담을 안고 살아가던 시기였다. 또 천주교 탄압(기해박해)으로 인해 외국 군함이 처음으로 조선 근해에 나타나 민심이 흉흉했다. 친정 후에는 『동문휘고』, 『열성지장』, 『동국사략』, 『삼조보감』등을 완성하였으며, 각 도에 제언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그 후 1849년(헌종 15)에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에 헌종성황제로 추존되었다.

 

- 효현성황후(孝顯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재세 : 1828년 음력 3월 14일 ~ 1843년 8월 25일)는 본관이 안동인 영흥부원군 김조근과 한성부부인 이씨의 딸로 1828년(순조 28)에 안국방(현 서울 안국) 외가사저에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헌종 사이에 후사를 낳지 못하였다. 1843년(헌종 9년)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에 효현성황후로 추존되었다.

 

- 효정성황후(孝定成皇后) 이야기

헌종의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재세 : 1831년 음력 1월 22일 ~ 1904년 양력 1월 2일)는 본관이 남양인 익풍부원군 홍재룡과 연창부부인 안씨의 딸로 1831년(순조 31)에 함열현(현 전북 익산) 관사에서 태어났다. 1843년에 헌종의 첫 번째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1년 뒤에 헌종의 두 번째 왕비로 책봉되었다.

 

 헌종이 세상을 떠나고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명헌대비가 되고, 1859년(철종 10)에 왕대비가 되었다. 이 후 왕실의 어른으로 지내다가 1897년(광무 1)에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최초의 태후가 되었다. 헌종 사이에 소생을 낳지 못하였으며, 1904년(광무 7년) 양력 1월 2일에 경운궁 수인당에서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에 효정성황후로 추존되었다.

 

 

▼ 경릉의 홍살문앞에서 보는 정자각입니다. 좌/우로는 수라간이나, 수복방은 안 보입니다.

 

▼ 경릉의 능침에는 올라가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자료그림이나, 사진들로 꾸며보았습니다.


 

 ▼ 홍살문을 옆에서 바라보니 홍살문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를 가르는 문이 신성하게 보입니다

 

▼ 정자각의 이모저모를 담아 보았습니다

 

▼ 표석의 자료사진과 음기(번역)자료문입니다.

 

묘표 - 음기(번역) : 대한 헌종성황제 경릉 효현성황후부좌 효정성황후부좌


헌종 체건 계극 중정 광대 지성 광덕 홍운 장화 경문 위무 명인 철효 성황제는 순조년간 정해년(순조27, 1827) 7월 18일에 탄생하였다. 경인년(순조30, 1830) 9월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갑오년(헌종즉위, 1834) 11월에 즉위하였다. 기유년(헌종15, 1849) 6월 6일에 승하하여 그해 10월 28일에 양주 건원릉 서쪽 능선 유좌(서쪽을 등진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재위가 15년이고 향년은 23세이며, 융희 2년인 무신년(순종1, 1908) 7월에 ‘성황제’로 추존하였다.

황후 단성 수원 경혜 정순 효현성황후 김씨는 순조년간 무자년(순조28, 1828) 3월 14일에 탄생하였다. 정유년(헌종3, 1837)에 왕비로 책봉되고 계묘년(헌종9, 1843) 8월 25일에 승하하여 이해 12월 2일에 같은 언덕에 봉분을 달리하여 장사지냈다. 향년은 16세이고, 융희 2년인 무신년(순종1, 1908) 7월에 ‘성황후’로 추존하였다. 계후 명헌 숙경 예인 정목 홍성 장순 정휘 장소 단희 수현 의헌 강수 유녕 자온 공안 효정성황후 홍씨는 순조년간 신묘년(순조31, 1831) 정월 22일에 탄생하였다. 갑진년(헌종10, 1844)에 왕비로 책봉되고 기유년(철종즉위, 1849)에 철종이 왕위를 이어받자 대비로 올랐으며 정사년(철종8, 1857)에 왕대비로 올랐다. 광무 원년인 정유년(고종34, 1897)에 ‘명헌태후’로 오르고 계묘년(고종40, 1903) 11월 15일에 승하하여 갑진년(1904) 정월 29일에 같은 언덕에 봉분을 달리하여 장사지냈다. 향년은 73세이고, 융희 2년인 무신년(순종1, 1908) 7월에 ‘성황후’로 추존하였다.
융희 2년(순종1, 1908) 월 일


 

▼ 밤이 엄청 달린 밤나무입니다.

 

▼ 수복방은 발굴조사후 복원을 위해 흙더미로 임시로 덮어두었습니다

 

▼ 홍살문을 나오는데, 사슴벌레가 이리저리 길을 찾길래 집어서 참나무에 올려 두었습니다. 몇십년만에 보는듯 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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