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는 예로부터 나라의 문(文)과 무(武)에 출중한 위인들이 많이 있었고, 임진강을 끼고 있는 전답들이 많아서 풍요로운 고장입니다. 황희 선생은 고려 공민왕 12년(1363) 때 개성에서 태어났으며, 조선시대에는 태종대에서 세종대까지 관직생활을 하다가, 말년에서야 파주에 내려와서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황희유적지는 유료입니다(성인 1000원), 유적지 안에 반구정이 있습니다.
▼ 꽃피는 봄날의 황희 유적지는 화사하기만 합니다.
▼ 방촌기념관은 황희 선생의 각종 기록물과 이야기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세종과 황희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있지만, 세종이 황희 선생을 너무 믿어서 늙어서까지 관직을 내려놓지 못하게 해서, 결국 죽을 때가 돼서야 87세에 파주에 내려왔다가 9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종이 황희 선생을 너무 부려먹었습니다.
▼ 외삼문(청정문)에서 바라보는 방촌기념관입니다.
▼ 방촌기념관에서 바라보는 외삼문(청정문)입니다.
▼ 황희 선생 영당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청정문)입니다.
▼ 청정문에서 영당지를 바라봅니다.
▼ 왼쪽이 고직사, 오른쪽이 황희 선생 영당입니다.
▼ 고직사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고직사는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써 재실과는 다른 듯합니다. 그런데 보통 고직사(庫直舍)라고 쓰는데, 앞의 한자는 정확히 학인 할 수는 없지만 재직사(齋直舍)인듯 합니다.
▼ 가운데 건물이 황희 선생 영당이고, 왼쪽은 월헌사, 왼쪽은 경모재입니다.
▼ 왼쪽은 월헌사는 방촌선생의 현손(玄孫) 방맹헌 선생의 신위가 모셔진 사당입니다. 현손이라고 하면 5대손이라고 하니 까마득히 먼 후손이 되겠습니다.
부조묘(不祧廟)라는 용어를 찾아보니, 원래 4대가 넘는 조상은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어 땅에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특별히 신주를 사당에 계속 모셔두고 제향을 해도 되는데, 고려때나 조선 때에는 왕의 허락을 받았지만, 조선 후대에는 지방의 유림들에 의해 내부적으로 부조묘 대상이 정해졌습니다.
▼ 방촌 선생 영당의 내삼문입니다.
▼ [자료:문화재청] 방촌 선생의 묘는 파주시 탄현면에 있습니다.
▼ 경모재(景慕齋)는 재실로 사용이 되는 듯합니다.
▼ 경모재 옆에는 방촌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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