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의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을 보러 용암사에 왔습니다. 마애불이 용암사 뒤에 있어서 일주문을 지나야 합니다.

 

파주 용암사는 마애불과 관련하여 창건된 사찰로 보이며, 창건 시기는 고려시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1936년 이후에 절을 새로 지었다고 하며,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증, 개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 화려한 일주문입니다. 주차장은 일주문 오른쪽 밑에 있습니다

 

▼ 일주문을 지나면 작품성이 있어 보이는 두기의 석등이 보이는데, 석주에 박정희 (전)대통령의 이름이 보입니다. 박 전 대통령이 1970년대에 제1군단을 방문하였을 때 용암사를 방문했던 기념이라고 합니다.

 

▼ [자료:문화재청] 옛날사진을 보면 석등은 대웅전 앞에 있었습니다만,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모사한 탑을 배치해서 석등은 옮겨진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문화재청] 대웅전옆에 요사채로 보이는 건물 옆에 석탑과 석불입상이 보입니다.

 

▼ 작품성은 없어 보이는 칠층석탑과 키 작은 미륵불입니다. 별다른 내력이 없어 보이지만 안내문을 보면 이승만 전 대통령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 [자료:문화재청] 자료사진을 보면 불상은 마애불상 어깨에 있었습니다만, 1987년에 철거되어 요사채 옆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 대웅전 옆길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알 수 없는 작은 불상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머리에 얹혀 있는 보개가 좀 보기 그렇습니다.

 

▼ 사진으로 보면 크기를 가늠 할 수 없지만 실제로 보니 엄청 큰 불상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불상은 아마도 더 이상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불두와 불신이 한 몸처럼 보이지만 분리되어 있습니다. 

 

▼ [자료:문화재청] 마애이불 주위 세 곳에 새겨진 명문을 분석해 본 결과 그동안 고려 초기에 조성된 마애불로 알고 있었지만, 명문에 ‘성화(成化) 7년(1471년(성종 2))’의 명문이 발견됨에 따라 조선 초기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습니다

 

조선초기의 작품으로 보는 이유는 발원문에 등장하는 세조와 성종시대의 여러 왕족들의 이름과, 특히 왼쪽 불상의 둥근 갓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관모로 사용된 것이기에 마애불이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 천연암벽을 적절하게 가공하여 미륵불로 환생한 장인의 솜씨가 대단합니다.

 

▼ [자료:문화재청] 미륵불의 불두에 마마자국이 심하게 보이는데, 6.25 전쟁 때 총탄 자국입니다. 미륵불 앞에 불단이 없을 때의 사진으로서 전신을 볼 수 있습니다

 

▼ [자료:문화재청]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발행한 엽서에서 보는 마애불입니다. 벽제관 산 위에 있는 미륵불이라고 인쇄되어 있는데, 벽제관(터)은 근처에 있습니다. 

 

▼ 오른쪽의 마애불은 두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 마애불을 뒤에서 보면 불두가 여러 조각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펜스가 있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당겨 찍었습니다.

 

▼ [자료:문화재청] 마치 다정한 부부 같은 모습입니다. 만약 조선 성종 때 만들어졌다면, 세조와 정희왕후를 표현했을지 도 모를 일입니다. 세조가 조카(단종)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지만, 정희왕후와는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정희왕후는 파평(파주) 윤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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