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의 화석정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며, 문신이었던 율곡 이이(덕수 이씨)가 여생을 보내던 때의 정자로서,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의 임진강 아래 언덕에 있으며 북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파주 화석정의 내력을 보면 원래 고려 말기의 문신 길재(吉再)의 건물터(遺址)였던 자리였으나, 세종25년(1443), 이명신(李明晨;율곡 이이(李珥)의 5대 조부))이 건립하였고, 35년 후인 성종 9년(1478)에 이이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율곡이이는 화석정을 고쳐짓고 틈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 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시와 학문을 논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후 80여 년 동안, 터만 남아 있었다가 현종 14년(1673)에 이이의 후손들이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 때 또다시 불에 타버린 것을 1966년 파주(坡州)의 유림(儒林)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하였습니다.

 

1973년 정부가 실시한 율곡 선생 및 신사임당(申師任堂) 유적 정화사업때 화석정이 단청되고 주위도 정비되었습니다.

※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49세), 중종31-선조17))

※ 덕수이씨(德水李氏) ; 본관은 개풍이며, 율곡 이이와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있습니다


▼ 화석정(花石亭)은 아주 오래된 커다란 두 구루의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정자입니다.

 

▼ 화석정의 건물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 고려 때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전쟁이던, 반란이던, 여러 왕들이 피란을 갔는데, 임진왜란 때도 조선의 왕(선조)은 한양에서 의주까지 피란을 갔는데, 왜군들이 보면 참 허탈했을 것입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성을 공격당해서 빼앗기면 영주가 자살을 하면서 전쟁이 끝나는데, 조선은 왕이 궁을 버리고 도망을 갔으니... 함경도까지 쫓아갔습니다만, 결국은 패배하고 일본땅으로 돌아가려다 이순신 장군한테 걸려서 거의 다 죽었습니다. 


▼ 화석정의 주변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서 꼭 한 번은 들렸다 가면 좋은 곳입니다. 올라가는 계단은 화석정의 정면으로 만들어졌는데, 생각 같아서는 정면의 계단보다는 옆에서 돌아 올라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화석정의 건물 형태를 보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아름답고 한옥의 멋을 더한 겹처마의 건물입니다. 일반 정자로서는 꽤 멋을 낸 정자입니다

 

▼ [자료사진] 1966년 새로 지은 화석정의 모습은 말로만 정자이고, 창살을 둘러서 마치 비각처럼 보입니다

 

▼ [자료] 1971년의 화석정입니다. 현판의 바탕색은 흰색에 글씨는 먹글씨입니다.

 

▼ [자료사진_파주위키] 한국전쟁 전에 찍은 사진으로 지금의 화석정과는 많이 다르게 보입니다. 사방에 문이 달려 있고, 댓돌이 있고, 끝에는 방이 있었것처럼 보입니다. 지붕에 기와가 많이 올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마침 기와 교체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_경기일보] 덕수 이 씨 후손들이 원래의 화석정의 모습이라고 공개한 그림입니다. 옛날의 사진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 옛날 정자와 비교해 보면 크기가 좀 작게 보입니다. 지붕은 참 아름다운데, 기둥은 너무 빈약해 보입니다.

 

▼ 화석정의 글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입니다. 가끔 옛날 대통령들의 글씨는 보이기는 하는데, 최규하 전대통령 이후에는 대통령들의 붓글씨는 안 보입니다.

화석정(花石亭) 글씨 옆에는 병오(丙午四月), 박정희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병오년이면 1966년이고 4월에 쓴 글씨입니다. 

 

▼ 화석정 내부의 정면에는 한시가 적혀 있는데, 팔세부시(八世賦詩)라는 율곡 이이가 8세에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시라고 합니다.

 

▼ 자료를 찾아서 보니 팔세부시(八世賦詩) 라는 한시를  8살 난 아이가 지었다기에는 너무 무르익은 글솜씨가 아닌가 싶습니다. 율곡 이이가 8세 때라면 1544년이고, 조선 중종 39년입니다. 

시의 마지막에는 "신해소춘(신해년 음력 10월), 후학 밀양후인, 박일규 근서"라는 글씨가 보이는데, 아마도 신해년이면 1971년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씨를 쓰신 박일규라는 분의 자료는 없었습니다.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숲 속 정자에 가을은 저물었고,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시인의 품은 뜻은 그지 없어라.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서리맞은 단풍은 햇빛 바라 붉어라.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산은 홀로 둥근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었어라.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저무는 구름 속에 울음소리 끊어지네.

 

▼ 정자의 왼쪽에는 화석정 시라는 제목을 달아서 돌에 시를 새겨 놓았습니다.

 

▼ 화석정에서 임진강의 북쪽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 [자료_경기일보] 1960년대 미군이 찍은 사진이라고 하며, 붉은 화살표가 화석정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입니다만, 전쟁이 막 끝난 때여서 화석정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화석정 옆의 560년 된 느티나무는 어떻게 된 건지 아주 이상 합니다. 아마도 사진을 찍는 위치가 너무 멀고 겨울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 겹처마와 곡선이 참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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