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삼릉의 순릉은 공릉과 영릉의 사이에 있는 조선 9대 국왕 성종의 원비였던 공헤왕후의 능입니다. 공혜왕후는 잘산군(성종)과 혼인을 하였는데, 성종이 즉위후에 세상을 떠나서 왕비의 능제로 능이 만들어졌습니다.

 

한명회의 넷째딸로 공릉의 장순왕후와는 자매사이입니다. 여기서 한명회는 정치적으로 딸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알아 보면, 첫째딸은 세종의 부마(서녀 정현옹주) 윤사로의 며누리, 들째딸은 신숙주의 며느리, 셋째딸은 예종의 원비, 넷째딸은 성종의 원비로 보냈습니다.

 

아마도 공혜왕후가 오래 살았으면 지아비인 성종때문에 속깨나 썩었을것입니다. 성종이 여색을 너무 좋아해서 후궁들이 아주 많았었거든요!!!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파주삼릉 순릉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입니다.

 

 ▼ 공혜왕후의 순릉 위치그림입니다.

 

▼ 언니인 예종의 비 장순왕후의 능보다 격이 높은 왕릉으로서 모든 석물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장순장후는 예종의 세자빈으로 세상을 떠나서 원(園)의 능제로 꾸며져 있습니다.

 

▼ 파주삼릉의 순릉 자료사진입니다.

 

▼ 공혜왕후의 지아비는 성종입니다. 성종의 가계도를 올렸습니다. 첫째 왕비였던 공혜왕후는 자손이 없습니다.

 

- 능의 구성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파주 삼릉 내에 있는 3기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한 능인데, 공혜왕후는 중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 수라간, 수복방,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비각에는 한 기의 능표석이 있는데 ‘조선국 공혜왕후 순릉(朝鮮國 恭惠王后 順陵)’이라고 새겨져 있다.

 

능침은 병풍석은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2쌍씩 배치하였다. 장명등은 공릉의 장명등과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어 세부적인 모습은 조금 다르지만 조선 전기 장명등의 전반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점에서 비슷하다. 무석인은 머리에 투구를 쓰고 양손으로는 칼을 잡고 무관의 갑옷을 입고 목을 움츠린 모습이다. 갑옷의 선은 뚜렷하지만 얼굴은 다소 경색된 표정을 하고 있다

 

- 능의 역사

1475년(성종 5)에 공혜왕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장순왕후의 공릉이 있는 파주에 능을 조성하였다.

 

- 공혜왕후(恭惠王后) 이야기

공혜왕후 한씨(재세 : 1456년 음력 10월 11일 ~ 1474년 음력 4월 15일)는 본관이 청주인 상당부원군 한명회와 황려부부인 민씨의 넷째 딸로 1456년(세조 2)에 연화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와는 자매지간이 된다. 1467년(세조 13)에 자을(잘)산군(者乙(乽)山君, (성종))과 가례를 올려 천안군부인에 봉해졌으며, 1469년에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성종 사이에서는 소생을 낳지 못하였으며, 1474년(성종 5)에 창덕궁 구현전에서 19세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죽고 사는 데는 천명이 있으니, 세 왕후를 모시고 끝내 효도를 다하지 못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을 한탄할 뿐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 홍살문에서 직선으로 뻗어 있는 참로입니다

 

▼ 참로를 보면 뭔가 좀 허전 합니다. 향로 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 배위를 보고 있자니 참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복원 할 때 배위가 어떤 장소인지 알아 보고 복원을 했으면 좋겟습니다. 왕이 저기 올라가서 절을 할 수 있을까요? 너무 좁습니다. 배위는 왕이 와서 능제사를 지내기 전에 4번 절하고, 능제사가 끝나고 갈때 네번 절을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 수라간인데, 단청을 하였습니다

 

▼ 왕이 다니는 어로는 없고, 향과 축문을 들고 다니는 향로 하나밖에 없습니다.

 

▼ 단청을 한 수복방입니다. 왕릉에는 수복방과 수라간이 있는데, 단청을 한 곳 도 있고, 단청을 하지 않은 곳 도 있습니다

 

▼ 정자각의 앞모습 입니다만, 자세히 보면 참로가 동계와 서계로 이어지지 않고 정자각 앞에서 끊어진 상태인데, 아마도 복원과정에서 누락된것 같습니다.

 

▼ 동계의 운계 문양은 비바람에 많이 마모되어서 무슨 문양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운계의 모양은 아담하게 보입니다

 

▼ 능침에는 올라 갈 수 없기 때문에 자료사진으로 꾸며서 올렸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순릉의 여러 모습입니다.

 

▼ 망주석과 장명등의 자세하게 보는 사진입니다. 석공의 솜씨가 아주 세밀하게 보입니다.

 

▼ 순릉의 세호는 우측의 구명은 한쌍으로 보이는데, 좌측의 구멍은 두쌍으로 뚫려 있는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겟습니다.

 

▼ 문인석과 무인석를 골라서 비교하는 사진으로 만들었습니다.

 

▼ 봉분주위에서 능침을 지키는 석양의 모습인데, 양은 숫놈으로 만들었습니다. 왕릉마다 석양이 암놈으로 되어 있는 릉도 있고, 숫놈으로 되어 있는 릉도 있습니다. 석공의 재치가 보입니다

 

▼ 석호의 얼굴모습은 대개가 비슷합니다

 

▼ 예감이 많이 묻혀 있습니다.

 

▼ 기둥에 커다란 홈이 보이는데, 다른 구멍도 많이 보입니다. 아마도 말벌집인듯 합니다.

 

▼ 표석의 앞면/후면 자료사진입니다

 

▼ 한명회의 세째딸(장순장후)은 17세에, 넷째딸(공혜왕후)은 19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가을이 깊어가는 파주삼릉의 순릉에도 가을이 깊어 갑니다

- 끝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