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산성은 충주시 남쪽에 위치한 산성으로 충주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며,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여지는 이 성은 외축 내착형이며 산 정상을 이어 쌓아진 테뫼식 산성입니다.

 

1983년 충주시 조사에 의하면 성둘레는 1,145m이며 중간 중간이 무너지고 5개소에 775m의 성곽이 남아 있으며 성안의 넓이는 46,524㎡이고 성벽의 높이는 7∼8m에 이르고 있다.

 

성안에는 우물자리가 2개소 있는데 현재 물은 나지 않으며 동서의 산능선상에 문터가 있고 동쪽으로 수구가 있다. 또 성안에서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 및 기와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충주산성은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몽고병을 물리친 곳으로 추정(대림산성이라는 설도 있음)되며, 고려 고종 40년(1253) 9월 몽고가 제4차 침입을 감행하여 충주산성을 공격하자 충주 창정, 최수가 금당협에 매복하여 몽고군을 공격하여 승리하였고 같은 해 12월에는 포위당한지 70여일에 군량이 다하고 사기가 저하되자 방호별감, 승장, 김윤후가 전군과 관노까지를 격려하여 사력을 다해 싸워 적을 격퇴하였다.

 

다음 해 2월에 김윤후를 감문위섭상장군으로 삼았고 4월에는 충주를 승격하여 국원경으로 하였다. 1254년 9월에는 차라대가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갑자기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뿐 아니라 성안의 고려인이 열심히 싸우자 차라대도 물러갔다. 몽고의 침입을 받아 전 국토가 유린되었으나 충주산성은 끝내 수호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마고선녀가 7일만에 축성하였다고 하며 백제 개로왕 21년(475)에 축성하여 적을 방어하였다고도 한다. 개로왕이 바로 이 성 북쪽에 있는 안림동에 도읍을 옮기려 하였다는 설과 일치하고 있음에 주목된다.

_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충주산성의 전체지도 입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충주산성으로 오르는길은 마즈막재에서 임도, 또는 등산로를 따라서 올라가도 됩니다만, 임도를 따라서 걸어가는 편이 편합니다. 임도길은 1시간정도 입니다.

 

▼ 충주산성 또는 충주 남산으로 오르는 길은 임도를 따라서 걷거나, 등산로를 따라서 걸어도 됩니다만, 임도가 편합니다.

 

▼ 한가로운 임도길입니다. 이길은 가끔 MTB를 타시는 분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 충주남산의 땅밑에는 보이는 것처럼머 돌이 많이 있는데, 성돌로 쓰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적층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 충주남산 임도에서 바라보는 충주의 모습입니다. 한때는 백제가 도읍을 옮기려했던 중요한 곳 이었습니다

 

▼ 김윤후 장군이 몽고군의 5차 침입때 충주산성에서 70여일만에 물리쳤던 승리의 산성입니다. 고려 고종 40년때 였으며, 고려 무신정권 최항()의 시대였는데, 최우(崔瑀)가 아버지였고, 100년을 이어온 무신정권도 막바지에 이르던 때였습니다.

 

※김윤후 장군은 충주산성 전투 이전에도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의 2차 침입 때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에 있는 처인산성에서 살리타이 장군을 사살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 충주남산은 겉만 흙이고, 땅속은 바윗덩어리입니다. 산성의 입지를 고를때도 재료인 돌이 많아야 축성이 쉬운일입니다.

 

▼ 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남문지를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남문지까지 200미터쯤 됩니다.

 

▼ 임도에서 약300미터쯤 올라오면 만나는 북문지 입니다. 성벽의 모습을 보면 성돌이 납작하게 쌓여져 있어서 조선의 성벽과 구분이 됩니다.

 

▼ 충주산성에는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이 있는데, 모두 현문식 성문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서문지는 복원되지 않았습니다.

 

▼ 북문터에서 동문터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성곽입니다.

 

▼ 몽고가 고려를 39년간 7차에 걸쳐서 침입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고려는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고려무신정권의 크나큰 죄악의 결과를 역사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 동문터로 가는중에 만나는 곡성입니다. 곡성이라기 보다는 치성에 가깝게 상당히 밖으로 돌출되어 있습니다.

 

▼ 치성에서 바라보는 북문터 방향입니다.

 

▼ 동문터에 도착하였습니다. 현문식 성문과 우물터가 보입니다.

 

▼ 북문과는 다른 동문입니다.

 

▼ 동문밖에서 남문으로 뻗은 성곽이며, 성벽에 두개의 수구가 보입니다.

 

▼ 성안의 빗물을 빼내는 수로는 내부로 들어 갈 수록 좁아지고, 윗쪽으로 굽어져 있었습니다. 수구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나옵니다

 

▼ 성 밖에서 보는 동문터의 모습입니다.

 

▼ 성 내부에서 보는 동문터 방향

 

▼ 남산성 연못을 보고 가겠습니다.

 

▼ 연못의 규모는 꽤 큰 연못이었습니다. 발굴조사때 두개의 우물터중 하나인 연못입니다.

 

▼ 우물터를 뒤로 하고 남문터로 올라갑니다.

 

▼ 남문터로 가는 길에 돌아보면 게명산(774m)이 보입니다.

 

▼ 남문터로 가는 성곽은 미복원 상태 입니다.

 

▼ 남문터만 복원이 되었는데 현문식 성문입니다.

 

▼ 이제 서문터 바향으로 가는길에 무너진 성벽을 담아 보았습니다

 

▼ 남문터 소나무

 

▼ 남문터에서 서문까지는 대체로 이러한 모습입니다.

 

▼ 건물지로 보이는 터입니다만 특별한 설명은 없습니다. 발굴조사후에 흙으로 덮어둔 모양 입니다.

 

▼ 서문터는 복원이 않되어 있어서 어떤 모양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 서문터에서 바라보는 성곽이며, 멀리 계명산이 보입니다.

 

▼ 북문터로 가는 성곽에서 바라보는 서문터는 가까스로 흔적만 보입니다.

 

▼ 북문터의 성곽위에서 보는 계명산입니다.

 

▼ 북문터에서 이제 임도로 다시 내려갑니다. 남산성 한바퀴 도는데 1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 마즈막고개 삼거리에는 대몽항쟁전승기념탑이 있는데 한번 둘러 봤습니다

 

▼ 몽고5차 침공이 1253년에 있었는데 이때 충주산성에는 처인성에서 몽고장수 살리타리를 사살한 승장 김윤후장군이 70여일만에 몽고군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39년간 7차에 걸쳐서 고려 국토를 유린한 몽골군은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 기념탑에는 충주산성 전투의 개요가 새져져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볼 만 합니다.

-끝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