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성은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에 있으며,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파사니사금(婆娑尼師今, 재위 80∼112) 때 축성되었기 때문에 파사성이라고 하며, 또는 고대 파사국(婆娑國)의 옛터가 있어 파사성으로 불리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문헌적으로 뚜렷한 근거는 없다.(신라 파사왕 재위때는 한강중부 유역이 백제땅이었으므로,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파사성 성벽의 축성방식과 현문구조, 성돌의 치석방법 등으로 미루어 6세기 중엽 이후 한강유역으로 진출한 신라에 의해 초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인 임진왜란 때 수축하였다.
파사성에 대한 문헌기록은 조선 초기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이때 이미 ‘고산성(故山城)’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선조실록(宣祖實錄)』에는 1595년(선조 28) 3월에 승군총섭(僧軍總攝) 의암(義巖)이 산성을 수축하였다고 기록되었으며, 유성룡(柳成龍)의 『서애집(西厓集)』에도 파사성의 수축에 대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이후 파사성에 대해서는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1656) 등 17~19세기의 각종 지리지에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_다음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파사성의 북서쪽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는 남한강과 이포보의 모습입니다.
▼ 파사성 주차장은 2020년4월 현재 파사성 인도교를 만든다고 공사가 한창입니다. 그래도 10여대는 주차가 가능 합니다. 붉은 점선이 파사성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 파사성의 둘레는 1.8km이고, 동문과 남문이 있었으며, 신라가 한창 영역을 확장 할 때 6세기에 축성을 하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때는 승군이 1592년 부터 3년여에 걸쳐서 성을 다시 쌓았습니다. 한문으로 풀어 보면 婆(할미파),娑(춤추사),城(재성)가 됩니다.
▼ 하늘에서 보는 파사성의 모습입니다. 치성(포루)이 3개가 있었습니다.
▼ 주차장에서 올라 가면서 돌아 보는 이포보의 모습입니다
▼ 주차장에서 약 250m거리에 파사성 남문지가 있습니다. 중간 지점에서 부터는 길이 경사가 좀 있어서 약간 힘듭니다
▼ 길가에서 자라는 개복숭아 꽃인 듯 한데. 포커스가 약간 빗나갔습니다.
▼ 남문지의 모습이며, 우측 사진은 동문지 방향의 성곽이지만, 많이 무너졋습니다.
▼ 남문지에는 2개의 문의 흔적이 있습니다. 붉은원은 삼국시대의 현문이고, 우측의 문은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성곽을 허물고, 성문을 달았던 자리인데, 아마도 마차가 드나들 수 있도록 따로 성문을 만들었을것입니다.
▼ 정면에서 보는 남문의 모습이며 주춧돌이 6개 이고, 문루가 있었습니다. 성돌을 보면 삼국시대의 성돌처럼 두깨가 얇은 성돌로 복원하였습니다
▼ 성 안쪽에서 보는 남문지 입니다. 서쪽방향의 성곽만 복원하였습니다.
▼ 동문지 방향으로 돌아 보았습니다.
▼ 성안에는 옛날 건축물에 쓰였던 주춧돌이 몇개 보입니다.
▼ 남문지에서 서쪽으로 보는 방향이며, 성곽에서 보면 남한강이 잘 보이는 곳 입니다
▼ 성 내부에는 발굴조사시 찍었던 사진들이 보이는데, 참고로 올려 봅니다.
▼ 건물터 옆에 작은 샘이 보이는데 발굴사진에서 보는 우물과는 크기 차이가 있습니다.
▼ 남문지에서 동문지로 가는 성곽은 언뜻 보기에는 아무 것 도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숲으로 들어가서 보면 대부분 무너져 있습니다
▼ 동문지의 모습입니다. 동문지에서 남문지까지는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치성은 제외)
▼ 동문지도 조선시대때는 성문이 있었을 것 으로 보입니다. 삼국시대때는 현문식이었지만, 조선때는 말들도 드나들어야 했으므로 문의 형태를 현문식에서 성문식으로 바꾸었을 것 입니다.
▼ 성 밖에서 보는 돈문지의 좌,우 모습입니다.
▼ 성밖에서 보는 동문지의 정상방향은 복원공사가 있었습니다.
▼ 정상방향으로 가면서 뒤 돌아서 보는 동문지 모습입니다.
▼ 정상부근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250미터 정도만 가면 마애여래입상이 있습니다.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여주군과 양평군의 경계가 파사성인듯 합니다. 북쪽으로 양평의 추읍산이 보입니다.
▼ 북쪽에는 성문이 없고 곡성이 있습니다.
▼ 저 돌탑을 돌면 곧바로 마애여래입상이 보입니다.
▼ 임시건물로 보이는 법당(?)이 보이고, 커다란 바위벽이 보입니다.
▼ 바위틈에서 물이 아주 조금씩 나오는데, 사진 우측 아래에 보입니다
▼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와서 보는 모습입니다
▼ 북쪽에서 남문지 방향으로 성곽를 걸으면서 내려 가는데, 남한강의 이포보를 바라보며 갑니다.
▼ 삼국시대때의 성을 보면 남한강을 따라서 유명한 성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영월의 정양산성, 단양온달산성, 단양적성,충주산성,충주장미산성등이 있는데, 파사성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남한강을 따라서 고구려와 신라, 백제가 오랫동안 대치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북서쪽의 성곽은 대부분 복원이 되었습니다. 성곽의 상태도 좋아서 걸어보기는 더 없이 좋습니다
▼ 남한강의 물은 강천보를 넘어와서 이포보를 거쳐고 여주보를 거쳐서 팔당으로 흘러 갑니다.
▼ 한그루의 소나무에서 가지가 2개로 자랐는데, 연인소나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만, 읽으려면 한참 걸릴것 같아서 패스~~~
▼ 연인 소나무를 지나서 남문지로 내려 갑니다.
▼ 안내도를 보면 포루2라고 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때 원래의 파성성 성벽에 덧대어 치성을 쌓았습니다만, 복원되지는 않았습니다
▼ 여기서 경기문화재단에서 실시한 발굴조사때의 사진을 몇장 보겠습니다.
- 기와는 숫기와만 보이는데, 신라시대의 기와처럼 보입니다. 남한산성 행궁에서 보면 신라시대의 기와는 조선시대의 2배 크기였습니다
- 포루(2)를 보면 원래의 성벽에 치성을 덧대어서 축조한 모습이 잘 보입니다.
▼ 칼과, 창, 화살촉등이 발굴되었습니다
▼ 2002년 발굴조사때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남한강 강변에 금모래가 많이 보이고 물도 많지 않았던때입니다. 남한강도 4대강사업 이전이 훨씬 보기 좋았습니다
▼ 고배(高杯)라고 표기 하였는데, 굽다리접시 입니다.
▼ 성곽위에서 바라보는 마애여래입상입니다.
▼ 북서쪽 복원성곽이 일부 복원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 이제 남문지가 가까이 보입니다
▼ 삼국시대때의 남문지입니다. 성 안쪽과 바깥쪽의 모습입니다.
▼ 남문지로 와서 주차장으로 내려 갑니다. 답사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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