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있는 궁궐들을 모두 둘러보고 나서, 좀 아쉬운것이 남아서 조선왕릉을 돌아보기로 하고, 태릉에 있는 조선왕릉전시관을 먼저 가 보았습니다.
유네스코에 등재 되어 있는 조선왕릉이 40기나 되므로 조선의 왕릉에 대해서 먼저 알아두거나, 참고를 해 둘것이 있을것 같아서 방문해 보았습니다.
▼ 참고로 왕릉의 위치를 표시한 자료그림을 올렸습니다(북한의 2기는 제외)
▼ 조선왕릉전시관은 태릉에 있는데, 태릉과 강릉의 구역안에 별도로 있습니다. 왕릉 주위에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기는 하지만, 개발광풍에 이렇게 나마 보존되어 있는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왕릉을 둘러보면서 느낀점은 조선의 왕릉이 지금의 그린벨트 역활을 해서 그동안 온전히 보존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 예전에는 태릉,강릉 이렇게 불렀는데, 문화재청에서 "서울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이라고 지역이름을 앞에 붙여서 씁니다. 태릉과 강릉 구역에 왕릉전시관이 같이 있어서 입장료(성인 1000원)를 내면 왕릉전시관,태릉,강릉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릉은 태릉선수촌 너머에 있으므로 일단 나와서 15분 정도 걸어서 가야 합니다. 입장권은 강릉매표소에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10월1일 부터는 태릉에서 태릉선수촌 뒷길로 강릉으로 갈 수 있습니다.
▼ 조선왕릉(40기)이 유네스코에 2009년 6월 30일에 등록되었고, 2009년 12월 24일에 조선왕릉전시관이 개관되었습니다
▼ 조선왕릉전시관으로 들어가는 길 바닥에는 금천교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금천교를 건너면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 조선왕릉전시관의 자료들을 전부 사진으로 찍어 올렸습니다. 애책문(哀冊文;왕과 왕비가 죽으면 그 죽음을 애도하는 글 )은 정조실록에 있는데, 정조가 승하하고 50여일이 지나 건릉으로 옮겨질때의 모습을 순조의 명에 의하여 심환지가 쓴 글입니다. 심환지는 정조와 정치적인 견해가 많이 달랐으나 끊임없이 소통하였던 신하였습니다, 글은 참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 왕이 승하 하시면 장례절차가 시작되는데, 그 절차를 적어 놓은것입니다만, 사실은 절차가 무척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간단하게만 알고 있는것이 뇌건강에 좋을듯 합니다. 문화재청(조선왕릉)의 자료에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따르면 왕이 승하한 후 3년에 걸쳐 총 60 단계가 넘는 절차를 밟아야 긴 국상의 예가 끝을 맺는다고 합니다.
▼ 왕이 승하하면 국장(國葬)을 치르는 대소 신하들은 우선 빈전도감(왕의 옥체에 관한 일을 담당), 국장도감(발인에 필요한 의장 준비 담당), 산릉도감(왕릉 조영에 관한 일을 담당)이라고 하는 임시 기관을 설치하고, 각 기관에 관리들을 임명하여 업무를 분담하도록 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재궁(관)을 능지로 옮기는 절차인 발인반차도(發靷班次圖)를 재현해 놓은 모습입니다.
▼ 왕릉에도 부장품이 들어 가는데, 일반적으로 왕이나, 고위직들의 장례에는 귀금속들을 묘에 같이 묻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조선시대때에는 유교이념에 따라서 간소하게 왕이 사용하던 물품들의 모조품을 만들어서 매장하였다고 합니다.
▼ 사진에는 잘 안보이지만, 정조국장도감의궤에서 발인반차도중에서 부장품가마의 행렬 부분입니다. 부장품 가마의 행렬이 마치 귀한 보물들을 싣고 가는듯 하지만, 실제로는 왕이 실 생활에 쓰던 소품들을 복제해서 마련했던 것이므로 도굴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활에도 기여하였다고 합니다.
▼ 조선왕릉이 조성된 년표입니다. 1391년(제릉)~1905년(유릉) 까지 600여년간 왕들의 무덤을 전부 가지고 있고,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게 보존하고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는 참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 왕릉이 조성되는 과정을 디스플레이에서 보여 주는데, 이해가 빨리 오게끔 잘 만든 영상입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문화재청(조선왕릉디지탈백과) 사이트에 영상물이 링크되어 있습니다.
▼ 석실로 조성한 왕릉의 단면을 보여 주는 모형인데, 태조때 부터 석실구조였으나, 세조의 광릉때부터는 세조의 유언에 따라 회격구조로 왕릉이 조성되었으며, 석실을 만드는 대신 석회 혼합물인 삼물(三物석회+모래+황토)로 덮은 회격구조는 석실구조에 비해 인력 소모가 덜하고 도굴의 위험이 적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 태조 건원릉의 신도비 탁본입니다.
▼ 왕릉의 수호신인 문석인과 무석인의 모형을 복제하여 놓은 모습입니다. 맨 앞은 건원릉의 문,무석인입니다.
▼ 태조 건원릉 문무석인 모습입니다. 무석인의 모습이 아주 세밀합니다.
▼ 태릉(문정왕후;중종 2계비)의 문무석인입니다. 무석인이 확실히 조각작품성이 뛰어 납니다.
▼ 융릉(장조;정조부친)의 문무석인데, 인상이 아주 부드러운 모습입니다.
▼ 능관리자는 주로 늦은 나이에 벼슬길에 들어선 참봉중에서 선발하는데, 능의 관리에 막중한 책임이 따르기는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초고속으로 승진이 보장되는 위치에 있는 요직이었다고 합니다. 세조를 도와서 계유정란을 성공시킨 한명회도 능참봉직을 거쳤다고 합니다
▼ 좌측이 광릉 참봉 교지이며, 우측이 헌릉지 입니다.
▼ 강명달 광릉 참봉교지의 안내문입니다.
▼ 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獻陵)의 제반사항을 기록한 헌릉지입니다
▼ 영조가 아버지인 숙종의 능인 명릉(明陵)에 참배하면서 심정을 나타낸 "명릉향대청술회"입니다.
▼ 산릉제례때는 왕이 능에 와서 제례를 치르는것이 원칙이지만, 대신들이 간접적으로 제례를 치른적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 묘호가 없는 왕이나, 왕비, 추존왕,추존왕비등은 릉(陵)으로 격이 부여된 신위만이 종묘에 안치되지만, 원(園)이나, 묘(墓)을 받은 왕족은 종묘에 안치되지 않습니다.
▼ 역대 왕과비의 기일을 기록한 현판입니다. 영조때 만들었으며, 경종의 기일까지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 다음은 태릉과 강릉의 안내입니다.
▼ 명종과 인순왕후 어보이며, 우측은 문정왕후(11대 중종 2계비)의 어보입니다. 어보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으로,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 궁중의식에서 시호ㆍ존호ㆍ휘호를 올릴 때 제작해 일종의 상징물로서 사후에는 종묘에 안치됐습니다. 외교나 행정용으로 사용되는 국쇄((國璽)와는 다릅니다.
▼ 문정왕후(명종의 모친) 어보입니다. 물론 복제품입니다
▼ 명종과 인순왕후 어보입니다.
▼ 문정왕후의 국장이 근 100일간 이었습니다만, 명종21년에 일본사신이 문정왕후 혼전에 향을 올렸다는 기록이 눈길을 끕니다.
▼ 왕릉전시관을 나서서 태릉쪽으로 걸어 갑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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