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의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흥법사는 신라말기에 창건되어 조선중기에 폐사된 절입니다. 흥법사는 언제 창건되어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폐사된 지 수백 년이 지나서 그런지 절터는 거의 농경지로 사용 중입니다.
원주에는 3대 폐사지가 있는데, 거돈사지, 법천사지, 그중의 하나인 흥법사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흥법사지에는 남아 있는 유구는 거의 없고, 다만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의 이수와 귀부만 남아있으며, 흥법사지에 있었던 진공대사승묘탑과 흥법사지에서 출토한 것으로 전해지는 염거화상탑이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습니다
▼ 전(傳)흥법사지 염거화상탑은 흥법사에 있었을 것으로만 추정되는 승탑이며, 국립중앙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습니다
▼ 염거화상탑을 옮기는 중에 발견된 염거화상탑명동판이며, 회창 4년, 즉 844년(신라 문성왕 6)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회창會昌 4년 간지가 갑자이던 해 9월 29일에 천화한(돌아간) 염거화상의 탑으로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지 1804년이 지나서인데, 이 나라 경응 대왕(문성왕)의 때이다.
▼ 유리건판사진으로 보는 흥법사지이며, 절터 앞을 흐르는 강은 섬강입니다
▼ 현재 흥법사지에 남아있는 유적은 진공대사탑비(이수 및 귀부)와 삼층석탑뿐입니다.
▼ 흥법사지 앞을 흐르는 강은 섬강이며, 고려시대나 조선시대까지는 어느 정도의 배는 드나들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붉은 선이 흥법사지로 추정되는 구역입니다.
▼ 포털의 지도서비스에서 보는 흥법사지는 거의 밭이며, 이미 오래전부터 농경지로서 이용되어 왔습니다
▼ 밭으로 되어 있는 경작지 전부가 흥법사지 구역이었을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안내문에서 보면, 탑의 조성양식은 통일신라탑이지만, 축조시기는 고려전기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 현재 삼층석탑이나, 진공대사승탑의 주위는 이미 오래전에 발굴조사가 끝난 후에 다시 밭으로 경작 중인 듯이 보입니다.
▼ 유리건판으로 삼층석탑의 자료사진을 보겠습니다. 오래전부터 밭을 일구면서 기와조각, 잡석들을 탑 주변에 모아 놓았습니다.
▼ 석탑 기단부의 모양을 확인하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잡석들을 치우고 사진촬영을 하였습니다.
▼ 상륜부에는 노반(路盤)과 복발(覆鉢)만이 남아 있습니다만, 삼층석탑은 섬가을 건너 저 멀리 마을과 뒷산이 어우러져 보입니다
▼ 농작물을 거두어 들이고, 문화재 발굴조사로 어수선합니다.
▼ 1층 탑신석의 한 면에는 문고리를 새겼습니다.
▼ 1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솟아 피어나는 모습을 조각하여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으며, 2층 기단의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를 새겨 놓았습니다.
기단의 갑석(甲石)을 자세히 보면 위에서부터 면석을 받치는 굄석을 두었으며, 아래로 경사지게 3단으로 꺾어 놓았습니다.
▼ 진공대사의 법명은 충담(忠湛)이며, 신라 경문왕 9년(869년)에 출생하여 고려태조 23년(940년)에 흥법사에서 입적하였습니다.
입적 후 1년 후인 고려태조 24년(941년)에 고려태조가 직접 비문을 지었는데, 비신(碑身)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비문은 '정관집자'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 1910~1930년으로 추정되는 사진이며, 사진을 촬영하기 전에 승묘탑 주위를 깨끗이 치우고 촬영을 하였으며, 승묘탑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하여 조선인 농부를 옆에 세웠습니다
▼ 담벼락에 받침대로 쓰이고 있었던 진공대사탑비입니다.
▼ 세 조각으로 깨어진 진공대사탑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 비신은 깨졌지만 다행히 진공대사탑비의 탁본은 남아 있으며, 진공대사탑비의 비문은 고려태조가 직접 글을 지었습니다. 탁본은 '정관집자(貞觀集字)'라는 탁본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 고려국(高麗國) 원주(原州) 흥법사(興法寺)로 시작하는 비문은 최광윤(崔光胤)이 왕명(王命)을 받들어 당태종(唐太宗)이 짓고 왕희지(王羲之)가 쓴 「대당삼장성교서(大唐三藏聖敎序)」중에서 집자(集字) 하여 새겼다는 뜻입니다.
▼ 진공대사승탑은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으며, 왼쪽의 석함은 진공대사를 화장후에 뼈를 임시로 담아 두었던 석함으로 추정한다는 자료도 있지만, 불교경전이나, 진공대사의 유품을 담아 두었던 석함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석함은 진공대사승탑을 서울로 옮길때 땅속에서 나왔습니다.
▼ 흥법사지에 남아 있는 진공대사탑비의 이수와 귀부의 모습이며, 탑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 비신(碑身)의 덮개돌인 이수(螭首)의 전액(篆額)은 진공대사(眞空大師)라고 음각되어 있으며, 조각된 비용(飛龍)이 언듯 보아도 앞뒤로 각각 4마리, 좌우로 각각 8마리 총 12마리가 대칭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 우측면의 모습이며, 용의 주둥이는 깨졌습니다.
▼ 좌측에서 보는 모습입니다.
▼ 여의주를 물고 있는 귀부(龜趺)의 머리 모양은 용머리입니다.
▼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석등의 연화대석이 왠지 폐사지의 쓸쓸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른쪽에 감운대(感雲臺) 최용숙(崔瑢淑)으로 음각된 돌기둥은 아마도 조선시대 서원이 있었을 때 구름이 드리운 섬강의 경치를 보는 곳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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