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도시로만 알려진 원주시의 원주역사박물에 가 보면, 의외로 고려시대의 불교유물이 곳곳에 산재하여 있는 사실에 매우 놀라게 됩니다.

박물관에서는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해설사님의 설명을 자세히 듣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되는데, 해설사님의 설명에 따르면 고려시대에서는 원주와 충주가 중원역사문화권으로 묶여있는 도시이며, 불교문화가 꽃피운 대표적인 지방도시라고 합니다.

※  주차장은 정문과 후문에 있으며, 다소 좁은 편입니다.

※ 자료사진은 e뮤지엄, 원주역사박물관, 조선고적도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2000년 11월에 원주시립박물관으로 개관하여 2010년 2월에 원주역사박물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었으며, 증축, 변경등을 통해서 발전하여 왔습니다.

 

▼ 박물관 내부에서 보는 자료는 사진자료이며, 별다른 설명 없이 사진자료로 대신하겠습니다.

 

▼ 원주(原州)라는 지명은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처음으로 정해졌습니다.

 

▼ 원주는 남한강을 지나는 지점에 흥원창(興元倉)이 있어서 수로교통의 거점지였으며, 육로 또한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여 육로 교통의 거점도시였습니다.

 

▼ 원주의 남한강에 있었던 흥원창(興元倉)을 그린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입니다. 원주의 흥원창은 고려의 13조창중 하나였으며, 세곡을 물길을 따라서 개경까지 운반하던 수운창(水運倉)이었습니다

 

▼ 원주는 고려시대에 불교가 흥하여 이름난 승려들이 많이 머무르기도 하였습니다.

 

※ 원주지역의 불교문화재를 알아보겠습니다

 

▼ 영전사지(영천사지) 보제존자사리탑은 특이하게 일반 석탑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두기의 탑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습니다.

 

▼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있는 보제존자사리탑입니다

 

▼ 보제존자는 나옹선사이며, 사리는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는데, 여주 신륵사, 양주 회암사지에 있습니다.

 

▼ 문경의 대승사 묘적암에 있는 보제존자 나옹선사의 영정이며 자세히 보면 목에 삼도를 그려 넣었습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원주역사박물관에서 야외전시장으로 나가는 유리문에 지광국사탑비의 문양을 시트지로 부착하여 놓았습니다

 

▼ 지광국사탑비 비신의 상단에 세긴 문양을 그대로 재현한 그림입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문양인데, 어떻게 탑비에 문양을 새겼는지 석공의 재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신의 상단 중앙에 새겨진 글씨는 '贈諡智光國師玄妙之塔碑銘(증시지광국사현묘지탑비명)'이라는 전액(篆額)이 새겨졌습니다.

 

▼ 지광국사탑 전액에 새겨진 '지광국사현묘탑'은 아래 사진입니다.(조선고적도보). 일제강점기 경복궁의 조선총독부 박물관 앞에 있었을 때의 모습이며, 현재는 원주 법천사지에 귀향하여 있습니다


 

▼ 민긍호 의병장이 해산된 원주 진위대를 이끌고 일본 우편취급소와 경찰서를 습격하는 그림입니다.


 

▼ 원주시의 문화유적 분포도를 파노라마 화면으로 보여줘서 한눈에 문화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 원주와 충주는 철불이 많은 지역으로서, 철의 생산이 많았던 충주지역의 철불문화가 원주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봉산동석불좌상 광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대좌는 8각연화대좌(八角蓮華臺座)이며, 팔부신중을 도두라지게 새겼으며, 하대는 박물관에서 새로 끼워 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 납석제음각여래좌상(蠟石製陰刻如來坐像)의 설명을  e뮤지엄에서 가져왔습니다.

 

납석을 배모양으로 깎은 뒤 한 면을 편편하게 갈아 만든 석재에 각각 1구의 여래좌상과 4구의 나한상을 선각하였는데 광배를 나타내는 다리미 모양의 조형이 매우 이채롭다. 아기같이 귀여운 얼굴의 표현과 서투른듯한 솜씨의 칼새김으로 미루어 개인의 원당(願堂)에 안치되었던 원불(願佛)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제일 큰 여래좌상을 본존으로 하여 각각 그 좌우에 나한상이 배치되도록 구성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소박한 솜씨로 새겨진 나한의 천진한 표정은 현대화가 이중섭의 회화를 연상시켜 주는데,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시대를 뛰어넘는 한국적 조형의 보편적 특색을 잘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 1973년 당시 원성군 귀래면 주포리 산 52-2에서 장용기 씨가 땅에 묻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 충효사는 효자 황무진(黃戊辰 1568~1652)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며, 문막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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