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봉산동의 신선암 입구의 길 옆에 세워져 있는 석불입상의 정식 명칭은 '원주 봉산동 석조보살입상(原州 鳳山洞 石造菩薩立像)'입니다.
키 높이는 일반 성인의 키 정도이며 체구도 일반 성인과 비슷하며 고려시대 양식의 불상이며 원래는 다른 곳에서 신선암 입구로 이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 신선암 입구에서 오른쪽 산기슭에 바투 서 있는 아담한 모습의 석조보살입상입니다
※ 원주역사박물관에서 자료를 인용하였습니다.
◇시대 및 용도: 고려 전기 보살 입상
◇내력과 유구현황 : 봉산동 석조보살입상은 높이 1.78m, 두고(頭高) 0.43m, 폭 0.5m의 규모이며, 사람 키 만한 크기에 비교적 당당한 모습인데,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와 보살상을 세워놓은 대좌(臺座)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전하는 말에는 천왕사지(天王寺址)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나 출토된 사지에 대한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양식적 특징 : 화강암 1석으로 조성된 보살상은 목이 절단된 것을 보수해 놓았다. 코에는 깨졌던 것을 보수한 흔적이 있다. 꼿꼿한 자세로 서 있는 하반신에는 허리 아래부터 무릎을 덮는 치마[裙衣]가 두 다리 위로 갈라져, ‘W’자형으로 흐르고 있다.
머리 위에는 높직한 익선관(翼善冠) 모양의 보관(寶冠)을 썼고 원만한 상호(相好)의 각 부는 정제되어 있다. 삼도(三道가 있어 자비스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을 하고 있다.
법의(法衣)는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으며 옷주름은 두 발에 각기 5개의 U 자 문양으로 표시했다. 오른손은 위로 들고 왼손은 내려서 아랫배에 두었으나 신체에 비해서 팔은 가늘고 손이 작아 조화롭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수인(手印)은 확실하지 않다.
이 보살상은 보관이 익선관 형태인 점과 법의가 양쪽 무릎에서 각기 원호형을 보여 주목되며, 전체적으로 직립이면서도 뒤로 약간 제쳐진 동체를 하고 있다. 각 부의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며칠전에 보러 왔다가 보수공사를 하고 있어서 날자를 늦춰서 와보니 말끔히 정비는 되었습니다
▼ 머리 부분이 마모가 심하고 철분성분으로 오염이 심하기는 하지만 대략적인 모습은 알아볼 수 있습니다. 머리에 쓴 관(冠)은 조선시대의 왕이 쓰던 익선관(翼善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 불상은 조성한 시기는 고려초기입니다.
▼ 일제강점기때 찍은 흑백사진에서 보면, 현재의 봉산동 신선암 입구가 아닌 다른 곳의 야산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 부분이 어느 정도 마모가 덜되어 있어서 표정을 알아볼 수 있는데, 볼살이 오른 매우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 자료사진에서 보면 오염된 부분을 세척하여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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