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춘천박물관(2층) 브랜드실에서는 영월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상을 전시하고 있는데, 마치 옛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지금 앞에서 보는 것같이 친근한 모습이 오랫동안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돌 한 조각에 이토록 생생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 놀랍고, 진한 여운이 남아서 보고 또 보고 싶은 마음을 끄는 작품입니다.

 

▼ 영월 창령사터의 모습이며, 기와집은 개인적인 불당이라고 합니다.

 

오백나한상이 발견된 사연은 매우 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2001년 어느 날 영월군 남면의 깊은 산골에 불심 깊은 어느 부부가 개인 불당을 지으려고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한 돌을 씻어보니 석가모니의 얼굴이 나타난 것입니다.

 

신고를 받은 강원도문화재연구소에서는 발굴을 통해서 나한상 316점을 찾아 냈고, 기와 파편에 새겨진 문자 창령(蒼嶺)을 확인하여 그곳이  창령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임을 확인했습니다.

 

▼ 오백나한상을 발굴하면서 蒼嶺(창령)이 새겨진 기와파면이 발굴되었는데, 문헌상으로만 존재하던 창령사터를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오백나한상을 전시하는 브랜드실의 내부입니다. 전체적인 조명은 어둡게 하고 개별적인 나한상은 Spot조명으로 각각의 나한상의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 오백나한(五百羅漢)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적한 뒤 그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모인 500명의 불교성자를 가리키는 단어다. 불가에서 깨달음의 한 단계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성취한 500명의 성자를 ‘아라한’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서 아라한(阿羅漢)이란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의 ‘arhan’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말이다._불교신문

 

즉 아라한의 줄임말이 나한(羅漢)입니다

 

▼ 어렵고, 한넚이 높은 곳에만 계신 줄 알았던 석가모니인데, 영월의 창령사에 있는 오백나한의 표정과 미소는 마치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닮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 얼굴모습도 각각 다르고 옷의 모양도 각각 다르게 표현한 장인은 어떤 분이었을까?, 오백나한을 만든분은 아마도 자신의 가족들, 매일 마주치던 동네 어르신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진짜 깨달은 나한은 오백나한상을 만든 장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는데,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이 삼라만상의 모든것을 깨달은 사람처럼 평온함을 무심한 돌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인가...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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