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에는 한글로 같은 이름의 영릉이 두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17대 국왕 효종과 인선왕후의 영릉(寧陵)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4대국왕 세종과 소헌왕후의 영릉(英陵)입니다. 먼저 효종의 영릉을 보고 나서 왕의 숲길로 이어진 길을 따라서 세종의 영릉으로 갔습니다만, 2018년10월 현재 세종 영릉의 능침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들이 복원공사중이라서 출입금지 지역으로 2018년 12월말까지 정상적인 관람이 불가능 합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효종의 홍살문 왼쪽의 왕의 숲길을 따라서 세종의 영릉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 세종 영릉의 상설도를 참고사진과 함께 올려보았습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입니다.

 

- 능의역사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다.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

 

- 능의구성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였다.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 세종의 가계도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원비 소헌왕후에서 8남/2녀를 두고 후궁에서도 아들들이 많이 있었는데, 아들이었던 문종이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순조롭던 왕의 자리물림이 단종에서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 세종의 생애 이야기

세종은 1397년(태조 6)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418년(태종 18)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에 22세의 나이로 조선 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대왕은 54세로 승하할 때까지 31년 6개월의 재위 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을 설치하여 유망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진흥하여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였다.


민본 정치를 중요시하였는데, 당대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백성들과의 소통을 바라던 세종의 고민이 낳은 산물이었다. 유교 정치와 자주적인 문화의 융성을 통하여 조선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큰 번영을 가져왔다.

 

 

▼ 효종의 영릉 홍살문 앞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왕의숲길을 따라서 천천히 길을 따라서 갑니다.

 

▼ 세종의 영릉옆의 수복방앞에 왔습니다.

 

▼ 세종의 영릉비를 대략 읽어 보면 원래의 비문이 멸실되어 다시 비문을 새겼다는 글입니다.

 

▼ 세종영릉의 비각의 모습입니다.

 

▼ 영릉 표석의 자료사진입니다. 정면에는 총알자국이 여러개 보이는데, 많은 왕릉의 표석에서는 총탄자국이 보이기도 합니다. 

 

▼ 수복방의 모습입니다.

 

▼ 정자각 앞으로 가는길은 막혀서 능침으로 올라갑니다.

 

▼ 능침으로 올라가면서 정자각의 뒷모습을 담아 봅니다.

 

▼ 정자각 앞으로 깔려있던 향로와 어로는 전부 철거 되었습니다. 공사는 2018년 12월까지 입니다.

 

▼ 세종 영릉의 능침 모습을 여러장 올려봅니다.

 

▼ 능침의 왼쪽 모습입니다.

 

▼ 능침의 오른쪽 모습입니다.

 

▼ 오른쪽 문석인의 모습입니다.

 

▼ 오른쪽 문석인의 모습입니다.

 

▼ 왼쪽의 무석인의 모습입니다.

 

▼ 오른쪽의 무석임의 모습입니다.

 

▼ 오른쪽 무석인의 자세한 모습을 보면 정말 자세히도 문양을 새겼습니다.용과, 호랑이의 얼굴모습이 자세히 보입니다.

 

▼ 이제 다시 효종의 영릉방향으로 길을 나가야 합니다.

 

 

▼ 세종 영릉의 여러 건축물들이 공사중이어서 자료사진으로 대신하여 봅니다.

 

▼ 세종 영릉의 재실모습입니다.

 

▼ 훈민문은 원래 왕릉의 건묵물은 아니고, 왕릉영역과 세종전 영역을 구분하기 위한 문이었을것으로 봅니다.

 

▼ 왕릉의 연지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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