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고달사지에는 1000년의 세월을 넘기명서 대부분의 건물과 석탑등은 없어졌지만, 매우 뛰어나고 신들린 예술적 감각을 가진 석공들의 작품은 지금까지도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석공들은 불꽃처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작업에 임하였고, 비록 자신의 이름 몇자 새기지 못하는 작품이었지만 후손들에게는 매우 큰 감동을 주는 승탑을 남기셨습니다.
고달사지 원종대사탑(승탑)은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높이 4.3m의 고려시대의 승탑으로서 일반적인 승탑으로는 감히 비교하기를 거부 할 정도로 크기가 웅장하고, 대담하면서도 매우 섬세한 작품성을 가진 원종대사의 승탑입니다.
원종대사탑은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승탑의 기본형인 팔각원당형 구조를 잘 따르면서도 조각의 세부 수법에서는 고려 특유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서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 안내문에 따르면 원종대사는 958년(고려광종 9년)에 입적 하였고, 원종대사승탑이 세워진 시기는 977년(고려경종2년)이므로 원종대사가 입적 한지 19년 후에 승탑이 완성 되었습니다.
▼ 원종대사탑은 보물7호 입니다. 고달사지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유물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대좌가 벌어지고, 옥계석의 귀꽃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거의 완벽한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1000년하고도 44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과 조선시대의 불교탄압을 이겨내고 온전한 모습을 바라보는 지금은 대단한 행운을 누리는지도 모릅니다
▼ 거북의 머리방향을 보지 않으면, 정면인지, 측면인지 모를정도로 원형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 원종대사승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의 각 면에는 내부에 꽃 형태의 무늬가 있는 안상(眼象)이 2구씩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16엽의 연판이 돌려졌다. 중대는 이 승탑에서 가장 조각수법이 뛰어난 부재로써 거의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용과 같은 얼굴의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가운데 거북을 중심으로 총 네 마리의 용이 보주를 쥐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구름무늬를 가득 채웠다. 상대석에는 큼지막한 8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탑몸돌을 받치고 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중대의 정면모습입니다. 거북머리라기에는 너무 용머리처럼 보입니다
▼ 뒷면입니다. 탑을 지키는 용은 4마리가 있습니다
▼ 탑몸돌에는 문비와 자물쇠, 사천왕상(四天王像), 광창(光窓)이 표현되어 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아랫면에 비천과 구름을 표현하였다.
지붕돌 윗면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귀꽃이 달려 있는데, 일부는 파손된 상태이다. 상륜부에는 둥글넓적한 복발 위로 보개(寶蓋)와 보주(寶珠)가 올려져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지붕돌(옥계석)를 자세히 보면 귀꽃 몇개는 떨어져 나갔고, 지붕돌 밑면에는 구름무늬와 비천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냥봐도 매우 세밀하게 모입니다
▼ 원종대승탑의 탑신에 새겨진 천왕의 모습을 비교해 봤으며, 육면체중에 4개면에 천왕이 새겨져 있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지붕돌 밑면의 비천상과 4대천왕의 탁본을 보겠습니다. 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참고로 고달사지에는 두개의 승탑이 있는데, 각각으로 보면 승탑의 구분이 애매하게 보여서 비교사진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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