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사지승탑은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높이 4.3m의 고려시대의 승탑으로 국보 제4호입니다. 고달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몇 가지 유물은 지금까지 보존되어 왔습니다.

고달사승탑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자료가 없어서 특정 짓지는 못하지만, 일설에 따르면, 868년(경문왕 8)에 입적한 신라 말의 고승 원감(圓鑑)의 묘탑(墓塔)이라 하지만 확실하지 않으며, 근거리에 있는 원종대사승탑(877년) 보다는 앞서는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승탑의 기본형인 팔각원당형 구조를 잘 따르면서도 조각의 세부 수법에서는 고려 특유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에 세워졌을 것으로 보입니다._자료는 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숲이 우거져서 승탑 앞부분이 잘 안 보입니다. 앞에 보이는 두 개의 입석은 완벽하게 다듬어졌는데, 무슨 용도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 안내문에 보면 ...거북 한 마리가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다... 라는 문구가 있는데, 원래는 ...두마리가... 라고 잘 못 기록된 원본으로 안내문을 만들다 보니, 나중에 문구를 수정한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문화재청에는 아직도 거북이 두 마리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 승탑 앞에는 배례석이 보이고, 배례석 앞에는 8각의 평석이 놓여 있는데 향로석인 듯합니다.

 

▼ 배례석의 면을 자세 보니 안상이 보이길래 흙을 털어보니 뚜렷한 모습이 보입니다. 안상은 네 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고달사지 승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는데, 특히 가운데 돌에 새겨진 조각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돌은 8각이라기보다는 거의 원을 이루고 있으며, 표면에 새겨진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거북을 사이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을 새겨 두었으며, 나머지 공간에는 구름무늬로 가득 채웠다.

 

돌에 꽉 차게 새겨진 무늬들이 과장되지 않고 세련되어 능숙하면서도 대담한 힘이 느껴진다. 가운데 돌을 중심으로 그 아래와 윗돌에는 연꽃무늬를 두어 우아함을 살리고 있다

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는데, 거북은 하나인데, 두 마리라고 잘못 기술하고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한 마리로 되어 있습니다

 

▼ 고달사승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대의 각 면에는 내부에 꽃 형태의 무늬가 있는 안상(眼象)이 2구씩 새겨져 있고 윗면에는 16엽의 연판이 돌려졌다. 중대는 이 승탑에서 가장 조각수법이 뛰어난 부재로써 거의 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용과 같은 얼굴의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가운데 거북을 중심으로 총 네 마리의 용이 보주를 쥐고 있으며, 나머지 공간은 구름무늬를 가득 채웠다. 상대석에는 큼지막한 8엽의 앙련이 조각되어 탑 몸돌을 받치고 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중대의 측면이며 용의 발톱이 보주를 쥐고 있습니다, 보주는 좌, 우에 하나씩 있습니다

 

▼ 전면입니다. 거북이 머리 부분인데, 부분적으로 깨어진 부분도 있지만, 양호한 상태입니다

 

▼ 후면입니다. 거북이 꼬리는 아주 작게 표현하였지만, 용의 꼬리는 매우 힘차게 표현하였습니다

 

▼ 탑 몸돌에는 문비와 자물쇠, 사천왕상(四天王像), 광창(光窓)이 표현되어 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아랫면에 비천과 구름을 표현하였다.

 

지붕돌 윗면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귀꽃이 달려 있는데, 일부는 파손된 상태이다. 상륜부에는 둥글넓적한 복발 위로 보개(寶蓋)와 보주(寶珠)가 올려져 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몸돌 전면의 사천왕입니다. 팔각의 각 면에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으며 그 사이마다 자물쇠 문양(문비:門扉)과 사천왕상, 영창(映窓)이 조각되어 있다.

 

▼ 지붕돌의 귀꽃은 파손된 것은 없는데, 상륜 지붕돌의 귀꽃은 거의 깨졌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지붕돌의 밑면 비천상과 몸돌의 사천왕입니다_문화재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참고로 고달사지에는 두 개의 승탑이 있습니다. 개별로 볼 때는 승탑의 구분이 헷갈릴 때가 있어서 비교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 일제강점기(1918)년의 사진자료입니다(조선총독부, 조선고적도보). 일본인들은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였는데, 문화재를 조사하면서 수많은 사진으로 자료를 남기었습니다.

 

▼ 고달사지승탑의 1934년 사진자료입니다(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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