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릉은 서울정릉과 같은 서울 성북구에 있습니다. 정릉을 보고 나서 의릉을 둘러 보았습니다. 의릉은 제20대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의 능이 위,아래로 있는 동원상하릉 입니다.
의릉은 1962년 중앙정보부가 이곳에 들어오면서 대부분 파괴되고 일부만 남았으며, 정원처럼 만들어서 왕릉의 모습을 잃어 버렸다가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뀌면서 내곡동의 헌릉.인릉 옆으로 옮겨가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만, 재실은 멸실되었습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능의 구성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이다. 의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이 앞뒤로 나란히 배치한 동원상하릉의 형식으로, 곡장을 두른 위의 봉분이 경종의 능, 곡장을 두르지 않은 아래의 봉분이 선의왕후의 능이다. 이러한 형식은 능혈의 폭이 좁아 왕성한 생기가 흐르는 정혈(正穴)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풍수지리적인 이유이다.
능침은 두 봉분 모두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경종의 능침에 배치된 망주석 세호는 왼쪽은 위를 향해 올라가있고 오른쪽은 아래를 향해 내려가 있으나, 선의왕후의 능침은 반대로 조각되어 있다. 특히 경종의 능침 무석인의 뒷면에는 짐승 가죽을 나타내기 위해 꼬리가 말린 것을 조각하였고, 선의왕후의 능침 석호는 꼬리가 등 뒤로 올라가게 하는 등 재미있게 표현하였다
- 능의 역사
1724년(경종 4)에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 양주 중랑포 천장산 언덕에 능을 먼저 조성하였다. 그 후 1730년(영조 6)에 선의왕후 어씨가 세상을 떠나자, 의릉 동강 하혈(下穴)에 능을 조성하였다. 의릉은 1960년대 초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능역 내에 있어서 일반인에게는 철저히 봉쇄된 구역이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는 등 훼손이 심하였다.
이 후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뀐 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1996년에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외래수종 제거, 전통수종 식재, 인공연못 성토, 금천교 복원 등 기초적인 의릉 능제복원 정비공사를 마쳤다.
- 경종(景宗) 이야기
경종(재세 : 1688년 음력 10월 27일(28일) ~ 1724년 음력 8월 25일, 재위 : 1720년 음력 6월 13일 ~ 1724년 음력 8월 25일)은 숙종과 옥산부대빈(희빈) 장씨의 아들로 1688년(숙종 14)에 창덕궁 취선당에서 태어났다. 경종이 태어남으로서 서인과 남인의 대립인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정권이 교체(남인 정권)되기도 하였다.
1689년(숙종 15)에 원자로 책봉된 후 1690년(숙종 16)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1701년(숙종 27)에는 무고의 옥(인현왕후 저주 사건)으로 어머니 장씨의 죽음을 목격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717년(숙종 43)에 숙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기도 하였으며, 1720년에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재위 4년 뒤인 1724년(경종 4)에 창경궁 환취정에서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 선의왕후(宣懿王后) 이야기
경종의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재세 : 1705년 음력 10월 29일 ~ 1730년 음력 6월 29일)는 본관이 함종인 함원부원군 어유구와 완릉부부인 이씨의 딸로 1705년(숙종 31)에 숭교방 사저에서 태어났다.
1718년(숙종 44)에 왕세자빈 심씨(단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같은 해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즉위하자 경순왕대비가 되었으며, 1730년(영조 6)에 경덕궁 어조당에서 26세로 세상을 떠났다.
▼ 경종은 그 유명한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 숙종과는 다르게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는지, 후궁도 없고, 자식도 없어서 배다른 동생 연잉군(영조)에게 왕위를 넘깁니다.
▼ 서울에 있는 왕릉은 대부분 개발의 광풍에 대부분의 능역을 빼앗기고, 왕릉주위만 간신히 남아있는 듯한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만, 옛날에는 문화재라는 인식이 거의 없어서, 지도자나 국민들은 옛것에 대한 생각이 무지했습니다.
▼ 세계문화유산 기념비(?)는 왕릉입구마다 똑 같습니다.
▼ 서울 의릉은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서울 선릉과 정릉에 비하면 넓직하고 여유있는 왕릉입니다
▼ 금천교를 건너서 신들의 정원에 들어갑니다.
▼ 의릉의 향로는 정자각의 정 중앙으로 뻗어 있지 않고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 전형적인 맞배지붕의 정자각입니다.
▼ 운계(신계)는 특별한 문양은 안보입니다
▼ 특이하게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습니다.
▼ 능침은 들어가 볼수가 없어서 좀 당겨보았습니다.
▼ 능침의 이해를위해서 자료사진들을 올려보았습니다
▼ 먼저 경종능침의 자료사진입니다.
▼ 다음은 선의왕후 능침 자료사진입니다
▼ 제수진설도를 자세히 보면 고기류는 하나도 없습니다. 종묘에는 생고기를 올립니다.
▼ 비각입니다.
▼ 표석에 보면 종(宗)자에 총알자국이 여러발 보입니다
묘표 - 음기(번역) : 조선국 경종대왕 의릉 선의왕후부
경종 덕문 익무 순인 선효 대왕은 숭정 기원후 61년인 무진년(숙종14, 1688) 10월 28일에 탄생하였다. 경자년(경종즉위, 1720)에 즉위하고 갑진년(경종4, 1724) 8월 25일에 승하하여 12월 16일에 양주 남쪽 중량포 천장산 신좌(남서서쪽을 등진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재위가 4년이고 향년은 37세이다.
계비 경순 효인 혜목 선의왕후 어씨는 을유년(숙종31, 1705) 10월 29일에 탄생하였다. 무술년(숙종44, 1718)에 세자빈으로 책봉되었고 경자년(경종즉위, 1720)에 왕비로 봉작이 올랐다. 경술년(영조6, 1730) 6월 29일에 승하하여 10월 19일에 경종대왕의 능 아래에 부장하였으니, 향년은 26세이다.
▼ 몇년전만 해도 능침에 올라가게 하였는데, 유네스코 유산에 등록이후에는 못들어가게 하는것 같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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