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릉(康陵)은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 13대 명종과, 명종의 원비인 인순왕후 심씨와 쌍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태릉이 명종의 어머니의 릉이며, 원래 태릉(泰陵)과는 한 능역 안에 있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었는데, 중간에 태릉선수촌이 들어 오는 바람에 능역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태릉을 보고 나와서 태릉 선수촌 앞을 지나면 곧 강릉앞에 도착합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 백과에서 인용 하였습니다 >>>
▼ 조선의 왕릉은 거의 구성이 동일 합니다. 강릉은 태릉 보다는 격이 조금은 낮은 느낌이 듭니다. 홍살문 기둥을 지지하는 지지대 밑에는 구멍이 뚫려 있는데, 기둥뿌리에 물이 고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배수구인것 같습니다.
▼ 태릉과 강릉의 사이에는 태릉선수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태릉과 강릉사이에 숲길이 있기는 한데, 10월,11월 두달간 숲길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그전에는 문에서 나와서 태릉선수촌 앞길로 들려야 합니다. 입장권은 꼭 지참하셔야 합니다.
▼ 강릉의 봉분 주변의 석물배치표와 기타 자료사진들을 올려 보았습니다. 앞에서 보았을때 왼쪽이 명종이고, 오른쪽이 인순왕후입니다.
▼ 능의 구성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강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명종, 오른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전체적인 능침은 문정왕후의 태릉과 같은 형태로 조성하여,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모두 둘렀고,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석호, 석마, 문무석인 등을 배치하였다. 능침아래에는 홍살문, 향·어로, 정자각, 비각이 있고, 정자각 왼편에는 둥근 어정(御井)이 있다. 어정이란 왕이 마실 물을 위해 판 우물을 말한다. 광릉, 숭릉 등지에서도 볼 수 있다.
▼ 능의 역사
명종은 모후 문정왕후의 3년 상을 마친 후 며칠이 지난 1567년(명종 22)에 세상을 떠나, 태릉 동쪽 언덕에 먼저 능을 조성하였다. 그 후 1575년(선조 8)에 인순왕후 심씨가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강릉 좌측에 쌍릉으로 능을 조성하였다.
▼ 명종(明宗) 이야기
명종(재세 : 1534년 음력 5월 22일 ~ 1567년 음력 6월 28일, 재위 : 1545년 음력 7월 6일 ~ 1567년 음력 6월 28일)은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의 아들로 1534년(중종 29)에 태어났다. 1539년(중종 34)에 경원대군에 책봉되었고, 1545년(인종 9개월)에 이복형 인종의 유명(遺命)으로 왕위에 올랐다.
12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탓에 모후인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을 받았고, 수렴청정 기간 중에 을사사화, 양재역 벽서사건 등을 계기로 윤원형을 비롯한 외척과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왕권은 실추되고 외척 일족의 수탈로 민생이 피폐하여 사회가 불안하였으며, 거듭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흉흉해졌다.
이런 상황에 임꺽정의 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553년(명종 8)에 친정 선포 후, 외척을 견제하고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선정을 펴보려 하였으나, 소윤과 문정왕후의 권세에 눌려 뜻을 펴보지 못하였다. 1563년(명종 18)에 외아들 순회세자의 급서와 1565년(명종 22)에 문정왕후의 장례를 치른 후 1567년(명종 22)에 경복궁 양심당에서 34세로 세상을 떠났다.
▼ 인순왕후(仁順王后) 이야기
인순왕후 심씨(재세 : 1532년 ~ 1575년 음력 1월 2일)는 본관이 청송인 청릉부원군 심강과 완산부부인 이씨의 딸로 1532년(중종 27)에 태어났다.
1542년(중종 27)에 경원대군과 결혼하여 부부인(府夫人)에 되었으며, 1545년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551년(명종 6)에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1563년(명종 18)에 어린 나이로 급서하는 비운을 겪었다.
1567년(명종 22)에 명종이 세상을 떠나자, 후사가 없어 중종의 아들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선조)을 양자로 입적시켜 대통을 잇게 하였다.
선조가 16세에 즉위하자 계승상 모후가 되는 인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고 8개월만에 물러났다. 그 후 1575년(선조 8)에 창경궁 통명전에서 44세로 세상을 떠났다.
▼ 명종의 가계도 입니다. 22년 11개월을 왕좌에 있었지만, 대부분을 어머니인 문정왕후의 섭정에 별다른 힘을 못쓰고, 33세에 세상을 떠났고, 왕자나, 공주도 없었습니다. 무서운 어머니 문정왕후의 그늘에서 스트레스가 심했었나 봅니다. 죽어서도 어머니 문정왕후 곁을 떠나지 못하고, 태릉옆에 강릉에 묻혔습니다.
▼ 태릉에서 강릉으로 이동하는 중간에 태릉선수촌앞을 지나게 됩니다. 태릉과 강릉 사이로 걸어 가는 시간은 10분 정도 입니다.
▼ 강릉 출입구는 언뜻 지나치기 쉬운 문입니다. 태릉,강릉의 출입구는 태릉에 있었으므로 강릉의 출입문은 임시로 만든 문인것 같습니다.
▼ 금천교를 건너서 신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 강릉의 묘역은 크지, 작지도 않는 모습입니다.
▼ 홍살문에서 봤을때 왼쪽은 명종릉, 오른쪽은 인순왕후릉입니다.
▼ 향로와 어로가 분리되어 있다는 안내표지판입니다. 어로를 따라서 정자각으로 들어 갑니다.
▼ 능역의 소나무들은 보면 대부분 향로를 향해서 기울어져 있는데, 일부러 그렇게 심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무들도 신들을 향해서 허리를 굽히는듯이 보입니다.
▼ 정자각 왼쪽에는 수라간이 보이는데, 아마도 최근에 복원된듯이 깔끔하게 보입니다.
▼ 월대 위에 튼튼하게 자리잡은 정자각입니다. 좌,우에서 보는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 수라간의 정면 모습입니다
▼ 능의 아래로 넓은 둔덕을 사초지라고 하는데, 사초지 위에 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만, 올라가 볼 수는 없습니다
▼ 정자각 옆에는 예감이라는 돌로 가로막은 곳이 있는데, 축문을 흙으로 묻거나 태우는 곳 이었습니다.
▼ 정자각과 사초지 사이에는 작은 돌다리가 있는데 혼백이 다리는 길로써 신로(神路)라고 합니다.
▼ 능침의 석물들을 당겨 보았습니다
▼ 자료사진으로 강릉의 석물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 비각의 모습입니다.
▼ 표석에는 명종과 인순왕후의 생애가 새겨져 있습니다.
▼ 강릉을 둘러 보고 홍살문을 빠져 나갑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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