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한양도성 숭례문구간은 남산자락의 백범광장에서 돈의문까지의 구간이며 거리는 약 1.8Km이며 걸음거리로 약 1시간정도 걸립니다. 여기에 기재된 내용은 대부분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에서 인용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서울한양도성 숭례문구간의 지도이며, 지도의 붉은색 사각표시구역입니다.
▼ 서울한양도성 숭례문구간은 남산자락 백범공원의 끝자락에서 부터 새로 복원된 성곽을 따라서 숭례문방향으로 내려갑니다.
▼ 최근에 복원한 성곽이라 깔끔하게 보입니다.
▼ 도동삼거리에서 숭례문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성곽의 옆길을 바라봅니다.
▼ 숭례문 정면의 모습입니다. 화재후 새로 복원한 모습입니다.
▼ 숭례문에 도착헤보니 수문병이 근무가 있는 시간이 됬는지 4명의 수문병이 위치에 서 있는 모습니다.
▼ 수문병은 4명인데, 별도로 교대식은 없더군요...
▼ 숭례문을 보고 길을 건너와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귀중한 문화재인만큼 보전관리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 돈의문방향으로 가는길에 서울상공회의소 옆길에는 서울한양도성의 성곽일부가 담장처럼 남아 있습니다. 1907년 한양도성의 본격적인 철거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장은 물론 체성조차 흔적을 찾을 수 없게 훼손되었는데, 최근 옛 성돌의 흔적 위에 새로 몇 단을 쌓아 올렸습니다. - 서울한양도성 홈페이지 인용
▼ 서울상공회의소 옆의 복원된 성곽은 낮게 되어 있으며, 완전한 복원이 아닙니다.
▼ 도성길에 만나게되는 배제학당 역사박물관입니다, 1916년 준공된 배재학당동관은 현재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배재학당은 1885년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설립한 학교로서 1886년 고종이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이랍니다. 초창기 배재학당은 미국 문물 교류의 통로로서 수많은 근대 지식인을 배출하였습니다. 이승만·주시경·김소월·나도향·오긍선·신봉조 등이 이 학교 출신이랍니다. .
▼ 덕수궁앞의 원형 로타리를 보고 왼쪽으로 길을 잡습니다
▼ 정동교회인데,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회이고,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물로 1895년에 착공, 1897년에 완공하였습니다. 인근의 배재학당 · 이화학당과 더불어 개화기 미국 문물 도입의 통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서구(西歐) 각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서울을 개방한 이후에는 남대문 인근의 정동에 각국 공사관(公使館)과 외교관 사택,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들이 많이 들어섰고, 지금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곳입니다. 물론 한양도성의 성곽도 무차별 파괴되었습니다.
▼ 서울한양도성이 있었던 정동길을 따라서 돈의문방향으로 가는데, 서구식 건물들이 많이 보입니다.
▼ 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이 있던 자리입니다. 돈의문은 태조 때 처음 세워졌으나 태종 13년(1413)에 만들어진 서전문(西箭門)이 서대문의 기능을 대신하였습니다. 그 위치는 현재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합니. 세종 4년(1422)에 도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면서 서전문을 닫고 새로운 돈의문을 세웠는데 현재 돈의문 터가 그 위치입니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新門)으로도 불렸으며, 현재의 신문로라는 지명도 이에서 유래합니다. 1915년 일제는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를 개통하면서 이 문을 해체하여 건축자재로 매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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