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의 세월을 이겨낸 견훤산성은 문경견훤산성(聞慶甄萱山城), 또는 상주견훤산성(尙州甄萱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조선시대때는 문경현에 있었으나, 현재는 상주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러 자료를 보면 견훤산성이 축성된 시기는 불분명하며, 다만 신라에서 상주지역으로 침입하는 고구려의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서 길목에 성을 쌓았으며, 견훤이 신라의 장수로서 성을 보수하면서 후세에 견훤산성으로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다만『신증동국여지승람』 상주목조에는 “서쪽 50리에 있는 ‘가은고현성’(加恩古縣城) 인데 견훤산성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문경현지(聞慶縣誌)(영조본)』고적조(古蹟條)에는 “견훤산성은 가은현 서남 5리에 있다. 산 위에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565척이다.”라 하였고, 『환여승람(還輿勝覽)』에는 “백제성, 일명 견훤산성이라 한다. 청화산 동쪽 10리에 있고, 견훤이 그 가운데 웅거했었으며, 석천(石泉)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가은고현성, 고현 서남쪽으로 5리, 둘레는 5백 65척이며, 우물이 1개이다. 일명 견훤성이라 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기록에 의하면,
성곽은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는 약 1㎞이다. 성벽은 할석을 이용하여 쌓았으나 동쪽 일부는 산을 깍아 성벽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성벽의 높이는 2∼3m 정도이다. 성 내부 시설로는 우물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있다.

견훤산성의 전략적 가치는 보은, 옥천 방면에서 화북을 거쳐 쌍룡계곡을 통과하는 속리천(俗離川)을 따라 침입하는 서쪽으로부터의 적을 방어함은 물론 계립령을 넘어 상주 등 내륙으로 들어오는 적을 방어하는 데도 중요한 지점이 된다. 그리고 청천 송면에서 고모령을 넘어 궁기, 연천쪽에서 오는 적도 이곳에서 차단이 된다. 이렇게 볼 때 이 성에서 10리 거리에 있는 가은성, 30리 거리에 있는 고모성과 고부성, 상주 화북에 있는 견훤산성 등이 하나 같이 북·서쪽을 방비토록 축성되어 있다. 서·북의 세력이 비록 소백산맥을 넘어 왔다고 하여도 요충지가 되는 길목에 이들 성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 내지로의 진입이 항상 이 지역에서 저지되었다고 추정된다._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견훤산성은 상주시 화북면의 속리산 화북탐방지원센터로 들어 가는 도로옆에 들머리가 있습니다.

 

▼ 견훤산성으로 들어가는 길은 도로 옆에 등산로처럼 생긴 길을 따라서 700m 거리에 있습니다. 주차는 50m 뒤의 공터에 주차 하면 됩니다.

 

▼ 성곽이 보이는 곳에 올라서면 우람한 바위가 서 있으며, 바위는 2개의 조각으로 벌어져 있는 모양입니다.

 

▼ 바위면을 자세히 보면 음각으로 새겨진 묘비문이 보이는데 고려 충혜왕때 삼중대광(三重大匡-정일품)의 관직을 지낸 김목경 묘비문입니다

北便 有 三重大匡 金寧君(북편 유 삼중대광 금령군) ,

金海 金公 諱 牧卿 之墓  (김해 김공 휘 목경 지묘)

풀어보면 "북쪽에 삼중대광 금령군 김해 김공 목경의 묘가 있다"입니다, 여기서 "諱 牧卿"은 생전의 이름은 목경이라는 높임말입니다

언뜻 보면 아주 오래전(삼국시대)에 새겨진 묘비문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1966년 후손들이 새긴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삼중대광 금령군 김목경에 대해서 좀 알아 봤습니다.

三重大匡 金寧君 諱 牧卿(삼중대광 금령군 목경)은 충렬왕 때의 사람으로, 일찍 과거에 급제(1331년)하여 벼슬이 삼중대광을 지냈고, 충혜왕(忠惠王)복위직전(충숙왕 승하후 1342년 壬午年)조적의 반란이 있을 때는 왕명을 받들어 토적(討賊)하여 위란을 평정한 뒤 金寧君에 봉해졌습니다.


 ▼ 견훤산성의 안내문입니다. 여기서 신라의 비장(裨將)의 계급은 어느 정도인가 알아보았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지역 방위를 책임지고 있는 대대급이나, 연대급(중령~대령) 수장 정도라고 합니다.

 

▼ 동쪽의 문은 완전하게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현문(懸門;올렸다 내렸다는 하는 문)으로 보이는데, 일단 동문이라고 하겠습니다.

 

▼ 금령군의 묘비문이 새겨진 바위 위에 성돌이 쌓여진 모습이며, 동쪽의 망루입니다. 견훤성은 4개의 망루가 있는데, 모두 자연적인 암석위에 있습니다.

 

▼ 동문에서 북쪽으로 이어진 성곽을 따라서 걸어 보기로 합니다. 북쪽으로는 망루가 보이고 저멀리로는 백두대간 청화산이 보입니다.

 

▼ 복원된 동문지 입니다. 언뜻 봐도 조선시대의 성곽과는 많이 달라 보입니다

 

▼ 조선시대의 성벽을 보면 성돌이 거의 네모난 모양이지만, 삼구시대의 성돌은 벽돌처럼 납작하게 다듬어서 쌓았습니다.

 

▼ 동문지에서 북쪽방향의 성곽을 보면 성곽의 두께가 대단히 두껍고 축성형태는 협축식(夾築式)으로 되어 있습니다. 협축식이란 성벽을 쌓을 때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을 쌓는 방식으로서 평지나 성문 좌우의 중요한 지점에 많이 사용됩니다.

 

▼ 안쪽의 성곽을 보면 성곽 중앙을 기준으로 좌,우가 서로 다르게 보이는데, 우측이 기존 성벽이고 좌측이 복원하면서 쌓은 성벽으로 보입니다만, 구분하기가 쉽지 않게 아주 잘 쌓았습니다

 

▼ 우물터로 보이는 곳 입니다. 오래전 성안에 군사들이 주둔 할 때에는 우물이 깊게 파여져서 항상 물이 고여 있었겠지만, 지금은 우물터라는 상징 정도로만 복원하여 놓은듯 합니다. 성벽의 구멍은 성안에 물이 밖으로 빠져 나가게 만든 수구(水口) 입니다

 

▼ 우물터에서 동문으로 바라보는 성곽의 모습입니다. 산성의 복원은 2010년 초에 이 정도에서 끝낸것으로 보입니다

 

▼ 산성이 복원된 곳은 동문지 성곽과 남쪽의 성곽이 전부 입니다. 남쪽의 성곽이 복원 바위(금령군 묘비문) 위에 망대가 있습니다

 

▼ 동문지 성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은 거의 무너져 있었습니다. 거의 1000년을 지나면서 흔적만이라도 남아 있는것이 다행입니다.

 

▼ 무너진 성벽을 보면 성돌은 두께가 10㎝정도의 할석으로 쌓았는데, 세월의 무게를 이지지 못하여 부러지면서 성돌이 무너지는 현상도 보입니다. 하지만 성곽이 무너지는것은 대부분 지반이 침하 하면서 균형을 잃은 성곽이 무너지는것이 많습니다.

 

▼ 성곽위에서 바라보는 동문지 입니다. 동문지도 완전한 복원이 반쪽 복원상태 입니다

 

▼ 묘비문에 새겨진 금령군 김목경의 묘입니다. 묘비석은 온데간데 없고, 비석의 갓만 바위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 망대로 이저진 성곽은 거의 무너져 있습니다.

 

▼ 망대에서 바라보는 동문지와 금령군 김목경의 묘입니다. 금령군의 묘비문이 새겨져 있던 바위위에는 망대입니다

 

▼ 북쪽의 망대가 있는 성곽은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성곽의 상단은 훼손 상태가 심합니다.

 

▼ 북쪽으로 보이는 우뚝 솟은 봉우리는 백두대간의 청화산입니다. 산의 아랫쪽으로 보이는 고개는 늘재 입니다. 늘재는 문경에서 상주를 이어주는 고개였으며, 견훤산성은 늘재를 감시하기 좋은 최적의 산성입니다

 

▼ 견훤산성을 보면서 이상한 점은 성벽이 안쪽이나 바깓쪽 모두 노출되어 있다는 것 입니다. 산 비탈을 이용해서 성곽 안쪽에 토사를 채우는 내탁법이 아닌 성곽의 안쪽이나 밖이 모두 노출되는 협축식으로 쌓았는데, 지반이 침하되면서 성곽이 많이 기울었습니다.

 

▼ 성곽의 단면입니다. 엇쌓기가 잘 안된곳은 틈새가 많이 벌어졋습니다.

 

▼ 상 안쪽이 더 높아 보이는 성곽의 구조인데,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것이 참 !!! 이상한 성곽입니다.

 

▼ 상 안쪽에서는 성밖을 전혀 볼 수 가 없는 성곽의 구조 입니다.서서히 기울어져 가고 있습니다

 

▼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입니다. 대부분 지반이 침하 되면서 기울어져 있습니다

 

▼ 북쪽에서 저쪽으로 이어지는 성곽입니다, 흔히 보던 조선의 성곽과는 많이 다릅니다

 

▼ 늘씬한 미인송(?)입니다...

 

▼ 서문지라고 하는데, 문밖을 보면 너무 경사가 심해서 사람이 드나들었던 길이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성벽을 일부러 잘라 놓은 흔적도 안보이는데, 아뭏든 현문이 있었던 문입니다.

 

▼ 어느쪽이 성의 안쪽이고, 어느쪽이 성의 밖인지 분간이 안됩니다.

 

▼ 멋진 소나무가 있는곳이 서쪽 망대 입니다

 

▼ 망대에서 보는 속리산입니다. 망대에서 보면 충북의 보은에서 속리산을 넘어 오는 길을 감시 할 수 있는 곳에 견훤산성의 망대가 있습니다.

 

▼ 망대옆의 성벽을 내려다 보면 암봉과 성곽을 이어주는 성돌이 아주 조밀하게 쌓여져 있습니다.

 

▼ 남쪽의 망대모습입니다만, 많이 훼손된 모습입니다.

 

▼ 남쪽 망대에서 서쪽 망대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바라 봅니다

 

▼ 성돌인지, 소나무 인지 누가 기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이제 남쪽의 성곽이 보이는데, 여기서 보면 복원된 구간은 전체 1km의 성곽중에서 10%정도인 100여 미터 정도만 되는 것 같습니다.

 

▼ 성곽 아래서 바라보는 모습을 보면 뒷쪽의 커다란 바위 위에 있던 성곽은 기존의 성곽이고, 앞쪽의 성곽은 복원한 성곽으로 보입니다.

 

▼ 성돌을 쌓아서 복원한 모습이 허투로 쌓지 않고 대단히 집중해서 쌓은 모습이 느껴집니다.

 

▼ 다시 출발한 지점으로 내려 갑니다

 

▼ 유일하게 내탁식 축성된 남쪽 성곽입니다.

 

▼ 망대에서 바라보는 동문입니다

 

▼ 동문근처에서 올려다 보는 남측 성벽의 모습입니다. 전체적으로 복원된 구간이 너무 짧아서 좀 아쉬운 답사였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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