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불교조각실 입구에 보이는 금동여래입상을 보면, 금방 아! 이거 보통의 유물이 아니라는 느낌이 오는데, 실물은 아니고, 실물보다 150% 크게 모작한 고구려시대의 것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오래된 불상입니다

 

유물에 명문(銘文)은 매우 중요한데, 글자가 있고 없고는 역사책을 새로 써야 할 정도로 쑈킹할 중요하고, 따라서는 역사가 뒤바낄 수도 있는 엄청난 Power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금동불상의 중요성은 광배 뒷면에 새겨진 마흔일곱자(47字)의 글자로서, 불상을 만든 연대, 만든 곳, 만든 사람, 그리고 만든 이유를 새겨 놓은 것입니다.

 

이 금동불상에 새겨진 글자의 뜻은  “연가 칠년(539년)에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 동사라는 절에서 주지승과 제자들을 비롯한 신도 사십명이 천 개의 불상을 만들어 세상에 퍼트렸는데, 이 불상은 그 스물아홉 번째이고, 불상의 이름은 인현의불(因現義佛)이다.” 라고 적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1000개의 불상을 만들기로 하면서 29개 까지는 만들었다는 것인데, 나머지 969개 불상은 실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미 만들어진 28개의 불상은 어떻게 되었는지, 어디로 사라졌다는 것인가?, 분명히 광배 뒷면에 명문을 새겼을 것인데, 나머지 금동불상의 행방에 대해서 또 다른 관심이 생기는군요!!!

 

그런데 만든 곳은 고구려 평양이고, 발굴된 곳은 1963년 경상남도 의령군의 돌 무더기속이었는데, 이 땅에서 국가는 바뀌었어도, 불교는 공통적인 마음의 지주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자료사진 및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나무위키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불교조각실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연가칠년'이 새겨진 부처에 대한 내용이며, 전시된 부처 실물의 크기는 1.5배이며, 만져볼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연가 칠년이 새겨진 부처(국립중앙박물관)
.국보 -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1964), 金銅延嘉七年銘如來立像, 延嘉七年銘金銅佛立像
.국적/시대 한국 - 고구려
.출토지 경상남도 - 의령군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 산40 발견(1963년), 고구려 539년, 安原王(안원왕) 9년

.재질 금속 - 금동
.분류 종교신앙 - 불교 - 예배 - 불상
.크기 전체높이 16.2cm, 불신높이 9.1cm, 광배너비 8.1cm, 대좌높이 12.1cm, 대좌지름 5.5cm
.소장품번호 신수 853

 

▼ [모작품] 불신과 광배를 일체형으로 주조한 금동여래입상은 광배가 깨지기는 했지만, 기하학적인 선으로 그려진 불꽃모양이 눈길을 끕니다. 

 

금동불입상의 얼굴을 보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 두툼한 법의, 복련(伏蓮)의 연화좌, 이글거리는 힘이 느껴지는 불꽃무늬 광배가 특징입니다.

▼ [모작품] 

 

▼ [모작품] 손으로 만져봐도 된다는 안내문이 있어서, 처음으로 금동불상을 만져보니, 특별한 경험을 하는 기분이 들었으며, 무게감이 느껴졌습니다.


※ 여기서 부터는 실물사진이며,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延嘉七年’의 명문이 새겨진 금동여래입상
延嘉七年歲在己未高麗國樂良,
東寺主敬第子僧演師徒人共,
造賢劫千佛流布第卄九因現義,
佛比丘法穎所供養.

해석을 인용해 보면,

연가7년인 기미년(539) 고려국(高麗國: 고구려)의 수도 낙양(樂良: 평양)에 있던,
동사(東寺)의 주지스님 경(敬)과 그 제자 승연(僧演)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불(賢劫千佛)을 조성하여 유포하기로 하였는데 (이 불상은) 제29불인 인현의불(因現義佛)로
비구 법영(法穎)이 공양합니다.

 

※ 만약 경남의령군에서 발견 이 금동불입상의 광배 뒷면에 명문이 없었다면, 신라시대에 중국풍의 불상이 전해졌거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불상이 신라로 전해졌다고,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명문으로 인해서 고구려의 불상이 확증되었으므로, 명문의 역사적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 광배에 명문이 남아있는 삼국시대 소형 금동불상이 몇개 있는데,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았습니다

 

1) 간송미술관 소장의 국보 72호 계미명癸未銘 금동삼존불,

2) 호암미술관 소장의 국보 85호 신묘명辛卯銘 금동삼존불,

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보물 196호 정지원명鄭智遠銘 금동삼존불입상,

4) 건흥오년 명建興五年銘 금동삼존불 광배 등이 있습니다.


1)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은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가, 미술관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간송선생의 후손들이 경매에 내어 놓아서 한때 큰 이슈가 되었던, 국보입니다.

 

국보 (구)제72호,‘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은, 17.7cm 높이이며 563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명문의 내용은 보화라는 이가 돌아가신 아버지 조귀인을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癸未十一月丁日(계미년십일월정일)
寶華爲亡父趙貴人造(보화위망부조귀인조)

 

‘계미년 11월 정일(1일), 보화라는 이가 돌아가신 아버지 조귀인을 위해 만들었다는 내용이며, 563년은 고구려 25대 평원왕 5년이 됩니다.


2) 호암미술관 소장의 국보 (구)85호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金銅辛卯銘三尊佛立像)

 

황해도 곡산군(谷山郡) 화촌면(花村面) 봉산리(蓬山里)에서 출토되었으며, 현재는 리움미술관에에 전시되어 있는 불상으로 높이 15.5㎝입니다.

 

광배의 뒷면에 개겨진 명문에는 다섯 명의 도를 닦는 벗들이 그들의 스승과 부모를 위하여 불상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글에서 언급되는 신묘는 571년으로 추정되며, 이는 고구려의 25대 왕 평원왕 13년입니다.

 

※ 자료에서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景四年在辛卯比丘(경사년재신묘비구)

道須共諸善知識那婁(도수공제선지식나루)

賤奴阿王阿据五人(천노아왕아거오인)

共造無量壽佛一軀(공조무량수불일구)

願亡師父母生生心中常(원망사부모생생심중상)

値諸佛善知識等値(치제불선지식등치)

遇彌勒所願如是(우미륵소원여시)

願共生一處見佛聞法(원공생일처견불문법)

 

경(景) 4년 신묘년(辛卯年)에 비구(比丘) 도수(道須)와 선지식(善知識)인 나루(那婁)·천노(賤奴)·아왕(阿王)·아거(阿踞) 5인이 함께 무량수불 1구(軀)를 만들었다.

 

바라건대 돌아가신 스승 및 부모가 다시 태어날 때마다 마음속에서 늘 여러 부처님(諸佛)을 만나고, 선지식인들은 미륵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소원이 이러하니, 함께 한 곳에 태어나서 부처님(佛)을 뵙고 법(法)을 듣게 하소서


3) 금동정지원명석가여래삼존입상(金銅鄭智遠銘釋迦如來三尊立像)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보물 196호

 

- 1919년에 부여의 부소산성에 있는 송월대에서 발견되었으며, 광배(光背)의 뒷면에는 정지원이라는 사람이 죽은 아내를 위하여 금으로 불상을 만들고 저승길을 잘 가게 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새겼습니다.

鄭智遠爲亡妻趙思敬造金像早離三塗(정지원위망처조사경조금상조리삼도)


4) 건흥5년명 금동 석가삼존불 광배 (建興五年銘 金銅 釋迦三尊佛 光背)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서 발견되었으며, 높이 12.4㎝이고, 건흥5년은 416년이고, 병진년으로서 고구려 장수태왕 5년 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광배 뒷면에 새겨진 명문을 보면,

建興五年歲在丙辰 佛弟子淸信女(건흥5년세재병진불제자청신녀)

上部兒庵造釋迦文像(상부아암조석가문상)

願生生世世値佛聞(원생생세세치불이)

法一切衆生同此願(법일체중생동차원)

 

“건흥(建興) 5년 병진년에 불제자 청신녀(淸信女) 상부아암(上部兒庵)이 석가모니상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불법을 듣기를 원하며 일체중생이 모두 이와 같이 바란다.”라는 내용의 명문이 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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