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불상과는 사뭇 다르게 무척  화려한 옷차람과 장신구에 보관을 쓰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금동관음보살에 눈길이 끌려 한참 바라보았지만, 대략적인 설명문만 읽어보고 와서 자료를 찾아서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았습니다

 

살명문에서 보면, 무릎를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올리고 왼손으로 바닥을 짚은 자세는 수월관음(水月觀音) 모습에서 비롯되었으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취하는 자세라는 의미로 윤왕좌(輪王坐)라고 합니다.

 

윤왕좌의 관음보살상은 중국의 송·원대에 크게 유행했으며, 금동관음보살좌상(덕수 801)은 명나라 영락(永樂) 시기 불상의 영향을 받아서 화불이 있는 화려한 보관에, 화형(花形)의 커다란 귀걸이, 영락(瓔珞)으로 뒤덮인 신체 등 기본적으로 몽골이나 티베트 계열 불교인 라마교 불상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윤왕좌의 관음보살상은 고려후기와 조선초기의 불화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조각으로 남아 있는 수는 10여점 전, 후로서 매우 드물게 남아 있습니다.

 

※ 높이 38.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재 유물은 보물이나, 국보지정이 안되어 있음)

※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의미는 “다르마를 실천하는 왕, 다르마의 바퀴를 굴리는 왕, 혹은 통치영역이 전 세계에 이르는 정의로운 왕”등으로 해석되며, 불교에서는 “법륜을 굴리는 붓다의 세속적인 짝”으로 정의됩니다(한국민족문화대백사전)

※ 윤왕좌(輪王坐)는 무릎를 세우고 그 위에 오른팔을 올리고 왼손으로 바닥을 짚은 자세를 말합니다

※ 인용된 자료사진, 문서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백과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언뜻 보면, 중국식 불상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머리에 쓴 보관(寶冠)이 무척 화려하며, 한쪽만 걸친 법의(法衣)와 얇은 천의(天衣)로 장식을 한 몸매는 무척 가냘프고, 장식 또한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무릎을 세우고 손을 편하게 얹어 놓고 다른 한손은 바닥을 짚고 있는 윤왕좌(輪王坐)라는 자세를 하고 있어서, 무척 편안한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만, 관음보살좌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무희(舞姬)를 보는 듯합니다. 

 

 

▼ 윤왕좌(輪王坐) 자세를 한 관음보살은 주로 수월관음도에서 보게 되는데, 조각이나, 주물성형의 관음보살상은 전해지는 수량이 10여점 전, 후로 알려져 있습니다.

 

※ 좌불(坐佛)에서 관음보살이 무릎을 꺽고, 왼손은 바닥을 짚고 있는 모양은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윤왕좌(輪王坐)와 유희좌(遊戱坐)가 있습니다


윤왕좌(輪王坐)와 유희좌(遊戱坐)의 차이는 불상을 앞에서 보았을 때, 꺾어서 세운 왼쪽다리는 똑같은데, 오른쪽 다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부릅니다

 

오른쪽 다리를 가부좌 형태로 안쪽으로 접어 앉으면, 윤왕좌(輪王坐),
의자에 앉아서 결가부좌에서 오른쪽 다리를 내려뜨리면 유희좌(遊戱坐)로 구분하는데, 반가부좌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리는 형태와 같습니다.

▼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관음보살상이라는 설명입니다

 

▼ 불꽃모양의 보관에 화불(化拂)이 보입니다.

 

▼ 보관(寶冠)를 따로 제작하여 머리에 얹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를 보면, 한 번에 주조한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  윤왕좌(輪王坐)와 유희좌(遊戱坐)자세의 관음보살좌상의 자료사진들을 모아 보았습니다

 

- 서울 보타사의 금동관음보살좌상과 국립중앙박물관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자세는 대좌에서 한 발을 내려트린 유희좌(遊戱坐) 자세입니다.

 

▼ 서울 성동구 미타사(금보암)에서 발견된 금동관음보살좌상(고려시대 후기에서 조선시대 초기)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동관음보살좌상과 형태가 거의 똑같아서 쌍둥이 관음보살좌상처럼 보입니다.

 

- 국립중앙박물관과 미타사(금보암)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비교해 보면, 너무나 비숫합니다

 

▼ 전남강진 무위사 목조아미타불삼존불상에서 좌, 우의 불상들을 보면, 유희좌(遊戱坐)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 왼쪽은 지장보살좌상, 우측은 관음보살좌상이며, 다리의 방향만 다르게 유희좌의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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