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문화유산 경천사 십층석탑...

국립중앙박물관 중앙 역사의 길에 세워져 있는 경천사 십층석탑 국보(구) 제86호는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자락의 경천사에 세워졌던 탑이었으나 1907년 3월 일본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田中光顯)에 의해 불법으로 해체되어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가 되돌아왔던 슬픈 사연을 지닌 석탑입니다.

 

이 탑은 구조적으로 보면, 일반적인 고려풍의 석탑이 아닌 최초의 목조풍의 대리석석탑이며, 3층 기단과 10층 탑이라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석탑으로서 기단부는 아(亞)자형에 안정감과 정교한 조각기술이 어우러진 공예적인 석탑입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기단부와 탑신부 면에 각종 불상들을 새겼는데, 하단 기단부는 불교가 전래된 과정을 서유기(西遊記)의 내용이 담고 있는 현장법사의 취경도를 통해 표현했고, 상단 기단부는 불교의 발전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자료사진과 내용은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나무위키등에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행한 자료에서 경천사십층석탑의 세부적인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경천사 십층석탑
탑의 평면은 기단부와 같이 1층부터 3층까지는 4 면이 튀어나온 아(亞)자형 이며 그 위의 4층부터 10 층까지는 네모난 형태이다. 1층부터 4층까지는 ‘영 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표현한 영산회도(靈 山會圖)를 비롯하여 원각 경의 진리를 설법하는 원 각회도(圓覺會圖)와 같은 불교에서 중요시 하는 여 러 장면을 묘사한 16회상 을조각하였으며,지붕에는 각각이 어떤 장면인지  알 수 있는 현판(懸板)을 달았다. 

대승불교의 내용을 축약해 제1탑신부에서는 20각의 탑면에 

1층에는 우리나라 불교 신앙의 대표적 인 불회(佛會)인 삼세 불회·영산회·용화회·미타회를,
2층에는 화엄회·원각회·법화회·다보회를,
3층에는 소재회·전단서상회·능엄회· 약사회 등과 같은 신비적 인 밀교 신앙의 불회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5층부터 10층까지는 5구 혹은 3구의 불상을 빈틈없이 조각하였다. 

상륜부는 원래 탑의 상륜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박공형태의 지붕만을 복원하였다. 

제2탑신부는 제1탑신부의 20각6이 4각으로 바뀌면서, 맨 아래층에 는 석가회 · 열반회 · 지장회 · 관음회 등이 네 면에 표현돼 있다. 

경천사 십층석탑은 건축사적으로는 고려시대의 다포계 건물 가운데 유일한 것으로 당시 목조건축의 양식적 특징을 알 수 있는 귀중한자료이며,미술사적으로는 14세기 불교조각 의 시대적인 양식 연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불화의 도상 연구 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탑의 부조상을 일컬어 “인물은 놀랍도록 살아있는 듯하며 형용이 또렷하며 정교함이 천하에 둘도 없다’고 극찬하고 있기도 하다. 

 

▼ 국립중앙박물관의 복도 끝에 자리 잡은 경천사(터)십층석탑의 높이는 박물관 2층높이로서 13.5m입니다

경천사 십층석탑(敬天寺 十層石塔)
.경기 개풍 경천사터(현재 황해북도 개풍)
.고려 1348년(충목왕 4년)
.국보 (구)제 86호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대리석 석탑으로, 고려의 전통과 당시 중국(원나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목조 건축 장식을 섬세하게 표현하였으며, 탑 아래쪽 3단의 기단부에는 당나라 현장법사와 손오공등이 인도에서 경전을 구해오는 험난한 여정을 중심으로 나한과 사자를 새겼다. 그 위에 탑신에는 여러 장면의 법회(法會)와 법회 이름을 새긴 현판을 달았다(1~4층). 탑 꼭대기까지는 다섯 부처 또는 세 부처를 조각하였다(5~10층).

1층 탑신에는 원나라 황실을 축원하면서 온 백성이 편안하고 일체 중생과 더불어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란다는 내용과, 진령부원군 강융(姜融)과 원사(院使) 고용봉(高龍鳳 또는 高龍普)이 시주하여 탑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새겼다. 1907년 일본 궁내부대신 다나카(田中光顯)가 일본으로 무단반출하였으나, 영국과 미국의 언론인 E.베델과 헐버트의 노력, 우리 국민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1918년 환수되었다

 

▼ 1902년 개성 개풍군 경천사터에서 유리건판 사진으로 남긴 10층석탑입니다. 5년 후인 1907년에 눈독을 들이던 일본인 궁내부 대신 다나카 미쓰야끼에 의해 무단으로 일본으로 반출되었습니다.

 

8년 후인 1918년에 환수되었지만, 원래 자리인 개풍군 경천사터인 아닌 경복궁 회랑에 40년간 방치되었다가, 1959년~1961년에 경복궁에 복원하였습니다.

 

▼ 경천사터에서 십층석탑이 무단으로 일본으로 밀반출된 직후,대한제국에서 활동했던 영국과 미국의 언론인인 배설® 베델)과 호머 헐버트 등이 ‘코리아 데 일리 뉴스’ ‘재팬메일’ 등 국내외 신문에 관련 내용을 기고해 일본에 대한 비난여론이 들끓게 되자, 1918년 11월에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 세 차례나 이전의 아픔을 겪었던 경천사 십층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복도에  2005년 10월에 이전.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경천사터십층석탑의 수난이력을 보면, 해체와 일본으로 갔다가 되돌아왔을 때 경천사터에 옮기지 못하고, 경복궁 회랑에 보관되었지만, 부재의 파손과, 훼손이 심해 조립되지 못하고 40년간 보관돼 오다, 1959년~1961년( 2년)에 국립박물관 주관으로 경복궁 앞 뜰에 복원하였습니다.

 

하지만,당시 시멘트로 복원한 부분이 산성비와 풍화 등의 영향으로 부식이 심화되자 1995년 5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해체돼 10년간 보존처리를 거쳐 2005년 10월 용산에 새롭게 문을 연 국립중앙박물관의 건물 안으로 이전 .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1961년 부터 1995년 5월 까지 경복궁에 있었을때 경천사 심층석탑의 모습입니다. 

 

경천사 10층석탑의 층수는 공식적으로는 10층이라고 규정되어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가는데, 다른 의견으로는 1층,2층,3층을 기단부로 본다면, 나머지 층수는 7층이 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 경천사(터)십층석탑의 상륜부를 보면, 개성에 있을때와 경복궁에 있을때. 현재의 모습을 보면, 다르게 복원이 되어 있는데, 원각사(터)심층서탑도 동일한 모습입니다.

 

▼ 서로 쌍둥이석탑인 경천사(좌)십층석탑과, 원각사(우)십층석탑을 비교해 봅니다.

 

경천사 석탑이 세워진 후 119년이 지난 조선 세조 13년(1467년)에 경천사석탑을 모방한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세워졌습니다. 

 

▼ 경천사의 기단부에 새겨져 있다는 글씨에서 탑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탁본에서 보면,  석탑은 대화엄 경천사에서 1348년 3월 조성되었고, 발원자는 대시주 중대광 진녕부원군 강융(姜融), 대시주 원사 고룡봉(高龍鳳), 대화주 성공(省空), 시주 법산인 육이(六怡)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료를 보면 경천사탑이 만들어진 경위를 자세하게 알 수 있는데, 최종적으로는 고려사람으로서, 원나라의 황후였던 기황후를 위한 탑이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경천사가 원나라 승상 탈탈(悅脫)의 원찰(願刹)로 강융이 원나라에서 장인(匠人)을 뽑아 이 석탑을 만들었다는 기록을 전하고 있다. 강융은 실제로 충선왕의 측근인데다 딸이 탈탈의 애첩이 되면서 고려에서 권세를 누렸으며 고용봉은 환관으로,원나라에 들어가 순제의 황후가 된 기황후와 연결돼 자정원사로 출세한 당시 고려의 대표적 인 친원세력의 중심 인물 7가운데 한사람이다. 

 

 

▼ 참고로 탑신에 새겨진 불상 몇개를 자료사진으로 보겠습니다.

 

▼ 상단에 삼세불회(三世佛會)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부의 조각은 1층부터 3층까지의 불회(佛會) 장면만을 일컬어 12회라고 하기도 하고, 때로는 4층의 불회 장면을 포함하여 16회로 보기도 합니다. 불회 장면 위에는 현판 모양에 각 불회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는데, 현판의 명칭과 도상을 정리해보면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 경천사 십층석탑의 층수를 세어 보면, 10층인데, 보통의 탑은 홀수이므로 9층, 11층이나, 13층이어야 하는데, 홀수가 아닌 10층으로 만든 이유를 문화재 전문가는 경천사가 화엄종 계통의 사찰이었기 때문인데,『화엄경(華嚴經)』 에서는 십(十)을 화엄의 완성’,‘완전한수’로 여겼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선 세조때 경천사탑을 그대로 모방해서 만든 원각사 십층석탑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 상륜부를 보려면 삼층으로 올라가서 봐야 합니다. 상륜부의 모습을 보면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있는데, 경복궁에 있을때의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 경천사(터)십층석탑의 상륜부를 보면, 예전의 모습과 아주 많이 다른데, 전문가들께서 잘 판단하셔서 바꾸셨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무래도 상륜부의 모양이 이상하기는 합니다.

 

※ 오른쪽 사진이 경복궁에 있었을 때의 상륜부 모습입니다

 

▼ 2021년에 발행한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우표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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