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불교조각실에 대형부처만 따로 모아서 전시하는 공간에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거대한 철불(鐵佛)과 석불(石佛)을 알아보았습니다.

 

※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관람객과 부처를 비교해 보면, 전시된 부처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좌) .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우)

 

원래 경상북도 경주시 내동면 신계리 감산사(甘山寺)에 봉안되어 있었던 것으로 함께 발견된 아미타여래입상과 함께 1915년 서울로 옮겨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석조미륵보살입상 광배의 뒷면에는 선각으로 새긴 긴 명문(391자)이 있는데, 비슷한 내용의 명문이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의 광배 뒷면에도 있는데, 내용을 요약해 보면...

 

원래는 김지성이 왕과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석조아미타불입상을 발원하여 조성하고자, 719년(통일신라 성덕왕 19년)에 먼저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조성하였으나, 그 이듬해(720년)에 김지성이 세상을 떠난 후에 석조아미타불입상의 조성이 완료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두 불상이 제작된 경위를 떠나서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 제작수법과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명칭 : 경주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慶州 甘山寺 石造彌勒菩薩立像)
- 시대 : 통일신라
- 크기 : 높이 270.0cm
- 지정문화재 : 국보(1962)
- 소장품번호 : 본관 1958

경주 감산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慶州 甘山寺 石造彌勒菩薩立像)_국립중앙박물관
신체와 광배는 하나의 돌로 제작하고, 별도로 제작한 대좌에 결합시켰다. 이러한 형식은 감산사 절터에서 함께 수습된 <아미타불>과 같다.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썼는데 중앙에 화불(化佛)이 있다.

얼굴은 갸름하나 살이 올라 있고 눈과 입에 미소가 어려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며 목걸이, 팔찌, 영락 장식 등으로 신체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내려뜨리고 있고, 왼손은 들어 올려 손바닥을 보이고 있다.

팔목에는 천의가 걸쳐져 있는데, 법의(法衣)는 얇아서 신체의 풍만하고 유려한 곡선을 더욱 살려주고 있다. 광배는 배모양에 신체를 모두 감싸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세 가닥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였다.

광배 뒷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를 통해 719년 김지성(金志誠)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조성한 미륵보살상임을 알 수 있다. 표현이 사실적이고 관능적인 모습을 한 통일신라 8세기 불상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 명칭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慶州 甘山寺 石造阿彌陀如來立像)
- 시대 : 통일신라
- 크기 : 전체높이 275.0cm
- 지정문화재 : 국보(1962)
- 소장품번호 : 본관 1959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慶州 甘山寺 石造阿彌陀如來立像)_국립중앙박물관
1915년 경주 감산사터에서 <미륵보살>과 함께 옮긴 것이다. 광배와 대좌는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광배에는 719년 김지성(金志誠)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 감산사를 짓고, 미륵보살과 아미타여래를 만들었다는 명문이 새겨 있다. 

연대가 확실하여 통일신라 불상의 연대에 있어 기준작이 되고 있는 작품이다. 머리는 나발(螺髮)이고 육계가 크고 편평하다. 넓적한 얼굴에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이마에는 백호 구멍이 나 있다. 

오른손은 들어서 손바닥을 앞으로 향하였으며, 왼손은 밑으로 늘어뜨렸다. 법의(法衣)는 얇아서 몸의 곡선이 잘 드러나 있다. 옷주름은 가슴에 U자 모양의 주름이 물결치듯 밑으로 흘러내려 있으며, 두 다리에 다시 평행 U자 모양 주름이 흘러내려 있다. 

광배는 거신광에 두광과 신광이 모두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은 8세기 신라 불상의 정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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