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조각실의 유리상자 안에 2점의 금동불좌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출처가 남양주 수종사의 오층석탑이어서, 좀 더 자세하게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는 1957년, 1970년 두 차례에 걸쳐 금동불감과 금동불상 27구, 목조불감과 목조불상 3구가 발견되었으며, 이 불상들은 1479년(성종 10년), 1493년(성종 24년), 1628(인조 6년)년에 봉안된 불상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자료를 여러 경로를 통해서 분석해 보면, 수종사의 팔각오층석탑에는 시대를 달리하여 세 번에 걸쳐서 불상을 안치하였으나, 안치한 불상의 수량과, 발굴 시 불상의 시주자 주체의 구분이 제 각각이어서 대략적으로 시주자(명빈김씨, 성종의 후궁들, 인목대비)와 역사적인 관계로 접근하였습니다
※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불교조각실의 유리상자안에 2점의 금동불좌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출처가 남양주 수종사의 오층석탑이어서, 좀 더 자세하게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 이 두점의 금동불좌상은, 조선 인조 6년(1628)에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가 조성하여 오층석탑애 안치한 23구의 불상 일부입니다.
크기가 모두 10㎝ 내,외로서 높이가 작고, 얼굴형태는 미소년같이 만들어져서 혹시 인목대비의 아들로서, 광해군에 의해 살해당한 영창대군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수종사의 팔각오층석탑의 옥개석과 중대석에는 총 30구의 불상이 발견되었으며, 인목대비가 발원한 불상은 23구라고 안내하고 있으며, 안내문에는 없지만, 1층 탑신석(몸돌)에는 태종의 후궁 명빈김씨와, 성종의 후궁들이 발원한 불감과 불상도 있습니다.
조선왕조 창업의 기본은 유교라고 출발은 하였지만, 왕족들과 고위층은 여전히 불교에 의지하였습니다
▼ 인목대비가 발원한 금동불상의 일부입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가 불교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고 합니다.
▼ 금동불상이 발견된 남양주 수종사의 팔각오층석탑은 우측의 석탑이며, 금당에 가까이 붙어 있습니다. 팔각오층석탑의 원래 위치는 금당의 우측에 있었습니다만, 1970년에 해체 하여 지금의 자리에 복원하였습니다
▼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에서 발굴된 불교유물들의 전체 모습입니다. 여러 모양의 불상들이 하나의 탑 속에 이렇게나 많이 들어 있었다니... 인목대비의 아버지(김제남)와 나이 어린 영창대군은 광해군에 죽임을 당했는데, 그 비통함을 부처에 의지하고, 그 원혼을 달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석탑 속에 부처를 모셨습니다
▼ 금동불상이 발견된 탑의 위치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불교유물이 쏟아진 사례는 없었으니 발굴팀은 쇼킹했을 것입니다.
팔각오층석탑의 불교유물은 두 차례의 발굴조사에 의해서 발굴이 되었는데, 1957년에는 수리 중에 중대석에서만 유물이 발굴되었고, 나머지는 1970년에는 해체 이전 중에 발견되었는데, 1957년에는 왜 일부만 발견되었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 1957년, 팔각오층석탑을 수리
1) 기단 중대석에서 금동불상 8구,
2) 1층 탑신석에서 청동불감과 금동불상 3구와 목조상 3구,
3) 1층 옥개석에서 금동불상 4구가 발견.
※ 1970년, 팔각오층석탑을 해체, 이전
1) 2층 옥개석에서 금동불상 9구,
2) 3층 옥개석에서 금동불상 3구가 수습되었다.
▼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의 유물에 대해서 좀도 자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청동불감과 금동삼존불은 탑의 1층 탑신석에서 발견되었으며, 1628년(성종 24년) 태종의 후궁 명빈김씨(자식이 없었음)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며 발원한 것입니다
- 성종 10년(1479년)
: 명빈김씨(태종 후궁)가 생존했던 성종 10 년(1479 년)에 금동삼존불좌상(추정)을 처음 조성(1층 탑신석)하였으며, 하단 은판에 음각으로 ‘시주 명빈 김씨(施主明嬪金氏)라는 명문을 새기고 초층 탑신석에 안치
※ 금동불감 안에 금동삼존불좌상(①금동석가불좌상, ②반가사유보살상, ③지장보살좌상)
- 성종 24년(1493년)
성종의 후궁(숙용 홍씨, 숙용 정씨, 숙원 김씨)들이 왕실의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며, 명빈김씨가 발원하여 안치한 옛 불상을 중수하고, 장엄하여 초층 탑신석에 안치
※ 목조불감 안에서 ①목조보살입상, ②지장보살입상, ③천왕상
※ 발원문에 성종 24년(1493)에 성종의 후궁들이 왕실의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며 옛 불상을 중수하고 장엄하여 탑에 안치하였다는 내용을 기록
- 인조 6년(1628 년)
135년 후인 인조 6년(1628년)에는 인목대비가 석탑을 해체하여 기단 중대석, 초층, 2층, 3층 옥개석에 금동불상 23구를 나누어 봉안하였으며, 불상의 제작은 조각승인 성인(性仁)이 모두 제작하였습니다
▼ 인목대비가 발원한 불상 중에서 팔각오층석탑의 기단부 중대석에서 발견된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의 바닥면에 새겨진 명문이며, 뾰족한 침으로 쪼아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사진에서 확인 가능한 글자를 보면, 1628년 인목대비가 발원하여 불상을 제작하였다는 내용입니다
崇禎元年戊辰昭聖貞擬大王大妃發願(?) ; 숭정원년무진소성정의대왕대비발원...
※ 소성정의대왕대비는 인목왕후입니다
- 여기까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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