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길을 오랫만에 걸어봤습니다. 백복령에서 부터 석병산을 거쳐 삽당령까지의 구간으로 약 17km의 거리여서 미리 난이도를 조사해봤더니, 아주 많이 힘든 구간이라고 해서 쫄았었는데, 역시나 만만한 구간이 아니었습니다.

 

▼ 아무도 없을때 백복령의 표지석을 찍을려고 했는데, 이미 틀렸습니다. 사람이 없는 깨꿋한 남의 사진을 복사해서 몰래 끼워 놓기는 죽기보다도 싫으니 그냥 이 사진을 머릿사진으로 올리기로 했는데 다행히 얼굴을 알아볼 수준이 아니어서 그냥 올렸습니다.- 경기하나 대간7기에 보충산행하였습니다. 고개의 이름이 유래된 이유는 이고개에서 버섯의 일종인 하얀색의 복령(백복령)이 많이 생겨나서 유래됬다고 합니다

 

▼ 인터넷에서 구한 지도인데 아주 잘 보입니다. 지도의 방향대로 진행하였으며, 거리는 약17km이었으며, 걸린시간은 7시간이었습니다.


▼ 이번 구간에서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생계령에서 부터 고병이재까지의 구간이었습니다. 한여름에는 피하는것이 좋을듯 한 구간입니다.

 

▼ 들머리에서 약간 밑에 있는 표지석인데 , 백복령은 지금의 동해시와 정선군의 경계에 있으며, 아주 오래전 부터 동해에서 생산되는 해물상품은 주로 대관령이나, 지금의 백복령을 통해서 강원도의 내륙으로 공급되었다고 합니다.

 

▼ 자병산 자락을 보고 있자니 너무도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 모습에 안타깝고, 분하고, 슬픈마음이 한꺼번에 밀려 옵니다. 자병산은 원래 해발 872m였으나 지금은 760여m로 내려 앉았다고 합니다. 바위산이 병풍처럼 온통 돌에 둘러싸여 있는 산이었는데 바위의 색갈이 붉게 빛이 난다고 해서 자병산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 이제 자병산의 정상 부위는 없어지고 겨우 작은 봉우리만 남았습니다. 어찌보면 자병산은 시대의 환경에 희생당한 비운의 산일지도 모릅니다. 하필 석회암을 가득 품은채 백두대간 능선에 생겨났는지, 또 민족의 근간인 백두대간에 솟아있는 봉우리 인데도 사람들은 왜 그토록 무지했을까?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앞으로 자병산에서 생산하게될 석회암의 생산가능년수는 100년 정도라고 합니다. 앞으로 몇만년 후세에 물려줄 우리땅인데 나중에 후손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 고압선이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서 이어져 있습니다. 대간 능선을 따라서 저런 고압선 철탑이 세워져 있는것도 처음 봅니다. 저 송전선로는 아마도 동해화력발전소에서 정선군 지역으로 송전되는 선로인것 같습니다. 오른쪽 능선은 자병산에서 부터 이어지는 대간능선인것으로 보입니다.

 

▼ 백복령에서 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길은 솔직히 말하면 대간길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냥 대간길 접속구간이라고 하는게 편하겠습니다. 대간길에 접속하려면 파란색 지붕이 있는 조그만 건물이 있는쪽으로 꺽어서 들어가야 합니다

 

▼ 저 간판을 보면 웃기지도 않습니다. 한쪽에서는 대간능선을 통째로 잡아먹으면서 한쪽에서는 백두대간을 보호한다고 생색이나 내고 있으니 이 시대의 이중적인 행태에 마음이 씁쓸합니다.

 

▼ 본격적인 대간길에 들어서면 카르스트 지형이라는 팻말이 나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반이 둥그렇게 함몰되어 있는 현상인데, 석회암이 빗물에 용해되면서 서서히 발생하는 현상이며 지하에는 물이 흐른다고 합니다. 앞으로 약 5km정도의 대간길에서 자주 보게되는데, 여기 지방에서는 쇠곳이라고도 하구요. 학술적인 외국어로는 돌리네(doline)라고 한답니다.

 

▼ 소나무와 잡목이 많은 오솔길 같은 구간을 만납니다. 이런길이 계속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어느덧 생계령에 도착했습니다.그러고 보니 백복령에서 부터 꽤 긴 거리를 지나왔습니다

 

▼ 생계령 공터에서 점심 식사중인 산행팀을 만났는데 경기하나 7기 인줄 알았더니 다른 산악회였습니다. 경기하나 대간7기에는 보충산행으로 4번 정도 왔었는데 아는 얼굴이 몇 안되는군요.

 

▼ 생계령에서 석병산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제 봄과 여름이 섞이는 계절인가 봅니다.

 

▼ 어느 정도 전망이 좋은곳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입니다

 

 전망이 좋은곳에서 대간의 마루금을 바라봅니다. 마루금이라는 용어는 제가 보기에는 순수한 우리말입니다.  "마루" 라는 말은 꼭대기를 말하며, "금"은 꼭대기와 꼭대기를 이은 줄(線)을 말하는데 한문으로 말하자면, "산능선"이 되네요...옛날 어릴적에는 땅 바닥에서 놀때에 나뭇가지로 "금을 긋는다"라고 했지 "선을 긋는다"라고는 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무너져내리는 자병산 자락입니다. 보면 볼수록 안타까워서 자꾸 보고싶지가 않습니다.

 

▼ 백두대간을 설명하는 안내판 뒤로는 초대형 자연파괴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으니 아이러니 입니다.

 

▼ 고병이재에 왔습니다. 쉴만한곳도 없고 시간도 없으니 그냥 진행합니다.

 

▼ 922봉에 왔습니다만 아직도 석병산까지는 1시간15분이나 더 가야 하는군요...

 

▼ 유난히도 야생화가 많은 대간길이었습니다.

 

▼ 나도 좀 살자... 이 삭막한 세상에 서로 의지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 , 받으며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느덧 나잇살이 들다보니 지금껏 내가 살아온것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척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바위봉우리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바위로된 봉우리를 보는것은 석병산뿐입니다.

 

▼ 석병산과 수목원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600미터만 더 가면 석병산 입니다. 고병이재에서 부터 석병산 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길이기 때문에 체력안배가 중요간 구간이더군요...

 

▼ 고목에 들러붙어서 사는 버섯의 일종인데 하얀색의 버섯들이 마치 하얀꽃처럼 보입니다.

 

 조금만도 가면 석병산입니다. 긴거리의 오르막길이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 석병산 정상의 모습입니다. 오랫만 보는 바위 투성이 정상의 모습입니다.

 

▼ 석병산 정상 봉우리 전에 있는 암봉이구요. 위에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습니다.

 

▼ 일월봉에 뚫린 구멍입니다. 아마도 이 구멍으로 달뜨는 모습을 보면 환상적일것입니다

 

▼ 일월봉 아래에 있는 암봉의 모습입니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두리봉입니다

 

▼ 석병산 정상 옆에 서있는 선돌입니다.

 

▼ 더시 보는 암봉인데요 , 두리봉을 배경으로 보는 풍경은 멋집니다.

 

 두리봉까지는 경사도가 완만한 편이라서 그나마 앞으로의 산행길의 부담을 덜어 봅니다.

 

▼ 암봉을 당겨본 모습

 

▼ 석병산 정상에서 뻗어내린 능선들의 모습도 훌륭한 모습입니다. 가을에는 더욱더 아름다울것이라 생각합니다.

 

▼ 석병산 정상의 뒷모습

 

▼ 석병산 정상을 앞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여기서 해가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 무척 환상적일것 같습니다

 

▼ 석병산 전체를 뒤에서 바라보니 왜 석병산이라고 하는지 금방 알게되었습니다.

 

▼ 두리봉 까지는 고만고만한 오르막, 내리막길이 계속됩니다. 두리봉 까지는 거의다 왔습니다.

 

▼ 무슨꽃인지 너무도 고운 노랑색의 야생화입니다.

 

▼ 두리봉에는 정상석이 없구요, 다만 모 산악회에서 걸어놓은 표지가 정상석을 대신 합니다

 

▼ 두리봉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두리봉은 그저 평범한 봉우리 모습입니다

 

▼ 두리봉에서 삽당령까지 절반 왔습니다

 

▼ 두리봉에서 삽당령까지는 잡목지대, 산죽지대를 번갈아 지나는 아주 지루한 길입니다. 하지만 힘든고개는 없습니다

 

▼ 이제 삽당령에 거의다 왔습니다. 목표지점에 다다르면 웬지 모르게 다리가 풀립니다.

 

▼ 임도를 건너서 조금만 더 갑니다

 

▼ 무사히 삽당령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수고가 많았습니다

 

▼ 고개 정상의 모습이 삼지청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생긴 삽당령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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