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성(禿山城)은 독성산성이라고도 하고 행정구역상 오산시로 편입이 되어 있으나 접근하기는 세마대역과 병점역 또는 정남면 쪽이 더 가깝습니다. 또한 일반인들은 권율장군의 세마대라는 명칭은 잘 알고 있는 듯 하나 세마대가 있는 독산성이라는 명칭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듯합니다 나도 독산성에 대해서 좀 조사를 해보았는데,  다음은 독산성(또는 독성산성)에 대한 개략적인 사항입니다

 

※ 독성산성(禿城山城)은 한자로 풀어보면 대머리 산성쯤으로 풀이되는데 아마도 옛날에는 벌거숭이 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사적 제 140호 : 지정일은 1964.08.29   

- 본성의 총연장은 1,100m이며 내성은 350m, 소재지는  경기 오산시  지곶동  

- 축조 연대는 분명치 않지만 기록상 원래 백제가 쌓은 고성이었고, 신라통일기나 고려시대에서도 군사상 요지로 되어 왔다 (1977년 간행된 전국문화유적총람)

- 독산은 본래 석대산, 향로봉이라고 불려 왔고 조선시대에는 독산성이라 불려 왔으나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폈던 진묘(眞妙)    한 병법 전략에 연유해 지금은『세마산』또는『세마대』 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정상에는 이승만 대통령 친필의 세마대라는 현판이 붙은 누각 건물이 있다.
- 세마대의 유래 : 독산성은 군사기지로서의 주요 위치에 놓여있긴 하지만, 샘물의 부족이 흠으로 지적되고 있다.임진왜란 중  권율 장군이 서울을 수복하고자 2만 명의 군사로 이곳에 진을 치고 왜군의 대군과 대치한 독산성 전투는 너무나 유명하다.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의 왜군은 벌거숭이산에 물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탐정 군사에게 물 한 지게를 산 위로 올려 보냈다.

 

그러나 권율 장군은 왜군의 의도를 꿰뚫어 보고 백마를 산 위에 끌어올려 흰쌀을 말에 끼얹어 말을 씻는 시늉을 하게 하였다. 이것을 본 왜군은 성내에 물이 많은 것으로 알고 퇴각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샘물의 부족한 단점을 권율 장군이 슬기롭게 극복한 세마대의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1957년에 복원되었다. 

 

 ※ 이상은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둘러본 소감은 동문과 동문 측의 치성을 제외한 전체의 성곽이 복원 상태가 좀 부실한 것 같아서 앞으로 복원 시에는 신경을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그마한 성인데 의외로 치성이 많고 치성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었습니다(치성이  8개가 있습니다)  

 

▼ 화성시 보통리 3거리에서 바라본 독산이며 우측의 봉우리가 산성이 있는 봉우리입니다

 

▼ 산성을 둘러보기에는 주차장에서부터 둘러보는 것이 편합니다. 예전에는 운전 연습하시는 분들과 번개 데이트 즐기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 주차장 쪽에서 올라가다 보면 첫 번째 만나는 서문인데 언제 복원했는지는 모르지만 비교적 복원이 잘돼어 있습니다.

 

▼ 서문 안에서 밖으로 바라본 모습입니다.

 

▼ 잘 복원된 서문 모습입니다

 

 치성인데 돌의 맞물림 상태가 아주 부실하고 치성 안쪽에는 흙만 채워놓아서 흙의 무게에 성돌이 삐져나왔습니다 부실한 복원이 눈에 보이는데, 성돌을 쌓은 방법부터 공부하고 복원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남문 측의 치성 아래쪽에는 다시 복원하려는지 말뚝이 꽂혀있는데, 축성 당시의 돌 쌓는 방법으로 완벽히 복원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남문 쪽의 치성인데 다시 복원할 때는 이렇게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긴 돌과 짧은 돌을 교대로 맞물려서 쌓아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시골의 축대를 쌓아도 이렇게는 안 할 것입니다.

 

▼ 암문처럼 보이는데 북문인 듯합니다. 

 

▼ 서쪽 치성에서 보적사가 보입니다

 

▼ 천년고찰이라는 보적사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때에는 성곽을 지키고 보수하는데, 승려들이 그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 보적사 밖의 성벽 모습인데 사찰 주변이라서 그런지 성벽의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 보적사 쪽 치성에서 바라본 병점과 동탄신도시 방면입니다.

 

▼ 보적사에서 바라본 수원 남부지역이며 우측 중간에 검게 높은 건물은 삼성전자 연구소이고, 중앙에 버티고 있는 산은 광교산입니다

 

▼ 위치상으로는 동문입니다 그런데 웬 해탈의 문....절을 위해서 성벽을 쌓아 놓은 것은 아닐 텐데..... 조선시대 때는 성곽 안에 승려들이 성도 지키고, 성곽 보수도 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성에는 절이 있었습니다.

 

▼ 복원해놓은 성벽 아래의 축대입니다

 

▼ 보적사에 들어가려면 이 해탈문(동문)밖에 없습니다.

 

▼ 세마대의 정자이며 현판의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세마대라는 현판은 앞뒤로 걸려 있습니다.

 

▼ 남문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치성인데 복원을 잘해서 그런지 온전한 상태인데 여장 부분을 시멘트로 씌워버려 보기가 좋지 않습니다

 

▼ 남문인데 비교적 다른 문보다는 크기가 크고 복원 상태도 제일 좋습니다.

 

▼ 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옹성이며 축성 당시의 모습처럼 복원이 아주 잘되어 있습니다.

 

▼ 동문의 넓이는 마차 한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정도입니다.

 

▼ 밖에서 바라본 남문 옹성입니다. 독산성은 삼국시대 때부터 한강과 서해안을 차지하려는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전쟁터였습니다

 

▼ 남문 쪽의 내부 모습입니다.

 

▼ 무엇에 쓰이던 물건인고.... 속의 내부는 매끄럽다

(이것의 용도는 죽주산성의 남문지에 가서 알게 되었다. 성문의 여닫이 문기둥을 끼워놓았던 돌이며 장대석 밑에 튼튼하게 고정되며 문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 남문에서 서문 사이의 치성이며 8개의 치성 중 복원 상태가 제일 좋아 보입니다 

 

▼ 문의 크기가 암문 수준인데 암문과 서문 사이에 있고, 남암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 암문의 복원 상태는 좋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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