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 있는 휘경원은 조선 22대 정조의 후궁이자 23대 순조의 사친인 유비 박씨의 원소입니다. 원소는 왕의 사친의 예우로 조성하여 홍살문, 정자각, 비각 등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하였고. 1822년(순조 22)에 유비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823년(순조 23)에 양주 배봉산 아래(구 사도세자 영우원터 근처, 현 서울시립대 부근)에 휘경원을 조성하였습니다. 이후 1855년(철종 6)에 인빈 김씨 순강원 근처로 천봉하였다가 풍수상 불길하다 하여 1863년(철종 14)에 현재의 자리로 다시 천봉하였습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휘경원은 개방되지 않아서 문화재청의 자료사진을 인용 하였습니다
▼ 정조의 가계도를 보면 수빈(유비)박씨는 1남/1녀를 두었으며, 아들이 23대 순조입니다.
휘경원徽慶園(순조 생모 유비)
- 위치 :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부평리 267
- 원의 형식 : 단분
- 원의 조성 : 1863년(철종 14)
- 휘경원의 구성
휘경원은 조선 22대 정조의 후궁이자 23대 순조의 사친인 유비 박씨의 원소이다. 원소는 왕의 사친의 예우로 조성하여 홍살문, 정자각, 비각 등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하였다. 비각안에는 1863년(철종 14)에 현재의 자리로 천봉하면서 세운 표석이 있다. 원침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고 호석으로만 봉분을 둘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이 배치되어 있다. 원의 형식으로 무석인을 생략하고, 석양과 석호는 각각 한 쌍씩 배치하였다.
- 휘경원의 역사
1822년(순조 22)에 유비 박씨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823년(순조 23)에 양주 배봉산 아래(구 사도세자 영우원터 근처, 현 서울시립대 부근)에 휘경원을 조성하였다. 이후 1855년(철종 6)에 인빈 김씨 순강원 근처로 천봉하였다가 풍수상 불길하다 하여 1863년(철종 14)에 현재의 자리로 다시 천봉하였다.
- 유비 박씨(綏妃 朴氏) 이야기
유비 박씨(재세 : 1770년 음력 5월 8일 ~ 1822년 음력 12월 26일)는 본관이 반남인 증 영의정 박준원과 원주 원씨의 딸로 1770년(영조 46)에 태어나, 1787년(정조 11)에 유빈(綏嬪)으로 간택되어 가순궁(嘉順宮)의 칭호를 받았다. 1790년(정조 14)에 순조를 낳았고, 1793년(정조 17)에 숙선옹주를 낳았다. 1800년에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의 사친으로서 예우를 받으며 살았다. 그 후 1822년(순조 22)에 창덕궁 보경당에서 53세로 세상을 떠나 시호를 현목(顯穆), 궁호를 경우궁(景祐宮), 원호를 휘경원(徽慶園)이라 하였다. 1901년(광무 5)에 황제(정조선황제)의 후궁이자 황제(순조숙황제)의 사친이므로 특별히 추봉해야한다는 논의로 유비(綏妃)로 추봉되었다.
* 綏의 음은 ‘수’ 또는 ‘유’이나, 1823년(순조 23)에 작성된 <유빈박씨 진향문>에 한글로 ‘유빈’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를 토대로 ‘유’로 씀.
▼ 개방되지 않은 휘경원이지만, 나름대로 관리가 잘 되고 있는듯 합니다, 왼쪽에는 수라간의 유구가 보입니다.
▼ 정자각의 배례청에서 보는 홍살문은 경건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 묘표의 내용은 자료가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습니다
▼ 원침은 예우에 맞게 문인석과 장명등 망주석, 석양과 석호로 이루어져 있지만 왕릉과는 격의 차이를 두었습니다.
▼ 능이나, 원의 참모습은 잠들어 있는 분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 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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