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장인들은 신라의 기술을 이어받아서 섬세한 세공 기술인 타출(打出) 기법으로 여러 생활용품을 만들었지만, 주로 불교용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타출 기법이란, 문양이 조각된 틀에 금속판을 대고 안쪽 혹은 바깥쪽에서 정을 두드려 문양을 부조처럼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양각법(陽刻法)의 장식 기법입니다. 

 

※ 자료(사진포함)은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조각.공예관은 국립중앙박물관 3층에 있습니다


 

 

▼ 몸체 뚜껑에는 한쪽에서 높게 솟아난 나무 아래에 그림을 들고 있는 동자 두 명과 그 옆에 바위 위에 앉아 부채를 들고 그림을 감상하는 신선처럼 생긴 노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우거진 나무에는 꽃이 활짝 피어 있고 나비가 난다. 족자 형식의 그림에는 산수와 배가 있다.

향합 반대쪽에는 왼쪽에 솟아오른 나무 밑에서 노인 두 명이 바둑을 두고 있는 모습과 그 옆에서 술병을 들고 동자가 시립하고 있는 모습을 타출(打出)했다. 바둑판은 줄자리와 작은 바둑돌까지 묘사됐고, 측면에는 위쪽에 줄을 매달기 위한 고리가 달려 있으며, 판을 돌아가며 간략한 꽃무늬가 연속으로 얕게 타출 됐다.

 

고려시대 향합 가운데 고부조(高浮彫)로 형상화된 가장 정교한 작품이며 회화적으로도 우수하다. 고려 금속공예의 귀족적이고 풍요로운 면모를 보여준다._국립중앙박물관

※ 타출(打出): 철판 밑에 모형을 대고 두드려 그 모형과 같은 모양이 겉으로 나오게 함)


 


▼ 몸체의 2/3쯤 되는 부분을 잘록하게 좁히어 상ㆍ하 두 부분으로 나눈 표주박형의 병으로, 은제(銀製) 위에 도금(鍍金)을 하였으며, 전면에 고부조(高浮彫)의 타출기법(打出技法)으로 섬세한 문양을 빠짐없이 시문(施文)하였다.

 

구연부 위에는 사리병(舍利甁)처럼 연봉형태의 뚜껑을 만들어 끼우도록 구성되었으며 저면은 굽이 없이 둥글게 처리되었다.상부 몸체의 윗부분에는 덩굴형 줄기를 연속으로 두르고 그 여백면에 포도송이처럼 달린 화문(花文)으로 장식하였으며 하단에는 내부에 꽃술장식이 첨가된 엽문(葉文)을 앙엽(仰葉)으로 둥글게 돌아가며 중첩하여 배치하였다.

 

그 아래의 잘록한 마디 부분에도 간략히 화문을 새겼다.하부 몸체의 상단부와 하저부에도 동일한 모습이지만 복엽(伏葉)으로 처리된 엽문을 시문하였다. 그리고 몸체의 중단에는 머리를 아래로 향한 채 두 날개를 활짝 편 봉황문(鳳凰文)을 앞ㆍ뒷면에 배치하고 그 사이의 여백면을 돌아가며 상부 몸체에 시문 된 덩굴줄기와 포도송이 모양의 화문을 섬세하게 장식하였다.

 

이들 문양은 일견 복납해 보이면서도 좌우 대칭의 균제미와 율동감이 잘 표현되었다. 아울러 내면에서 타출(打出)시킨 뒤 다시 외부에서 그 여백을 두드려 누르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누금(鏤金)처럼 따로 떼어 붙인 듯 입체감이 강조되었다.

 

이 표형병의 용도는 미상이지만 동일한 타출기법과 연관성을 지닌 작품들을 참고해 볼 때 왕실의 부장품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며 바닥이 둥글게 처리된 점으로 미루어 반드시 별도의 받침대를 사용하여 올려놓도록 고안된 것으로 생각된다._국립중앙박물관

 

 

▼ 몸체는 표주박 모양으로, 은제 위에 도금을 하고 전면에 높게 돌출된 타출기법으로 섬세한 무늬를 빠짐없이 채워 넣었다. 구연부는 사리병처럼 연봉 형태의 뚜껑이 끼워져 있으며, 굽이 없이 편평한 바닥은 연꽃무늬로 장식하였다.

 

상부 몸체의 윗부분에는 연꽃넝쿨무늬를 연속으로 두르고, 그 여백에 포도송이처럼 생긴 꽃무늬와 어자문魚子文을 빼곡히 장식하였다. 하단에는 하늘을 향해 있는 기다란 연꽃잎을 둥글게 돌아가며 배치하였다.

 

그 아래의 잘룩한 마디 부분에는 두 줄의 띠로 처리되었다. 하부 몸체의 상단부에는 아래를 향해 겹쳐 있는 연꽃잎을 배치한 뒤 그 아래에는 꽃모양의 구획을 사방에 만들어 내부에 연꽃넝쿨무늬를 고부조로 타출 하였다.

 

꽃모양 구획 사이의 여백에는 상부 몸체에 표현된 것과 동일한 넝쿨형의 줄기와 포도송이처럼 생긴 꽃무늬가 빼곡히 장식되었다. 이들 문양은 일견 복잡해 보이면서도 좌우 대칭의 균제미와 율동감이 잘 표현되었다.

 

아울러 내면에는 타출시킨 뒤 다시 외부에서 그 여백을 두드려 누르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마치 누금처럼 따라 떼어 붙인 듯 입체감이 강조되었다._ 국립중앙박물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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