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동헌(관아)은 지방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곳 입니다. 조선시대까지는 결성읍성 내부에 17개의 관아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헌과 책방, 그리고 형장청등의 건물만 남아 있습니다.
결성읍의 변천사를 보면 백제 때의 결기군, 신라 때의 결성군을 거쳐 조선초에 결성현이 되었으며. 19세기 말(조선 고종) 지방제도 개편으로 결성군이 되었다가 일제강점기때 1914년의 군면 통폐합에 따라 홍주군의 홍자와 결성군의 성자를 따서 홍성군에 편입 되었습니다.
▼ 결성면 사무소앞에 주차를 하고 결성동헌으로 올라갑니다. 결성면사무서에서 150미터 정도 올라가야 하며, 결성동헌앞에는 주차 할 곳이 없습니다
▼ 결성읍성의 내력을 알려주는 안내문입니다. 결성읍의 치소는 원래 조선시대 이전부터 신금성에 위치 하였지만, 조선시대때에 방어에 유리한 석당산에 읍성을 축조하면서 치소인 관아도 지금의 석당산 기슭에 옮겨졌습니다.
▼ 결성관아가 신금성에서 방어측면에서 유리한 석당산으로 옯겨진 위치를 표시하였습니다. 결성현에서 가까운 뱃길을 이용하면 곧바로 서해의 안면도 앞바다를 만납니다.
옛날 백제나, 신라, 고려때에는 신금성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결성현의 관아 건물은 원래는 17개의 건물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관아의 건물은 점차 헐리게 되었고 지금은 3동의 건물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 결성동헌 앞에는 몇개의 현감공덕비가 있습니다
▼ 결성동헌의 솟을삼문형식의 결성아문입니다. 다른 관아의 아문과 비교하면 보잘것 없이 단청도 없고, 규모도 작은 문처럼 보입니다.
현판의 글씨를 보면 결자가 깨끗할 결(潔)로 쓰여져 있는데, 신라때는 결성군(潔城郡)이었다가, 고려 명동2년(1170년)에 소리는 같고, 한문글씨만 다른 결성현(結城縣)으로 바뀌었습니다.
▼ 결성아문(潔城衙門)과 부여의 홍산아문(鴻山衙門)의 사진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문의 형식이나, 크기, 모양, 단청등에서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 결성동헌의 왼쪽은 결성현감의 집무실인 망일헌(望日軒)이며, 오른쪽은 현감의 자제가 공부하던 책실입니다
▼ 정청인 망일헌이 그늘에 가려서 잘 안보여서 자료사진으로 보충하겠습니다_홍성군청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현감의 정청인 망일헌이며, 현판의 글씨를 쓴 사람의 낙관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고을의 정청인 동헌과 비교하면 아주 단촐 합니다
▼ 책실(冊室)은 두칸짜리 되어 있으며, 현감자제의 공부방입니다
▼ 결성은 백제의 결기군(結己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에 결성군(潔城郡)으로 개명하였으며, 1018년(고려 현종9년)에 운주(運州:洪州)에 예속시켰다. 1172년(고려 명종 2년) 결성현(結城縣)으로 개명하는 동시에 감무(監務)를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13년(태종 13년) 감무를 폐하고 현감(縣監)을 두었으며, 1733년(영조 9년) 보령(保寧)에 편입시켰다가 1736년(영조 12년) 현(縣)으로 독립하였고, 1895년(고종 32년)에는 홍주부(洪州府)에 예속되었다가 1914년 홍성군에 병합되었다.
▼ 다음은 형장청을 둘러 보겠습니다. 현재 보이는 길에는 결성읍성의 동문이 있었습니다
▼ 형장청으로 들어가는 형방문입니다.
▼ 형방문에서 바라보는 형장청이며, ㄱ자형태의 건물입니다.
▼ 생소한 형장청의 현판을 달았던 안내문입니다.
▼ 형장청은 일제강점기때는 경찰지서로 사용되었으며, 해방후에도 1984년까지 지서로 사용되었습니다.
▼ 형장청의 뒷편에는 아주 오래된 고목(회화나무)가 한그루 있는데, 신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읍니다
▼ 홍성군 결성면 형방청 후정에는 커다란 고목이 있있는데, 조선시대 결성현 최고의 선정관이었던 정구령 현감(결성 41대 현감)이 재직하던 1425년(세종 7년)에 식수하였으며, 1750년경부터 신운이 깃든 영험의 신목으로 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관장한다 하여 결성의 수호 신목으로 마을에서 두레 때에도 우선 신목제를 올리고 일터로 나가는 풍습이 전해져오고 있다.
또한 1935년(소화 10년) 결성 지서주임으로 있던 일본경찰 야마구치(山口)가 이 신목을 무단으로 잘랐다가 벌을 받아 벙어리가 되어 일본으로 쫓겨나게 되자, 이후 마을 사람들이 나무를 항일나무로 여기고 더욱 신성시하였으며, 이후 부임해오는 일본인 지서장들마다 꼭 이 고목에서 신목제를 정성껏 지내고, 광복 후에도 부임하는 경찰 지서장들도 반드시 신목제를 지내왔을 정도로 특별하게 관리되어 왔다.
1996년 8월 영험의 신목과 정(鄭) 공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홍주향토문화연구회, 결성문화재보호회, 결성농요보존회, 결성상록회, 결성노인회, 동래정씨홍성군종친회 등이 협조하여 ‘신목유래비’를 세우고 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매년 단오 날에 ‘단오신목대제’를 지내고 있다._충청남도 홈폐이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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