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 있는 왕릉은 전부 다녀봤는데, 북한에 있는 왕릉 2기(제릉,후즐)중에서 제릉(齊陵)의 자료사진으로 알아보고 가겠습니다. 제릉은 조선 1대 태조의 첫 번째 왕비 신의고황후 한씨의 단릉입니다.
자료사진으로 보는 제릉(齊陵)의 석물들은 지금까지 봐왔던 왕릉의 석물들과는 차이가 많이 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주 오래전에 찍었던 자료사진으로 보이는데, 장명등, 난간석주, 석호, 석양, 석마, 병풍석의 인석은 용두(龍頭)로 조각되어 있는것 등이 다릅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상설그림을 보면 일반 왕릉과 같게 보입니다.
▼ 태조 이성계에게는 부인이 둘이 있었는데, 신의왕후 한씨가 첫째 부인으로 태조가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능의 구성
제릉은 조선 1대 태조의 첫 번째 왕비 신의고황후 한씨의 단릉이다. 능침에는 문·무석인,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으며 병풍석의 인석은 용두(龍頭)로 조각되어 있다.
능침아래에는 정자각, 비각이 있으며 그 밖에 홍살문, 수복방 등은 소실되었다. 비각 안에는 1744년(영조 20)에 다시 세운 신도비와 1900년(광무 4)에 세운 표석이 있다. 표석 전면에는 ‘대한 신의고황후 제릉(大韓 神懿高皇后 齊陵)’이라고 써져있다.
능의 역사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신의고황후 한씨가 세상을 떠나자 해풍(海?) 치속촌(治粟村)에 일반묘로 조성하였다. 이후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되면서 절비(節妃)로 추존되고 능의 이름을 제릉(齊陵)이라 하였으며, 풍덕 북율촌(현재의 자리)에 능을 옮겼다. 그 후 태종이 왕위에 오르고 1408년(태종 8)에 제릉을 크게 공사하여 왕릉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신의고황후(神懿高皇后) 이야기
신의고황후 한씨(재세 : 1337년 음력 9월 ~ 1391년 음력 9월 23일)는 본관이 안변(청주)인 안천부원군 한경과 삼한국대부인 신씨의 딸로 1337년(고려 충숙왕 복위 6)에 영흥에서 태어났다. 1351년(고려 공민왕 즉위)에 이성계(태조)와 혼인하여 6남(진안대군 방우, 정종, 익안대군 방의, 회안대군 방간, 태종, 덕안대군 방연) 2녀(경신공주, 경선공주)를 낳았으며, 1391년(고려 공양왕 3)에 55세로 세상을 떠났다.
1392년(태조 1)에 조선이 건국되고 태조가 왕위에 오르자 절비(節妃)로 추존되었고, 1398년(정종 즉위)에 정종이 왕위에 오르자 신의왕후로 추존되었다.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에 고종의 직계 5대 조상추존으로 신의고황후로 추존되었다.
▼ 정자각의 모습을 보면 관리가 안되어 있는것 외에는 다른점이 없는데, 방풍널이 하단부가 수평으로 잘려보이는데 남한의 왕릉 정자각의 방풍널은 하단부가 둥굴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 문화재청 조선왕릉 사이트의 자료사진은 가울에 찍은 사진과 여름에 찍은 사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릉의 능침을 정면에서 보는 모습입니다만, 오랜세월을 거쳐온 릉 치고는 좋아 보입니다.
▼ 제릉의 망주석과 석명등을 보면 좀 투박하게 보이지만, 세련된 느낌이 드는데, 아마도 고려왕릉의 모습을 보고 석물을 만든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문인석과 무인석의 모습인데, 무인석을 보면 칼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남한의 무인과 달리 자세하지도 않고, 갑옷 사이로 들어가 있습니다.
▼ 난간석주와 난간석인데, 난간석주의 모습이 남한의 왕릉과 달리 좀 투박하게 보입니다.
▼ 병풍석의 화려함은 변함이 없습니다.
▼ 석양과 석호의 모습을 보면 조선 후기의 석양과 석호 보다는 예술적인 감각이 세련되어 보이지 않습니다.
▼ 병풍석을 지지하고 있는 인석의 머리 부분이 특이하게 용두로 되어 있습니다.
▼ 거의 완전하게 보이는 능침의 모습입니다.
▼ 곡장은 안보이는데, 아마도 무너져 있는 상태로 보입니다.
▼ 같은 방향에서 겨울에 찍은 자료사진입니다.
▼ 왕릉의 무인석이 아닌 그 뒤로 보이는 산에는 나무가 거의 안 보입니다. 남한의 왕릉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입니다.
▼ 뒤에서 보는 무석인의 모습인데, 문인석 보다는 무인석이 더 자세하게 조각되어 있어 보는 맛이 납니다.
▼ 비각 안에는 1744년(영조 20)에 다시 세운 신도비와(오른쪽 사진) 1900년(광무 4)에 세운 표석(왼쪽)이 있습니다. 표석 전면에는 ‘대한 신의고황후 제릉(大韓 神懿高皇后 齊陵)’이라고 써져있습니다.
추숭비 - 음기(번역) : 대한 신의고황후 제릉
승인 순성 신의고황후 한씨는 태조 고황제의 원후로, 원나라 지원 3년인 정축년(충숙왕복위5, 1337)에 탄생하였다. 원신택주로 봉해지고 명나라 홍무 24년인 신미년(공양왕3, 1391) 9월 23일에 승하하니 향년은 55세이다. 풍덕 북쪽 속촌 갑좌(동북동쪽을 등진 방향) 언덕에 장사지냈다. 태조 고황제가 즉위한 처음에 시호를 ‘절비’라 하였으며, 정종이 왕위를 물려받은 해인 무인년(1398)에 ‘신의’라는 시호를 추상하였다. 태종년간 무자년(태종8, 1408)에 ‘승인 순성’이라는 휘호를 추상하였으며 광무 3년인 기해년(고종36, 1899) 11월에 황후로 추존하여 공손히 ‘고황후’라는 시호를 올렸다. 이제 신도비 옆에 표석을 세우고 전면과 음기에 공손히 글을 써서 삼가 소자(고종)의 미미한 정성을 펼치노라.
광무 4년(고종37, 1900) ○월 ○일
※ 신도비문은 양이 많아서 생략하였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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