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 강당의 자료를 찾아보면 , 한결 같이 갑사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고 하고 있고, 정유재란 때 완전히 불에 타버려 이후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갑사 강당을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서 보듯이 광해군 6년(1614년)에 강당을 상량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갑사는 광해군 6년 즈음에 다시 지어졌다고 추정합니다.
그 후 정조 22년( 1798년)에 중수하고 고종 27년( 1890년)에 중수하였다고 기록이 있고, 고종 24년(1887년)에는 병마절도사(수군절도사 겸)홍재희(洪在羲)가 계룡갑사(雞龍甲寺)의 현판을 써서 강당 처마 밑에 걸었습니다
※ 갑사 강당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입니다.
▼ 갑사의 강당입니다만, 언뜻 보기에는 강당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문도 아니고, 이상하게 보이는데, 축대 위에 걸터앉은 모습이 마냥 좋게 보이지는 않고, 강당이 외롭고 불편하게 보입니다. 강당이 이렇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 [자료:한민족 대백과] 1980년대의 사진으로 보면, 갑사가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해탈문과 동종각이 붙어 있었으며, 강당이 진해당과 적묵당 사이에 바싹 붙어 있었고 대웅전 앞마당이 매우 좁았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현재의 갑사보다는 예전의 절집 모습이 훨씬 더 보기 좋았습니다.
▼ [자료:한민족대백과] 강당을 기준으로 보면 좌측의 진해당과 우측의 적묵당이 일직선으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대웅전 앞이 너무 좁아서 해탈문을 없애고 그 자리에 강당을 옮긴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냥 이대로 두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옛 모습이 거의 없어진 상태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 준비를 한다니 좀 씁쓸합니다.
▼ [자료:공주학 아카이브] 그러면 지금은 없어져 버린 갑사의 해탈문을 보겠습니다. 높은 솟을대문에 양옆으로 회랑이 보이는데, 왜 해탈문을 왜 없앴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원래 갑사에는 해탈문을 통해서 드나들었으며, 일주문이나 천왕문은 처음부터 없었으며, 해탈문을 없애고, 강당도 옮기면서 일주문과 천왕문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공공누리] 1957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갑사를 방문하였을 때의 해탈문의 모습입니다. 해탈문 너머로 강당이 보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모친께서 불교신자로서 파주 용미리에 있는 마애이불입상으로 유명한 용암사에서 기도하여 이승만 전 대통령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금란방(禁亂榜)이라고 써서 걸어 놓았는데, 정신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나,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문에 금줄을 걸고 외부인 통제하는데 쓰는 글씨라고 하며 보통 개금불사(부처님 불신에 새로 금을 입히는 행사)에 쓴다고 합니다
▼ [자료:공공누리] 1963년에 갑사를 방문한 주한 미국 버커 대사가 해탈문 앞에서 있는 모습입니다.
▼ [자료:공주학 아카이브] 1980년대의 강당을 보면 지금과는 너무 다릅니다. 해탈문에 들어서면 곧바로 강당이었으며, 자료에서 보면 정문이었다고 하는데, 가운데 문을 통해서 드나들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강당 전체가 공부방이었기 때문에 문턱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대웅전 앞에 강당을 두는 절집은 드물기는 하지만 홍전 수타사의 흥회루가 있습니다
▼ 보통 절집에서는 공부방을 따로 두기는 하지만 큰 스님이 설법을 위한 강당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는데, 대웅전앞에 강당을 두는 절집은 갑사 외에도 강원도 홍천의 수타사 흥회루도 있습니다
▼ [자료:한민족 대백과]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1980년대의 강당의 모습입니다.
▼ 갑사 강당의 공포는 특이한 모양으로 아름다웠습니다.
▼ [자료:공주학 아카이브]언제부터인가 강당의 창문이 없어지고 문짝이 달려 있습니다
▼ 강당 현판을 보면 끝에 丁亥菊秋節度使洪在羲(정해국추 절도사 홍재희)라고 쓰여 있는데, 정해년이면 고종 24년 (1887년)이며, 정해년 가을에 충청도 지방의 병마절도사 홍재희가 쓴 글씨입니다.
글씨를 자세히 보면 계룡갑사(雞龍甲寺)로 쓰여 있는데, 앞 글씨가 계(鷄)가 아닌 계(雞)로 쓰여 있는 것이 보이는데, 혼용된다고 하며 뜻은 같습니다.
▼ 1980년대의 개산대제 때의 강당의 모습입니다 강당이 처음에는 정문으로 지어졌지만, 갑사의 필요에 의해서 정문이 강당으로 용도변경이 된 것입니다.
▼ 해탈문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강당을 옮긴 후의 모습이며, 강당 왼쪽에 갑사 동종각이 보입니다. 강당을 옮긴 후에 얻은 것은 대웅전 앞의 넓은 마당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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