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의 강당 앞의 오래된 느티나무 옆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동종이 있습니다. 다른 문화재 명칭은 갑사 만력십일년명 범종 (甲寺 萬曆十一年銘 梵鍾)이며, 조선 초기의 종으로 임진왜란 8년 전인 선조 17년(1584)에 국왕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며, 갑사에 봉안하기 위하여 만들어졌습니다

 

한편 이 종은 일제강점기 때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공출해 갔다가, 인천에서 반출 대기 중이던 것을 광복 후에 찾아 다시 갑사로 옮겨온 종으로 민족과 수난을 같이 한 동종(銅鐘)이었습니다.

 

범종은 온 세상에 종소리를 울려 중생들의 번뇌를 가시게 해 준다는 의미가 있으며, 지옥까지도 그 소리가 들린다고 합니다.


▼ 갑사는 추갑사(秋甲寺)라는 말이 있듯이 단풍이 아름다운 절집입니다. 느티나무 옆의 각(閣)에 갑사 동종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 갑사는 지금까지 두번 갔는데, 갈때 마다 보면 참 번잡합니다. 수 많은 승용차들이 여기 저기 있고, 대웅전앞에까지 주차되어 있어서, 조용한 절집은 아닙니다.

 

부도군 아래에 넓은 주차장도 있는데, 굳이 불전앞까지 주차를 해야 하나?,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마곡사가 단풍도 좋고, 조용하고 가을의 정치도 좋습니다.

 

▼ 갑사 동종의 종각인데 사방이 막힌 구조여서 내부의 동종을 보기가 매우 어렵고, 사진을 찍기에도 매우 불편합니다. 차라리 사방을 열어 놓고 관리를 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람이 통해야 먼지도 덜 묻고, 일반인들도 보물인 문화재에 더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 [자료사진:공주학아카이브] 자료사진은 1980년대의 사진이며, 지금의 강당옆에 있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 지대가 낮은 지금의 자리에 옮겨왔으며,  처마밑에 현판이 달려 있었는데 무슨 글씨인지 잘 안 보입니다.

 

▼ 안내문에서 보면 1583년에 북방 오랑캐가 난을 일으켜서 한성 이남지방 사찰의 종을 모두 모아서 무기로 만들었다는 내용은 인조 16년(1583년) 1월에서 7월까지 함경도 북부지방에 여진족 이탕개가 침입한 전쟁입니다. 그 후 1년 후에 다시 종을 만들어 갑사에 걸었습니다.

 

▼ 전체적으로 먼지가 뽀얗게 앉아서 동종의 세부적인 문양은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동종의 크기는 높이 131㎝, 입지름 91㎝로 전체적으로 어깨부터 중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종 꼭대기에는 음통이 없고, 용뉴는 2마리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 [자료:진천종박물관] 먼저 한국 동종의 구조를 알기 쉽게 그려 놓은 자료 그림을 보겠습니다. 범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 [자료사진]  갑사 동종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겠습니다. 보물치고는 너무 먼지에 노출되어 있어서 푸대접받는 느낌을 받습니다.

 

▼ 상부의 용뉴를 보면 다른 고려의 동종과 다르게 용이 두 마리이고, 음통은 없습니다. 상부에는 연꽃문양이 그 아래에는 범어가 둘러져 있으며, 방형(사각형)으로 당초문양을 새겼고 그 안에 연화문(蓮花紋) 9개 두었고 그 속에 돌기 된 유두가 박혀 있습니다.

 

[자료:국립문화재연구원]  동종의 표면을 탁본한 자료인데 당좌를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 만(卍) 자가 있고 둘레에는 문자가 들어 있습니다만, 4개의 당좌의 문양은 두 가지로 보입니다.

 

▼ 동종의 종신(몸통)의 당좌와 당좌 사이에는 구름 위에 석장(錫杖)을 잡고 서 있는 지장보살이 있습니다. 보통은 종신에 비천상을 새기는데, 지장보살을 새진 동종은 흔하지 않습니다. 

 

▼ 당좌의 문양 앞, 뒤로 글자가 보이는데 동철대시주(銅鐵大施主)와 포시대시주(布施大施主)로 보입니다. 아마도 동종을 만드는데, 크게 시주하신 분의 이름인 듯합니다.

 

▼ 다음은 갑사 동종의 글씨를 내용을 불교신문(최응천 교수)이 해석한 내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연곽과 보살입상 사이의 한쪽 여백면에는 ‘시유만력십일년칠월위시북도이적○난대기인이독절하삼도사찰대종진취납(時維萬曆十一年七月爲始北道夷狄○亂大起因以獨折下三道寺刹大鐘盡取納) 국병기화포주포의시이○무인개탄왈불소대찰사조모위(國兵器火砲鑄鋪矣是以○無人皆嘆曰不小大刹寺朝暮爲) 주상축수처특유무안즉권갑신하사월일공산동계룡산갑사대종신주성철팔(主上祝壽處特有無顔卽勸甲申夏巳月日公山東鷄龍山岬寺大鐘新鑄成鐵八) 천근만세류전(千斤萬世流傳) 동철대시주(銅大施主) 시유만력십일년칠월---(時維萬曆十一年七月---)’이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조선 선조(宣祖) 16년(1583년)에 북도(北道)의 오랑캐가 난을 일으켜서 하삼도(下三道) 각 절의 종을 모아 우리나라 군사들의 무기를 만들었는데, 이곳 갑사는 국왕의 성수(聖壽)를 비는 곳인 까닭에 다음 해인 갑신년(甲申年, 1584년) 여름에 동철 1000근을 들여 새로이 대종(大鐘)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각 연곽의 좌우 하단부에는 장방형의 구획을 만들어 각 분야별의 시주자 명단을 양각시켜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시주자 명단을 음각으로 빽빽이 기록한 점을 볼 수 있다. 이는 종을 제작할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제작할 때 매우 많은 시주자가 동원된 조성 배경을 살펴볼 수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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