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의 앞뒤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는데, 갑사구곡(甲寺九曲)이라고 하며, 구곡 중심부인 6곡 근처에는 절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생활집도 아닌 건물이 있는데, 바로 악질친일민족반역자 윤덕영의 별장이었던 간성장(艮成莊)입니다.

윤덕영의 간성장과 그가 만든 갑사구곡을 알아보겠습니다.

 

※ 여기에 인용된 사진자료는 갑사홈페이지, 오마이뉴스, 위키백과등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갑사의 대적전 근처의 계곡에 윤덕영의 별장이었던 간성장이 보입니다. 보통은 그냥 지나치기가 쉬운데, 나라와 민족을 일본에 팔아먹고, 대부호가 되었던 윤덕영에 대해서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 갑사에서 간성장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입니다. 대적전과 공우탑사이의 계곡에 있습니다.

 

▼ 대전적에서 대적교를 건너기전에 암벽에 새겨진 금계암(金鷄巖)이 보이는데, 친일민족반역자 윤덕형이 갑사계곡에 만든 아홉개의 구곡중 6번째입니다

 

▼ 공주갑사에서 갑자기 친일민족반역자 윤덕영의 별장이었던 간성장을 꺼내게 되었는가는 윤덕형의 친일민족반역의 행위가 이완용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조금도 그 죄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 사진자료는 간성장의 봄,여름,가을,겨울의 모습이며, 갑사의 홈페이지, 오마이뉴스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간성장은 당시 공주 갑부 홍원표가 갑사로 부터 30년 임대계약으로 계곡옆 대지 위에 지어 윤덕영에게 바친 한옥식 별장입니다. 간성장은 윤덕영이 애용하다가 해방후에는 공주 출신의 국회의원을 지낸 박충식(1903~66)의 별장으로 사용했으며, 그 후 한동안 전통찻집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외부 손님이 묵는 갑사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 계룡산에는 동쪽으로 용산구곡(1327년) 서쪽으로 갑사구곡(1927년) 있는데, 용산구곡은 취음 권중면선생께서 국권회복을 바라며 만든 구곡이며, 갑사구곡은 친일민족반역자 윤덕영이 갑사계곡에 취해서 개인적으로 만든 구곡입니다

 

▼ 갑사구곡의 암벽에 새겨진 글을 보고 풀어낸 뜻을 보겠습니다

제1곡 용유소 : 용이 노니는 소(沼)
제2곡 이일천 : 수정봉과 연천봉 발원, 계곡물의 합수지점
제3곡 백룡강 : 여름 우기에 물보라가 마치 흰 이 꿈틀대는 곳과 같은 곳
제4곡 달문택 : 연못으로 배를 띄워놓고 퓽류를 즐긴 곳
제5곡 금계암 : 금계포란(金鷄抱卵)또는 천조(天鳥)인 닭의 새벽알림
제6곡 명월담 : 달 밝은 밤 잔잔한 물위에 비치는 달빛이 마치 하늘이 물속에 있는 듯한 절경
제7곡 계명암 : 계룡산이 처음 열릴 때 산 속에서 닭이 날개짓을 하며 울었다는 바위
제8곡 용문폭 : 자연폭포로 약10m정도의 낙수광경이 절경인 폭포
제9곡 수정봉 : 산봉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한 백색을 띈 암석으로 피라미드형의 바위산

 

▼ 윤덕영(1873~1940)이 1927년에 설정한 갑사구곡은 노년에 갑사 앞 계곡 가에 지은 간성장(艮成莊)이라는 별장에 머물며 이곳을 중심으로 계곡을 따라 경치가 좋은 아홉 군데를 골라 9곡을 설정하고 곡마다 그 이름을 바위에 새겼습니다.
또한 구곡 명칭뿐만 아니라 계곡 곳곳에 주역 관련 글귀 등 다양한 글을 새겨놓았습니다. 

 

▼ [사진자료:나무위키] 윤덕영은 대한제국 순종황제비의 삼촌(큰아버지)으로 순종효황후로 부터 옥새를 빼앗아서 전권위임장에 찍고 이완용에게 건네 1910년 한일합병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인물입니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은사금 5만원과 자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윤덕영은 순종의 장인이었던 윤택영의 형입니다.

 

▼ 윤덕영은 경술국적 8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 용감한 형제는 나란히 친일대열에 참여하여 큰 부자가 되었으나, 그리 오래 살지도 못하였으며, 순종의 장인 윤택영은 과도한 아부와 무절제한 빛을 즐겨 쓰다가 파산하여 중국으로 도망갔다가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 친일민족반역자 윤덕영, 모친, 윤택영의 가족사진


▼ 윤택영(윤덕영의 동생)의 딸인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는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 일주일전 창덕궁에서 열린 마지막 어전회의에서 진행됐던 한일합병 조약때 옥새를 치마속에 숨겨 도망쳤는데, 이걸 강제로 빼앗은 장본인이 바로 그녀의 큰아버지 윤덕영 이었습니다.

 

순정효왕후는 친일에 문이 멀어서 앞 다투어 나라를 팔아먹던 왕족들과 아버지, 큰아버지와는 달랐습니다. 순종과 찍은 사진, 그리고 시기별로 사진을 모아 보았습니다.

 

▼ 이완용 만큼이나 친일행위로 막대한 재산을 치부한 사람들은 이완용도 있지만 명성황후의 조카 민영휘와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 윤덕영 뿐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동안 가장 재산이 많은 조선인은 윤덕영이었고, 그 다음으로 이완용이라고 하는데, 이완용이 30억을 받았을 때, 윤덕영은 100억을 받고 이완용이 가진 땅의 4배나 되는 축구장 8배 면적의 19,467평을 받았습니다

 

일본에 붙어서 백성들의 피를 빨고 친일활동을 열심히 해서 궁궐보다 더 넓은 집을 가졌고, 이완용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친일짱인 윤덕영은 친일로 떼 부자가 되서 떵떵거렸지만, 욕은 이완용이 다 쳐먹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또한 윤덕영의 처(김복수)는 일제의 전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친일 여성 단체인 '애국금차회(愛國金釵會)' 회장을 맡아 금비녀 헌납 운동에 앞장을 섰는데 남편과 같이 친일에 밤,낮이 없었습니다

- 윤덕영이 나라 팔아서 지은 유럽의 궁전같은 벽수산장과 그 아래의 조선인 민가들. 그리고벽수산장에서의 윤덕영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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