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성 오산리석불입상을 보러 화성시의 동탄복합문화센터의 중앙부를 통해서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상아 한쪽이 잘린 커다란 코끼리의 머리 부분의 조형미술이 눈길을 끕니다. 석불입상은 왼쪽 건물 끝에서 보이며, 야외음악당 옆에 있습니다
▼ 화성 오산시석불입상은 임시로 보관하고 있어서 인지 가림막이 불편해 보입니다. 동탄신도시개발로 타향살이를 하는 미륵불은 이제 고향으로 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 이 석불입상은 원래 화성시의 동탄면사무소 근처에 있었는데, 동탄지구개발사업후에 동탄복합문화센터의 뒤쪽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으며, 석불입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면 미륵불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미륵불이 조성된 시대는 고려말에서 조선초로 보고 있습니다.
▼ 이 미륵불은 동탄면 오산리의 (구)오산원터(구 통탄면사무소)의 길옆에 있었는데, 오가는 길손들의 안녕을 빌어주던 친근한 민속신앙의 대상과 동시에 이정표의 역할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 동네 어귀에서 길손들의 다정한 미륵불은 이제 갈곳을 잃어 가끔 절집에서 보는 경우도 다수 보이는데, 참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미륵불은 주민들의 친근한 벗으로서 오랜 세월을 민가 근처에서 보존되었으나, 개발에 밀려 이제는 절집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미륵불 앞에는 향로를 놓던 평평한 돌은 보통 배례석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명칭은 봉로대(奉爐臺)라고 합니다
▼ [자료] 동탄이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의 사진을 보면 보개가 없을 때의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대체로 훼손상태가 덜한 모습입니다.
동탄오산리석불은 신도시 개발중에 아무렇게나 굴린것이 틀림없습니다. 자세히 보면 목 부위가 절단된 흔적도 안 보이고, 코와 입술이 마모되거나, 깨진 흔적도 안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존처리한 석불이 원래의 석불보다 마모가 더 심할리가 없습니다.
▼ 머리에 얹은 보개는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럽게 생겼는데, 원래의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다른 돌을 다듬어서 얹은 모양처럼 보입니다.
▼ 귀가 상당히 강조되어 표현하였습니다
▼ 미륵불 뒷면을 보면 구멍이 보이는데, 공양물을 넣고, 진흙을 발라 봉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의 석불의 뒤에 광배가 있으면, 광배를 불신에 고정시키기 위해 고정 홈을 만든것을 보기는 합니다
▼ 미륵불의 얼굴 부분을 자세하게 보면 이마 중앙에 백호가 뚜럿하게 보입니다. 얼굴 부분에 부분적으로 눈과 볼에 변색현상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았을 때는 마치 시멘트로 보수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얼굴 모양이 상태가 많이 좋지 않은데, 동탄신도시 개발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된 듯합니다
▼ 미륵불의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는 보개(寶蓋)라고 하는데, 두텁기는 하지만, 매우 정교하게 맟추어서 씌었습니다. 원래는 모개가 없었거나, 아니면 보존과정에서 보개를 씌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봐도 보개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옷자락은 부처님의 가사(袈裟)모양이 아닌 마치 문인석의 옷차림을 하고 있습니다.
※ 삼도[(三道)는 불상의 목에 세줄의 선을 말하는데,
- 혹도(惑道) : 이치와 생각에 의한 괴로움이며, 번뇌도(煩惱道)라고도 합니다
- 업도(業道) : 전생(前生)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말합니다
- 고도(苦道) : 그릇된 행위와 말과 생각으로 받는 괴로움입니다
▼ 손에는 무엇인가를 들고 있는데, 약함으로 볼 수도 있는데, 연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약함을 들고 있으면 약사불인데, 전체적인 모양은 미륵불을 닮았습니다. 약함을 들고 있는 미륵불은 조선시대의 특징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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