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심정(洗心亭)은 전국에 많이 있는 이름의 정자입니다만, 경기 양평의 세심정은 용문면의 덕촌 2리에 있는 아주 작고 소박한 정자입니다. 세심정(洗心亭)은 중종, 명종 때의 학자이자, 조광조(趙光祖)와 김식(金湜)의 수제자였던 조욱(趙昱, 1498~1557;용문선생)이 기묘사화를 피해 은거하며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쓰던 집을 세심당(洗心堂), 그가 머물던 마을을 둔촌(遯村)이라고 한 것이 기원이 되었습니다
용문선생(조욱)은 이후 잠시 관직생활을 하다가 명종 10년(1555)에 은퇴하여, 다시 둔촌의 옛 집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쓰다가 60세(1557)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세심정(洗心亭)의 일반자료는 양평문화원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옆에는 냇물이 흐르고 약간 높은 언덕에 아담하고 단청도 없이 소박하게 지어진 세심당입니다.
세심정은 조욱선생이 명종원년(1547)에 정자를 건립하여 세심정이라 하였다는 설과, 조욱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 후학들이 지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 용문선생(조욱)
1498년 8월 21일 정주 판관 수함의 二男으로 출생. 조선 전기의 학자. 문신으로 자(子)는 경양(景陽) 호(號)는 용문(龍門) 본관은 평양(平壤)이다. 조광조 선생의 수제자로서 1519년 때 나이가 어리다(21세)고 하여 화를 모면하고 용문에 은거하였다가 준원전 참봉과 영승참봉을 지낸 뒤에 용문산 토치미(퇴촌)에 낙향하여 세심정을 건립.시문(詩文) 서화(書畵)에 능함.서기 1557(명종 12년) 12월 10일 향년 60세에 별세하니 서기 1558년 2월에 이곳(용문)에 장사지냈음._양평문화원자료
▼ 양평의 세심정의 주소는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덕촌길211번길 4"이며, 차를 이용 할때는 네비에서 "덕촌2리 게이트볼장"을 찾으시면 됩니다
▼ 조선의 정자앞에는 보통 연못을 방형으로 파고 연못 가운데에 섬을 만들었는데, 중국에서 전래된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으로 하늘은 둥굴고, 땅은 모나다라는 사상으로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하지만 천원지방을 해석하는 입장이 바뀌게 된것은 중국에 서양문물이 들어 오고 또한 지구설을 처음으로 전한 선교사 마테오 리치(Matteo Ricci)는 천원지방설에 대해서 "굳건히 회전하는 하늘의 덕, 가운데에 고요히 정지한 땅의 덕을 표현하는 말" 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조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 그림은 카카오 로드뷰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정자로 올라가는 계단길은 소리계단으로 운치가 느껴집니다
▼ 자료에서 보면 용문선생의 출생지는 미상이며, 다만 어머니를 용문산 자락에 묻고, 3년상을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용문에 마음을 두고 나중에 정착하게 된것으로 보입니다.
조욱(趙昱)선생의 본관은 평양(平壤), 자(子)는 경양(景陽), 호(號)는 용문(龍門), 보진재(葆眞齋), 우암(愚菴), 세심당(洗心堂)등으로 불리었다는데, 보통은 용문(龍門)선생으로 불리었다고합니다.
▼ 용문선생은 시문과 서화에 능하였으며, 저서로는 1779년(정조 3), 7대손 조시간(趙時簡) 등이 시와, 강론과 시등을 편집한 용문집(龍門集:10권중 6권 남음)과 둔촌록(遁村錄)을 간행하여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 길옆에 깨진 기와조각(와편)이 보이는데 명문처럼 무늬가 보입니다. 혹시 중요한건가?
▼ 세심정을 전서체로 쓴 글씨이며 도대체 무슨 글씨인지 모르게 써 있지만 아름답게 보입니다. 한자라는것이 그림글자이다 보니, 얼마든지 꾸며서 쓸수 있는 글씨체는 많았습니다.
▼ 세심정은 보통 흔히 보는 4각형의 구조가 아닌 6각원당형정자입니다. 각 면마다 중수기, 시편의 편액들이 가득합니다.
▼ 세심정 편액의 글씨는 모두 상산 신재석(常山 申載錫)선생의 글씨입니다.
▼ 현재 이 세심정은 1985년 양평군에서 원형 그대로 복원한 것입니다
▼ 조금 비좁게 보여지기는 해도 서너명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당하게 보입니다.
▼ 정자에서 내려다 보는 연못입니다
▼ 운계서원(雲溪書院)은 조욱(趙昱)선생과 후손들을 배향한 사당입니다.
운계서원은 그의 제자들이 1654년에 세웠다고 하며, 1714년(숙종40년) ‘용문서원(龍門書院)’으로 사액(賜額)이 되었다. 이후 기록인 <운계서원지(雲溪書院誌)> 에 의하면, “1838년(헌종4년)에 임금이 용문사(龍門寺)에 행차했다가, 용문서원이 사찰 이름과 같다고 하여 ‘운계서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서원은 고종의 서원철폐(書院撤廢)령으로 없어졌다가, 이후 여러 차례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후 1932년에 조욱의 후손과 유림들이 서원을 복원하였다_경기문화재단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세심정에서 북쪽으로 약 1km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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