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구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헌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5남 태종 이방원과 원비 원경왕후 민씨의 능입니다. 헌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의 능으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이고,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이며, 최고의 치장을 한 능입니다.
<<< 자료는 문화재청 조선왕릉과 조선왕릉 디지털백과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 서울 헌릉은 원경왕후 민씨가 먼저 승하하여 이곳에 터를 잡고, 2년후 태종이 승하하여 쌍릉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능의 구성
헌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다. 헌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의 형식으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의 능으로 조선시대 쌍릉의 대표적인 능제이다.
전체적으로 넓은 능역과 확트인 전경, 정자각 중심의 제향공간과 능침공간 사이의 높이 차이 등 조선 전기의 왕릉의 위엄성을 잘 드러내주는 요소를 갖추고 있다.
능침은 모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으며, 병풍석의 면석에는 십이지신상과 영저와 영탁을 새겼다. 문무석인은 각 2쌍씩, 석마, 석양, 석호는 각각 4쌍식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玄·正陵)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조선왕릉 중에서 2배로 석물이 많아 완벽한 쌍릉의 형식을 띄고 있다. 그 밖에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은 5개로 조선 전기의 상설제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진입 및 제향공간에는 홍살문, 향로, 정자각, 신도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각에는 1422년(세종 4)에 세운 신도비(보물 제1804호)와 1695년(숙종 21)에 임진왜란으로 손상된 신도비 옆에 증설하여 세운 신도비가 있다. 정자각 북서측에는 소전대가 있는데, 이는 제향 후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조선 전기 태조고황제의 건원릉, 신덕고황후의 정릉, 태종의 헌릉에서만 볼 수 있는 석물이다
- 능의 역사
1420년(세종 2)에 태종의 왕비 원경왕후가 왕대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광주 대모산에 먼저 능을 조성하였다. 원경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태종은 자신의 능자리를 미리 만들었다. 이후 1422년(세종 4)에 태종이 태상왕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능을 조성하였다.
- 원경왕후(元敬王后) 이야기
원경왕후 민씨(재세 : 1365년 음력 7월 11일 ~ 1420년 음력 7월 10일)는 본관이 여흥인 여흥부원군 민제와 삼한국대부인 송씨의 딸로 1365년(고려 공민왕 14)에 송경 철동 사저에서 태어났다. 1382년(고려 우왕 8)에 태종과 혼인하고, 조선 개국 후 정녕옹주(靖寧翁主)에 책봉되었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태종이 정도전 등의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득세할 수 있었던 데에는 원경왕후의 도움이 컸다. 난이 일어나기 열흘 전, 정도전 일파는 왕자들이 거느리고 있던 사병을 혁파하였다. 이 때 사병을 거느린 왕자들은 병사뿐만 아니라 지니고 있던 무기와 군장비를 모두 내놓았어야 했다. 그러나 원경왕후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얼마간의 사병과 무기를 친정집에 숨겨두었다.
1398년 음력 8월 26일, 당시 태조의 병환이 깊어 왕자들은 근정전 문 밖 서쪽 행랑에 모여 숙직을 하고 있었다. 원경왕후는 집사를 보내 자신이 갑자기 복통이 심하다는 핑계를 들어 태종을 불러내었다. 그 후 태종은 집에 와서 갑옷을 입고 난을 준비하였고, 원경왕후는 친동생인 민무구, 민무질 형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숨겨둔 사병과 무기를 풀어 태종에게 내주었다. 이로 인해 제1차 왕자의 난은 성공하였고, 태종은 왕위 계승을 위한 수순을 한 차례 밟게 되었다.
이후 원경왕후는 1400년(정종 2)에 정종의 양위를 받아 태종이 즉위하자 왕비(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태종 즉위 후 태종과의 불화가 그치지 않았다. 태종은 권력의 분산과 왕권 강화를 위하여 친족배척의 정책을 쓰는 한편 후궁을 늘려나갔는데, 원경왕후는 이에 크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특히 태종은 외척세력 견제를 위하여 원경왕후의 남동생인 민무구, 민무질, 민무휼, 민무회 형제를 제거하면서 원경왕후와의 불화가 극심해졌다. 1418년(태종 18)에 태종이 태상왕으로 물러나고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후덕왕대비가 되었으며, 1420년(세종 2)에 수강궁 별전에서 56세로 세상을 떠났다.
▼ 태종의 가계도입니다. 태종은 왕위 오르기 전이나, 왕위에 올라서도 그 무서운 정치적 이유로 처남은 물론 아들의 장인까지도 무참히 내쳤던 왕이었습니다.
▼ 헌릉은 지대가 많이 낮아 보입니다. 능침만 아니면, 11대 중종릉인 정릉과 비숫한 모습입니다.
▼ 헌릉에는 수라간이나, 수복방이 안보입니다.
▼ 헌릉에는 현재 향로만 보이고 어로는 멸실되었습니다. 아마도 오래전에 어려울때에 민간인들이 구들장으로 쓰려고 가져갔는데, 이후에 복원이 안된것으로 보입니다.
▼ 헌릉의 비각은 태조 건원릉의 비각과 크기가 비슷한데, 이유는 커다란 신도비가 두개가 있기 때문입니다.
▼ 약간 비스듬하게 보이는 헌릉의 능침이며, 왼쪽이 태종, 오른쪽이 원경왕후입니다.
▼ 정자각의 여러 사진들입니다.
▼ 헌릉의 동계는 능침의 주인인 태종 이방원의 명성답지 않게 너무 볼품이 없습니다. 운계(신계)나 어계는 간신히 2단으로 맟추었는데, 신계는 운계라는 말이 무색하게 구름문양도 새겨놓을 자리도 없이 모양만 흉내를 냈습니다.
▼ 정자각의 방풍널에는 고리와 도르래가 있는데, 차양막을 걸을때 쓴다고 합니다.
▼ 흔히 볼 수 있는 소전대 아닙니다.
▼ 예전에는 능의 왼쪽 소나무가 있는곳으로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능의 옆으로 올라가봐야 합니다. 신로는 정자각에서 좀 멀리까지 이어져 있습니다만, 다른 능은 대체로 신로가 짧습니다.
▼ 헌릉의 홍살문과 밖에 사유지와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원래의 왕릉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게 보입니다
▼ 비각을 언듯봐도 신도비의 크기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헌릉의 신도비가 두개가 된 이유를 적어 놓았습니다.
▼ 홍살문을 나와서 헌릉의 능침을 볼 수 있는 옆길로 이동합니다.
▼ 능침의 옆길로 가는길에 보이는 헌릉 안내판입니다.
▼ 능침의 왼쪽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만, 능의 크기가 대단 합니다.
▼ 병풍석과 난간석등을 사용해서 최고의 능을 만들었습니다.
▼ 태종의 봉분의 병풍석의 문양을 당겨 보았습니다.
▼ 헌릉의 위엄은 석물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우선 문석인과 무석인을 좌/우로 각각 2개씩 더 세웠는데, 태조 건원릉도 이렇게 많이 세우지는 않았습니다.
▼ 혼유석의 고석을 보통은 4개를 씁니다만, 혼유석의 고석도 5개 입니다.
▼ 태종의 릉을 따로 담아 보았습니다.
▼ 헌릉의 능침에 있는 석물들의 자세한 자료사진을 올려보았습니다.
- 망주석과 장명등입니다. 망주석은 좌우로 각각 하나씩 있지만, 장명등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혼유석 앞에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 대표적인 석마와 문석인,무석인를 골라 보았습니다.
- 석양들의 모습입니다만, 오랜세월에 많이 마모되었습니다.
- 석호의 모습들입니다. 능주인 태종 이방원은 무서운 왕으로 기억 되지만 릉을 지키는 호랑이는 얼굴이 재미난 모습입니다.
▼ 참고로 태종에게 명빈김씨라는 후궁이 있었는데, 묘가 남아 있어서 알아보았습니다. 명빈 김씨는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넘기고 있던중에 후궁으로 책봉되어 대기하던중, 태종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정식후궁도 되어 보지도 못하고, 1479년(성종10)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습니다.
3대 태종 후궁 명빈묘(明嬪墓)
- 위치 : 경기 구리시 아천동 333-3 (아천동 산 14)
- 묘의 형식 : 단분
- 묘의 조성 : 1479년(성종 10)
- 명빈묘의 구성
명빈묘는 조선 3대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의 묘소이다. 묘소는 호석과 곡장이 없고, 일반후궁묘제의 형식으로 봉분, 문석인, 상석, 향로석, 묘표석만 설치되어 있다.
- 명빈묘의 역사
1479년(성종 10)에 태종의 후궁 명빈 김씨가 졸하여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명빈 김씨 이야기
명빈 김씨(재세 : ? ~ 1479년)는 본관이 안동인 지돈녕부사 김구덕의 딸로 태어나, 1411년(태종 11)에 명빈(明嬪)에 봉작되었다. 1479년(성종 10)에 훙서하였다
▼ 자료사진으로 보는 명빈묘입니다 오랜세월 묘는 많이 무너졌습니다. 그래도 묘표라도 있으니, 무덤을 찾았지, 묘표가 없는 후궁의 묘는 상당수가 없어졌을것 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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