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대간26구간은 아름다운 조령의 산세와 맞은편의 신선봉의 아름다운 풍경이 많아서 1부, 2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신선암봉에서 바라보는 부봉능선의 모습입니다.

 

▼ 지도상에는 이화령에서 부터 조령까지의 거리가 10여km 정도로 짧은 거리지만 조령산에서 깃대봉 3거리까지의 바위능선길이 무척 험하여 상당히 위험하기도 하고 힘든 코스였으며 내 기록은 6시간 정도 걸렸다.(하나산악회 대간5기)

 

 

▼ 문경방향의 모습이며 계곡 가운데는 문경새재길이며 "태조왕건"을 촬영했던 세트장이 희미하게 보인다 

 

▼ 신선암봉의 정상에는 바람이 너무 심하여 곧바로 치마바위봉으로 진행

 

▼ 치마바위봉의 뒷면으로 신선봉과 마패봉의 능선이 조망되는데 아직도 갈길은 멀다.

 

▼ 조령 건너편의 신선봉과 백두대간의 마패봉이 자세히 보이는 청명한 날씨의 산행은 한결 마음이 가벼운 산행이 된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마패봉은 정말 박문수 어사가 마패를 걸어 놓았던 곳일까? 그 바뿐 업무중에 어사또가 왜 저 봉우리에 올랐을까?

 

▼ 치마바위봉으로 오르는중에 바라본 신선바위봉이며, 겨울철에 보는것이 더 아름다울것이다. 여름에는 수풀이 무성해지면 암봉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서 보는 재미가 좀 떨어질것이다.

 

▼ 조령산으로 부터 지나온 능선길이 보일듯 말듯 ,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인다.

 

▼ 다시 바라보는 부봉들

 

▼ 주흘산의 백두대간 능선은 부봉까지만 이어지다가 좌측으로 빠진다

 

▼ 커다란 바위와 그 옆의 바닥에 엎드린 바위는 마치 카멜레온 비슷하다.

 

▼ 바람이 한쪽으로만 불었나? 북쪽에는 가지가 아예 없다

 

▼ 치마바위봉을 지나니 더 멋진 바위와 소나무가 한폭의 동양화를 만들었다.

 

▼ 바위 모양이 무슨 동물의 머리모양 비슷한데, 아마도 말머리 비숫하게 보인다

 

▼ 주흘산을 정면에서 바라본다.

 

▼ 신선암봉에서 치마바위봉으로 오르는 길은 절벽지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수 없다

 

▼ 바위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또한 가까이 다아오는 부봉들의 모습은 더 아름답다.

 

▼ 얼굴모양의 바위

 

▼ 힘들게 내려가면 또 그만큼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암릉구간

 

▼ 좀더 시간을 내서 바위모습을 담아보고 싶지만 이정도에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 치마바위봉을 넘어서면서 바라보는 전경

 

▼ 멩~~~ 또 그 주흘산

 

▼ 더 가까이 다가온 신선봉(백두대간 능선은 아니다)

 

▼ 바위 투성길과 밧줄의 연속이다

 

▼ 새 부리 모양의 바위

 

▼ 넘어온 치마바위봉의 모습

 

▼ 암릉구간이 잠시 끝나고 눈길이 이어지는데 이길도 곧 암릉구간을 만나게 된다

 

▼ 월항삼봉(탄항산)이 보이고 부봉들의 모습은 더 잘 보이는데 다음에 언제 가볼수 있으려는지...

 

▼ 월악산 능선과 영봉의 모습이 더 크게 다가오니 더 빨리 가보고 싶구나...

 

▼ 중간쯤의 암봉이 깃대봉이지만 대간길이 아니라서 그냥 지나갔는데 나중에는 좀 후회가 많았다. 시간도 많이 있었는데...

 

▼ 앞에 크게 보이는 보이 부봉(6봉)이며 주흘산 전체가 잘 보인다

 

▼ 다음 구간이 월삼봉과 포암산 구간의 능선

 

▼ 지나온 백두대간의 능선을 바라보며 고단하고 힘들었던 산행길의 위안으로 삼는다

 

▼ 깃대봉 삼거리... 깃대봉에 다녀올걸 ...

 

▼ 조령관(제3관문)으로 가는 능선에는 조령산성의 흔적이 잘 보인다. 그런데 성벽이 북쪽을 방어하게 쌓여 있다. 그렇다 조령관은 영남에서 볼때 북쪽에서 침입할지도 모를 적을 방어하기 이해 쌓은성이다

 

▼ 겨울이라 그런지 물한방울 없다

 

▼ 조령의 마지막 관문인 조령관인데,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 조령관문은 새재 정상에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선조 때 쌓고 숙종 초(숙종 34년:1708)에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에 홍예문과 석성, 그리고 누각을 복원했다.

 

▼ 조령관에서 바라본 주흘산의 부봉들, 잘룩한 곳이 백두대간의 평전재이며 왼쪽으로 진행하면 탄항산이다

 

▼ 성벽을 쌓아올린 연대가 잘보이는 성곽돌, 예전에는 돌의 크기가 작었던 모양이다 원래 조령에는 조선시대 이전 부터 조령에는 관문과 산성이 있었는데 이 산성의 목적은 부쪽으로 부터 침입해 오는 적을 방어 방어 하기 위해서 축성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부터는 남쪽과 북쪽의 적을 방어 하기 위한 성으로 발전한것으로 보인다

 

▼ 영암에서 서울로 가는길은 추풀령과 괘방령, 문경새재등이 있었는데, 과거 보러 가는 양반들은 절대 추풍령으로 가지 않았고 영남, 호남 가리지 않고 대부분 문경새재를 이용해서 과거를 보러 다녔다 하는데, 추풍령은 추풍낙옆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피했고 괘방령은 주로 장사치들 다니는 고개였다고 한다.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 경계를 이루는 「조령관」은 비가 올 때 용마루에서 남쪽 기왓골을 타면 흘러서 낙동강으로 들어가 남해로 빠지고 북쪽 기왓골을 타면 한강으로 접어들어 서해로 유입된다.

 

▼ 장대한 조령비와 조령의 유래는 덧 붙인것이다.

 

▼ 자연 휴양림안에는 여러가지 휴식시설이 들어차 있는데 여름에는 무척 붐빌것으로 보인다.

 

▼ 박문수 어사가 과연 걸어다녔을까? 바뿐 일이 많으신 분이 말을 타고 다녔으면 몰라도...

 

▼ 고사리 주차장에서 바라본 신선봉, 괴산에는 좋은산들이 널렸다(괴산에는 35명산이 있다)

- 2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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