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천객사의 동쪽에는 군자정(君子亭)이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보통은 관아와 가까운 거리에 관아의 현감이 업무 휴식차 연못이나 정자를 짓기도 하였으니, 고려시대 면천관아에서 먼저 연못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시대에 군수가 연못을 파서 연꽃을 심고 군자지(君子池)라고 하였으나, 조선시대 1803년(조선 순조3)에 면천군수 유한재가 군자지(君子池)를 보수하면서 모래와 흙을 파내어 못 가운데 둥글게 섬을 만들고 그 위에 8각의 정자를 짓고 못에는 연꽃을 심었으며, 정자의 이름을 군자정이라고 하였습니다.
※ 정자를 8각정으로 지은 것은 역학의 8괘을 상징합니다.
이때 만든 돌다리가 지금도 남아 있어 정자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연못을 보면 대부분 네모난 모양(방형)의 연못에 가운데에는 둥그런 섬이 있는데, 이른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학설로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뜻으로, 지금은 이해가 안 되지만, 고대 중국의 천문설을 조선은 그대로 받아들여, 연못을 꾸밀 때는 항상 이를 따랐습니다.
지금의 군자정은 1988년에 연못을 준설하였고, 1994년에는 낡은 6모 정자를 헐고 8모 정자로 다시 지은 것입니다
※ 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서는 면천군자정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면천객사를 (免賤客死) , 면천복씨를 (免賤卜氏)로 소개하고 있는데, 한문이 심각하게 잘 못 표기되어 있습니다.(천한것을 면했다라는 뜻이고, 죽을 사(死)자 까지 , 아이고...)
한문으로 면천객사는 (沔川客舍)이며, 면천복씨는 (沔川卜氏)인데, 이거... 한문표기가 엄청 잘못되었는데, 참 어떻게 알려드려야 하나. 연락처는 알 수없고...면천복씨들 보면 난리 날텐데.. 복지겸장군 후손들의 본을 천한것을 면한 복씨라고 했으니... 이런글들은 최소한 학예사분들이 쓰시는데... 좀 그렇습니다
- 한문표기가 잘못된 디지탈당진문화대전 사이트(면천 군자정) : 담당자가 점검하시고 고칠것으로 봅니다만, 찾아보니 이런 오류들을 신고 하려면, 엄청 복잡하더라구요!...
요즘은 간편인증이 대세인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가입해서 신고하라는데,,,굳이 . . .
http://dangjin.grandculture.net/dangjin/toc/GC06400433
▼ 여기에서 소개할 면천군자정, 안샘, 골정지의 위치를 그림지도에 표시하였습니다
▼ 군자정으로 들어 가는 입구에는 3.1 운동 기념비와 우측에 면천군수들의 송덕비가 있습니다.
▼ 다른 군에서 보기 어려운 3.1 학생독립운동기념비가 면천군에는 장대하게 세어져 있는데, 이는 3.1 운동 당시 면천공립보통학교(면천초등학교)의 학생들이 주동하여 면천읍내에서 독립운동을 일으킨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 면천공립보통학교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신 세분의 사진과 이력입니다.
▼ 조선시대 면천군수들의 송덕비는 면천군의 위세에 비하면 너무 적습니다. 아마도 수십 개는 있었을 것입니다.
웬만한 큰 고을에는 관찰사, 현감, 군수등이 2~3년 정도 관아에서 임무를 마치고 이임을 할 때 보통 고을의 유지들이 송덕비를 마을 어귀에 세워 주고는 하는데, 가끔 재물을 밝히고, 지방유지들을 괴롭히는 군수들이 오면, 고을의 재력 있는 사람들이 미리 송덕비를 그럴싸하게 세워주고 괴롭힘을 피해 갔다는 우수개소리도 있습니다.
내포지역에서 면천군의 영향력은 무시못할 정도였는데, 일제강점기때 당진군과 합쳐지면서 발전을 하지 못하였습니다만,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고, 항일정신을 이어받고 있는 곳으로써 앞으로 면천읍성을 기반으로 많은 발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 멋진 정자, 군자정(君子亭)입니다.
▼ 조선 순조 3년에 세워진 좁은 돌다리를 약간 아찔하게 건너는 재미도 있습니다.
▼ 군자정으로 건너가는 돌다리는 자연석 네 개로 조성돼 있는데, 군자정과 군자지가 세월의 흐름속에 수차에 걸쳐 중수를 거친 것에 반해, 군자정 돌다리는 1803년(조선 순조 3)에 축조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아주 귀중한 옛 돌다리로서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입니다.
▼ 군자정 앞에는 큰 낭관호(郎官湖)라는 그씨가 새겨 있고, 옆에는 작은 글씨로 이백이 지었다는 글이 있는데, 낭관호는 중국 후베이성에 있는 호수 이름으로 이백이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후베이성에 있는 낭관호의 글씨를 모방한듯 합니다. 이백이 면천에 와서 글씨를 써주고 갔을리는 없을테니까요!
▼ 군자정의 글씨는 좀 바랬는데, 글씨는 조병호라는 분이 쓰셨는데, 누구신지.. 현판의 나무판이 두 개로 나뉘어 있는데, 왼쪽에 기해하오(己亥夏五), 趙炳鎬(조병호)라는 분이 글씨를 썼는데, 기해년 여름 5월이 어느 해인지...
기해년을 찾아보니, 1839년, 1899년, 1959년, 2019년인데, 자료에서 보면 1959년에 면천 복씨(沔川 卜氏) 종친회장 복진구가 주춧돌보다 규모가 작은 육각정으로로 다시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지금의 현판은 1959년 여름 5월에 쓰고,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군자정의 현판 글씨를 쓰신 분을 추정해 보면 청양출신의 한학자이며, 서예가이고 호는 정향(靜香)인,조병호(趙柄鎬, 1914 ~ 2005) 선생으로 추정합니다.
정향 조병호 선생은 신영복교수가 대전교도소에 있을 때 서예를 가르쳤는데, 신영복 교수는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을 쓰신 분입니다.
▼ 군자정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내부에는 군자정기, 시편등이 걸려 있습니다.
▼ 군자정에서 북쪽으로 멀리 안샘이 있습니다.
▼ 군자정의 뒤에서 나오는 다리는 최근에 놓은 것입니다.
▼ 나무 다리가 나름대로 운치가 있습니다.
▼ 군자정, 안샘이 있는 넓은 지역은 영랑효공원입니다.
영낭(令娘)은 복지겸의 딸로서, 아버지 복지겸이 앓아누워 있을 때 안샘의 물로 백일주를 담가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으므로 효녀의 뜻을 기려서 영랑효공원이라고 한듯합니다.
▼ 군자정 연못으로 흘러드는 물은 안샘에서 시작합니다.
▼ 그냥 공원처럼 들러보면 참 좋은 곳입니다.
▼ 고려개국공신 복지겸장군의 설화가 있는 안샘이며, 꽃샘으로도 불립니다.
▼ 복지겸의 딸, 영낭(令娘)이 아버지 복지겸이 앓아누워 있을 때 안샘의 물로 백일주를 담가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있는 샘입니다.
▼ 안샘의 물은 양이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게 적당히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귀중한 식수였을 것입니다
면천읍성 군자정에서 동쪽으로 5분정도 가보면, 작은 저수지가 있고, 저수지에는 연꽃이 가득한데, 골정지(骨井池)라는 곳입니다
골정지(또는 골정제)는 1797년부터 1800년까지 면천군수로 재임했던 연암 박지원이 면천향교로 들어 가는 옆길에 버려진 연못을 고치고 흙을 파내어 농경지에 물을 대도록 하였으며, 연못 중앙에는 초가정자를 지어 건곤일초정(乾坤一草亭)이라고 하였습니다.
▼ [자료:당진플러그인] 건곤일초정의 현판은 하늘과 땅사이에 있는 하나의 정자라는 뜻이고, 그 아래 작은 글씨는 忠國孝親(충국효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골정지에는 연꽃이 가득한데, 골정지의 둘레는 약 320미터이며, 수심은 약 3미터 정도 입니다
▼ 골정지의 연꽃은 다른 연못의 연꽃보다는 무척 큽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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