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청동기(고조선) 시대의 귀중한 유물이며, 청동기시대에서 고대인들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아보았습니다

 

농경문청동기(農耕文靑銅器)는 1970년 대전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아쉽게도 전체가 아닌 일부(상부)만 남아 있습니다. 그 당시의 생활도구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청동거울과 마찬가지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었던 의식용(儀式用) 도구로 여겨집니다.

 

이 농경문청동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청동검 문화가 발전하였던 기원전 4세기 ~ 5세기로 보고 있습니다

 

크기는 남은 높이 7.3㎝, 너비 12.8㎝, 두께 1.5㎜이며, 상부의 네모난 구멍에 끈을 걸어서 사람의 몸에 걸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자료사진(그림)은 우리역사넷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농경문화가 아주 상세하게 잘 나타나 있는데, 왼쪽에는 곡식을 항아리에 담는 모습이, 오른쪽에는 맨몸으로 양날따비로 밭을 일구는 모습, 오른쪽 아래에는 곡괭이로 땅을 파는 모습이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농경사회로 틀이 잡혀있는 시기로 볼 수 있습니다.

 

▼ 자료사진과 그림으로 농경문청동기에 새겨진 모습을 자세하게 보면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모두 농사와 관련된 행동이 새겨져 있습니다.

 

▼ 벌거벗고 일하는 남성이 사용하는 농기구는 따비라고 하며, 주로 돌이 많은 산간지방에서 밭을 일구던 농기구로써, 20세기에도 사용하던 유용한 농기구였습니다


▼ 문고리 장식이 있는 면에는 나뭇가지에 새가 앉아 있는 모습만 남아 있는데, 아무래도 샤먼신앙과 관계가 있는 새의 모양으로 보입니다.

새는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깊은데, 청동기시대 이전부터 인간이 신앙에 의지하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자료사진] 농경문청동기에 새겨진 새는 솟대로 보는 의견이 대부분인데, 솟대는 성역이나, 마을의 경계로 사용하였으므로, 청동기시대부터 새를 신성시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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