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태돈대는 병자호란 43년후,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어영군(御營軍) 2,000여 명과 경기·충청·전라 3도 승군(僧軍) 8,000여 명을 동원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중 하나입니다.
창후리 선착장 서북쪽 해안으로 돌출한 언덕 위에 직사각형으로 길게 자리잡고 있는 무태돈대는 인화돈대,광암돈대,귀등곶돈대,작성돈대와 함께 강화의 7보(堡) 5진(鎭) 중 하나인 인화보(寅火堡)의 관리하에 감시소와 방어진지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남쪽으로 3,418m 거리에 망월돈대가 있고 북쪽으로 2,313m 거리에 인화돈대가 있습니다.
▼ 창후리 선착장에 주차를 하고 5분 거리에 있는 무태돈대를 찾아갑니다. 위치적으로 해안에 가까이 있고, 길옆에 있어서 찾기가 쉬우며, 돈대의 상태는 대체로 양호 합니다.
▼ 강화도의 서북쪽을 수비하는 인화보 소속의 돈대 5개를 표시한 지도 입니다.
▼ 강화도 전체의 돈대위치도를 보면 강화해협과 조강을 바라보는 지역에 돈대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배가 한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중요성을 감안해서 돈대가 많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 돈대의 문은 원래의 것으로 보이고, 나머지 면석은 보수하면서 쌓은 돌로 보입니다. 대체로 민가주변의 돈대나 성곽의 돌은 나라가 한창 어려웠을때 인근 주민들이 많이 빼가서 집을 수리하는데, 사용해서 그런지 성돌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에서야 문화재를 복원하려니, 원형을 찾을 수 가 없거나, 성돌이나, 면석을 새로 장만하는 일로 시간만 지체되는 경우도 많을것입니다.
▼ 돈대 내부에서 보는 돈대문의 모습니다. 보기가 어색하지만, 이 정도로 복원해 놓은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돈대 문에는 문짝이 달려 있었으며, 문설주를 끼우던 홈과 빗장인 장군목을 걸런 홈도 있습니다.
▼ 무태돈대는 직사각형으로 길게 쌓여져 있으며, 성첩은 해안쪽으로만 복원이 되어 있습니다.
▼ 포좌 입니다. 이 정도의 크기면 불랑기포가 배치되었던것으로 보입니다. 포는 4좌가 있습니다.
▼ 포구의 방향은 석모도와 교동도 사이의 해협을 향하고 있습니다.
▼ 지금의 성첩은 원래의 성첩대로 쌓은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대로 된 성첩은 초지돈대의 성첩이 원래의 성첩모양으로 보입니다
▼ 무태돈대에서 바라보는 창후항의 모습입니다. 예전에 교동도로 가려면 여기 창후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지만 지금은 교동도로 들어가는 다리가 만들어져서 한산한 모습입니다. 앞에 보이는 산은 석모도의 상주산입니다.
▼ 무태돈대에서 바라보는 교동도입니다. 무태돈대는 포좌가 4구이며 모두 해안을 향하고 있습니다. 성첩은 해안쪽에만 있고 뒷쪽은 성첩이 없이 복원을 마친듯 합니다.
▼ 무태돈대에서 바라보는 좌측에는 석모도, 우측에는 교동도가 있습니다.
▼ 무태돈대 위에서 바라보는 석모도 입니다.
▼ 돈대는 평시에는 4명 정도 교대로 관측근무를 서다가 전투가 발생하면 50여명 정도가 돈대로 들어 온다고 합니다. 돈대내부에는 군사들이 기거할 수 있는 막사와 포탄이나, 화약을 보관 하던 창고가 있었습니다
▼ 무태돈대 앞바다는 고요하기만 합니다. 태초 부터 아무일이 없었던 것 처럼 말입니다.
▼ 다음은 강화군청에서 인용한 하늘에서 본 무태돈대의 모습을 올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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