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3층의 세계문화관 중국실은 황하에서 꽃핀 예술' 이라는 주제로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실입니다. 고대 문화를 대표하는 옥기와 청동기, 종교 신앙을 보여주는 도용과 불비상, 공예기술이 집약된 칠기와 도자기를 전시하여 시대별 특징을 나타내는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의를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명청 시대의 산수화, 화조화, 인물화 등의 작품을 전시하여 다채로운 중국 회화의 세계를 소개하였습니다. 더불어 휴게공간에는 명청 회화의 미디어아트 영상과 청대 학자의 방을 재현하여 당시의 미학적 품격과 취향을 생동감 있게 담아내었습니다. _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자료(사진포함)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용하였습니다
고대 중국 중국의 신석기 문화는 황허 강, 양쯔 강등 중국 전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국가가 형성되고 청동기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청동은 귀한 금속으로 권력을 상징했다. 다양한 청동제 제기와 무기가 제작되었다. 청동 제기의 표면에는 기하 무늬와 함께 괴수의 얼굴, 도철 무늬를 장식했다. 사람의 죽으면 혼백이 분리되어 혼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나 산에 깃들고 백은 육신과 함께 지하에 남는다고 여겼다. 장례를 후히 치르는 풍속이 유행하였으며, 망자를 위해 저택,가축 등 다양한 부장품을 매장했다. 불교 미술 후한대 불교가 중국에 들어왔다. 실크로드와 바닷길을 따라 승려가 들어오고, 경전의 번역에 이루어지면서 불교는 중국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남북조 시대에는 황실의 후원과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전국 각지에 대규모 사원이 조성되었다. 당대 불교는 황실과 귀족 뿐 아니라 사회 저변으로 확대되었다. 당송대 선종이 유행하고 원대 티벳 불교가 유입되면서 중국의 불교미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도자 도자기는 오래 전부터 중국을 대표하는 상품이었다. 시유도기의 오랜 전통과 가마의개선을 통해 자기를 개발하면서 중국의 도자 제작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송대 각지의 가마에서 특색있는 자기를 생산하였다. 경덕진은 북송 후기부터 양질의 청백자를 생산했다. 원대에는 코발트 안료를 사용한 청화백자를 개발하여 많은 양을 국외로 수출하였다. 명대 황실의 그릇을 제작하는 관요가 되면서 경덕진은 중국자기를 대표하는 생산지가 되었다. 명대 중기 이후 투채, 오채, 분채 등 새로운 장식기법이 개발되었다. 회화 육조 시대 이후 서예 및 회화 이론이 등장하면서 서화는 감상과 품평의 대상이 되었다. 오대와 북송시대에는 산수가 중국회화의중심 장르로 자리잡았다. 송대 도시 문화의 발달은 회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원대 황공망, 오진, 예찬, 왕몽은 후대 화가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명대 문인화가의 활동과 더불어 화원화가의 화조도도 유행했다. 동기창은 회화를 문인화 중심의 남종화와화원가 중심의 북종화로 구분하여, 이후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
박산향로(博山香爐) |
바다를 상징하는 둥근 받침대 위에 산 모양의 뚜껑을 덮은 동체부가 얹혀 있는 향로를 박산로(博山爐)라고 한다. 박산이란 이름은 향 연기를 피우는 부분이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데서 유래한다. . |
황유 향로(黃釉 香爐) |
중국동기 중 술그릇인 준(樽)의 형태를 하고 있는 녹유 단지이다. 원통형 몸통에 박산모양 뚜껑이 덮여 있고 동물모양 다리가 세개 달려있다. 뚜껑을 비롯하여 그릇의 안쪽까지 유약이 발라져 있는데 일부 박락되었다. 양쪽옆면에는 포수 2개와 이들을 중심으로 조각된 여러마리의 동물들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구름 무늬가 새겨져 있다. 뚜껑의 박산모양은 초기의 박산향로와 같은 산악문이나 동물문이 표현되지 않았으며 산세 역시 둥글게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 옥기가 발굴된 곳은 평안남도 석암리 9호 무덤이며, 시기는 낙랑시대(100년~300년)인데, 옥을 가져온 곳은 중국이었습니다.
▼ 돼지모양의 장옥은 안장자의 손에 쥐어 주던 옥입니다.
▼ 안장자의 입에 넣어 주던 함옥(含玉이며 모양은 마치 매미를 닮았습니다
▼ 안장자의 가슴에 놓아 주던 옥벽이며, 그 당시의 옥석(玉石)을 자르고 가공하는 기술이 꽤 높은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옥으로 만든 돌도끼인데, 안장의 무덤에 함께 넣어주던 껴묻거리입니다.
청동직문궤(곡식을 담는 그릇) |
‘궤[簋, Gui]’라고 하는 이 청동 그릇은 피[稷], 기장[黍], 쌀[稻], 수수[粱] 등으로 만든 음식을 담아 제사를 지내는 데 사용한 중국의 예기(禮器)입니다. 아가리가 밖으로 살짝 벌어진 불룩한 몸통을 굽다리가 받치고 있는 형태입니다. 목 부분의 넓은 띠에는 동물 머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연속해서 새무늬를 장식했습니다. 띠 아래에는 세로 줄무늬가 고르게 있어 그릇이 풍만해 보입니다. 굽다리에는 세로로 돌출선이 있고 이 선을 중심으로 역시 새무늬가 좌우 대칭으로 있습니다. 새무늬는 모두 머리에 깃이 있고 꼬리가 긴 형태인데 이후에 봉황무늬로 발전합니다. 몸통 양쪽에는 동물 얼굴이 장식된 손잡이가 세로로 달려 있습니다. 손잡이 아래에 귓불처럼 작은 갈고리 모양의 장식이 달려 있는데 이를 ‘수(垂)’라고 합니다. 이렇게 동물 모양 손잡이와 굽다리가 있는 궤는 상(商)나라 후기(기원전 13세기~기원전11세기) 때 유행했습니다. 그릇 안쪽에는 “추부정(醜父丁)” 이라는 금문(金文, 청동기에 새겨진 글자)을 새겼습니다. |
▼ 술을 담는 병
고기를 삶는 세발 솥 |
고기를 익히거나 담는데 사용한 제기입니다. 중국어로는 '띵'이라고 합니다. 형태는 아가리 양쪽에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려 있고 3개의 다리가 몸통을 받치고 있습니다. 다리 사이로 열을 가하여 안정적으로 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 전기까지는 깊은 타원형의 몸통에 송곳 모양의 다리였으나, 상대 후기부터 점차 몸통의 깊이가 얕아지고 원추형의 다리로 변화했습니다. 서주 중기부터는 몸통의 깊이가 얕아지고 동물굽 모양의 다리로 변하여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고기 삶는 세발솥은 천자, 제후 등 위정자의 권력과 신분을 나타낸 그릇이고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된 예기입니다. |
무덤을 지키는 괴수 도용 |
서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한 인면수신(人面獸身),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몸을 한 형상)의 형상이 기원전 2세기 한나라 때, 실크로드를 통하여 중국에 전래되었고 진묘수에도 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점차 발전되어 ‘수면수신(獸面獸身)과 ‘인면수신(人面獸身) 한 쌍의 진묘가 삼채로 제작되어 무덤에 부장되었습니다. 인면수신의 진묘는 얼굴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귀와 뿔을 매우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
말 도용 |
당대 초기 나라에서는 공납, 매매, 전쟁 등을 이유로 주변 여러 나라에서 5천 여 마리의 말 70여종을 수입하였습니다. 이 중 서역지방에서 수입된 아라비아계통의 말은 작은 머리에 다리가 가늘고 길어 주로 의장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덤에는 주로 삼채로 제작하여 함께 묻었습니다. 삼채는 8세기 당나라 때부터 제작한 도기로 태토에 함유된 철분으로 인하여 색이 변하게 되는 성질을 이용했습니다. 이 말도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수입된 코발트 안료를 사용한 보기 드문 예입니다. 우유빛의 유약과 근육을 매우 조화롭게 표현한 조형미가 돋보입니다. |
매를 든 인물도용 |
손에 매를 들고 사냥하고 있는 당나라 때의 인물 도용입니다. 이 도용은 북방민족의 옷인 호복을 입고 복두를 쓴 남장한 여성입니다. 매사냥은 당나라 여성들의 대표적인 야외 오락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깃을 양쪽 으로 열어젖힌 번령포를 입었고 허리에는 호풍의 여러 물품을 드리운 첩섭대를 둘렀는데 이는 돌궐의 의복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외래문화에 개방적이었던 당나라에서는 호풍이 이국 양식의 대명사로 여겨졌고 민간 및 여성들에게까지 매우 유행하였습니다. |
악기 연주하고 춤추는 사람 도용 |
한나라 때부터 악기를 연주하는 도용을 의장용으로 매장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런 의장용은 도용뿐만 아니라 벽화와 화상전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도용은 명나라 때 제작된 의장용입니다. 여덞 명의 의장용은 모자를 쓴 두 명의 남자, 큰 관모머를 한 두 명의 여자, 상투머리를 하고 피리 부는 세 명의 연주자, 박을 치는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줄무늬 옷을 입고 여자들은 갈색 앞치마 위에 외투와 긴 치마를 입은 차림입니다 |
누각 모형 |
한漢나라는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 풍속이 유행하여 무덤에도 다양한 껴묻거리(부장품)를 함께 묻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집, 부엌, 축사, 방앗간, 화장실 등 망자를 위한 건축 모형도 있습니다. 이 누각 모형은 4층이며 층마다 난간을 만들어 인물상을 배치하고, 지붕 처마 끝에는 4개의 꽃모양 장식을 부착했습니다. 이러한 누각 모형은 한대의 실제 건축 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신선 사상과 관련하여 죽은 자의 사후 영생을 기원하는 관념적 건축이라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
청화백자 길상무늬 납작병 |
병의 배 부분이 둥근 달처럼 볼록 튀어나와 편병이라 부릅니다. 배 부분에 보상화를 둘러싸고 있으며 꽃잎 하나 하나에는 길상무늬인 바퀴, 소라, 깃, 산, 꽃, 병, 물고기, 매듭이 그려져 있습니다. 몸체 바탕의 가장자리는 회문回文을 두르고 옆면은 넝쿨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장방형의 “건륭년제(乾隆年製:1737~1795)”라는 관지가 있어 청 건륭(乾隆)년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 인물 고사가 그려진 긴 목 항아리
- 백자청화인물도봉미존(白磁靑花人物圖鳳尾尊)
- 국적/시대중국 - 청
- 분류주 - 생활용품/가전 - 장식용구 - 화병
- 재질도자기 - 청백자
- 크기높이 89.3cm, 입지름 24.1cm
인물 고사가 그려진 긴 목 항아리 |
이 항아리는 산수를 배경으로 한 인물고사를 장식했는데, 가운데에 고관이 의자에 앉아있고 그 주변을 왕실의 관원.심판관.병사들이 둘러싸고 있다. 청대 청화백자의 백색은 그 어떤 것보다 희어야 하고 청색은 그 어떤 것보다 푸르러야 한다. 이 항아리 역시 이런 특징을 잘 살렸는데, 특히 붓으로 청화의 농담을 잘 표현하여 발색이 짙고 푸르다. 또한 꽃.나무들의 무늬를 평면적 형태가 아닌 입체적으로 구성하여 마치 한 폭의 회화작품을 보는 듯하다 |
소나무 대나무 매화무늬 항아리 |
청화의 발색이 청아하고 맑은 항아리입니다. 어깨에는 국화 넝쿨무늬, 가운데에는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세한삼우(歲寒三友)인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를 그렸다. 아래쪽 연꽃무늬는 원대에 만들어진 항아리에서 종종 보이는 특징입니다. |
인물무늬 법화자기 항아리 |
중국의 법화 자기는 점토 문양 안에 다른 색깔의 유약을 넣는 독특한 방법으로 만드는데, 이는 금속공예의 법랑珐琅 기법, 칠보七寶 기법을 도자기에 도입한 것입니다. 우선 표면에 점토문양 외곽선을 만들어 높은 온도에서 구운 뒤 문양 안에 감紺, 황黃, 청靑색 등의 유약을 칠하고 다시 낮은 온도에서 구워 냅니다. 이때 망간이 주재료인 진한 유색의 바탕 면과 원색으로 채운 점토 문양들 간의 강한 색채 대비로 입체감이 살아 감각적인 효과가 돋보입니다. 법화자기는 산시 성(山西省)에서 처음 만들어져 허난 성(河南省) 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제작되었으며 특히 명대 후기 경덕진요에서 크게 유행하였습니다. 경덕진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항아리에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말을 탄 관리가 시종을 데리고 가는 장면을 표현하였습니다. 항아리의 목 부분에는 구름무늬, 어깨에는 여의두如意頭무늬 속에서 피어오른 연꽃무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
매병(梅甁) |
강두홍유는 청나라 강희康熙(1662~1722) 연간에 유행한 붉은색 도자기 유약을 말합니다. 분홍색 바탕에 짙은 붉은색 반점이 있거나 짙은 붉은색 바탕에 옅은 붉은색 반점이 있는 붉은 콩과 색이 비슷하여 ‘강두홍유’라고 부르는데, 제작이 어려워 황실의 문방용구처럼 특별한 물품에만 사용했습니다. |
무덤을 지키는 괴수 도용 |
진묘수의 원래 기능은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죽은 자를 지키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도 안녕하기를 바라는 내세사상이 점차 발전하면서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겸하게 됩니다. 이 진묘수는 동물 형상에 갈기가 있어 귀신보다는 마치 집을 지키는 고양이 모습처럼 보입니다. 아직까지는 초기 진묘수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
은으로 장식한 화장품 칠그릇 |
여인들의 화장문화는 선진시대(先秦時代)부터 발달하였습니다. 한대(漢代)에는 서역에서 전해진 호분(胡粉)과 연지(臙脂)를 포함한 다양한 화장법이 유행하였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화려하고 섬세한 화장용구들이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이 화장품 칠그릇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 개의 작은 화장용품을 넣은 그릇을 화장렴이라 하며 보통 칠기에 색을 칠하고 금속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습니다. 내부는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어 아래에는 화장 재료와 족집게, 빗, 작은 가위 등을 담고 위에는 거울을 얹어 놓았습니다. 청동거울 꼭지 주위에 (淸冶銅華以爲鏡, 昭察衣服觀容貌, 絲組雜還以爲信, 淸光宜佳人(청야동화이위경, 소찰의복관용모, 사조잡환이위신, 청광의가인) 26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내용은 '구리로 거울을 만들어 옷차림을 밝게 비추고 용모를 단정히한다' 입니다. |
동자무늬 은제 주전자 |
은으로 만들고 문양의 일부를 도금한 요나라 주전자입니다. 항아리 형태의 풍만한 몸통에 비해 주구와 뚜껑이 작은 편입니다. 몸체 아랫부분에는 6개의 커다란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고, 윗부분에는 6개의 원형 안에 줄넘기를 하는 동자가 있습니다. 뚜껑에는 연꽃봉오리 형태의 꼭지가 달려있습니다. 손잡이는 연잎을 양쪽에서 말아 둔 것 같은 형태로 아가리와 어깨에 걸쳐 달려 있습니다. 주구 아래에 연꽃받침을 표현하여 흡사 꽃을 뚫고 주구가 솟아나는 듯합니다. 그 위에 잠자리를 붙여 놓았습니다. 다양한 주제를 한 주전자에 조화롭게 표현해 놓은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
바위와 국화(오창석(1844-1927))-중국 |
가운데에 큰 바위를 그리고 위에는 노란색 국화를, 아래에는 붉은색, 분홍색, 흰색 국화를 표현했다. 다양한 색깔의 꽃과 점으로 찍듯이 그린 잎사귀, 과감한 붓 자국으로 표현한 바위 등에서 전통 회화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던 오창석의 화풍을 알 수 있다. 꽃과 잎사귀에 비해 줄기는 가늘고 흐릿하게 표현했고, 바위로 화면의 위아래를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바위와 국화는 모두 장수를 상징한다. |
가을 숲에서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 / 오력(吳歷1632∼1718)-중국(청) |
기이한 모양의 산 아래 가을 숲이 우거져 있고 그 가운데 한 선비가 바위에 기대어 폭포를 바라보며 물소리를 듣고 있다. 묵정도인墨井道人 오력이 송나라 산수화가 거연巨然의 화풍을 따라 그렸음을 발문跋文에 적어 놓았다. 수묵화 본연의 간결한 묘사와 농담 표현이 어우러져 오력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
중국 학자의 서재를 재현한 반송재(伴松齋)라고 하는데, 벽면에는 독서루(讀書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 반송재에 모여 있는 각종 향로들입니다.
▼ 경태람 향로라는 처음 보는 용어를 가진 화려한 외모의 향로이며 용어는 겹사법랑 향로인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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