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문화관의 일본실에 전시된 일본의 문화재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전사(戦士)에서 통치자(統治者)로, 일본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 무사(武士)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말기, 강해진 사원 세력을 누르고 수도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고자 고용한 무사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무사는 처음에는 귀족에게 고용된 신분이었으나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중앙 조정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동시에 토지를 지배하며 점차 전국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결국 이들은 막부 체제를 탄생시키고 지배 계급이 되었다.

그러나 무사들은 무력만을 앞세운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흐름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전 지배 계층이었던 궁정 귀족들과는 다른 독특한 미적 감각으로 전통 예능, 다도, 회화, 공예, 도자 등에서 자신들만의 예술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예술은 무사가 '전사'라는 자아를 유지하면서 '통치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2021년 1월 새롭게 개편하여 개관하는 세계문화관 일본실에서는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킨 무사의 새로운 면을 바라볼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 칼과 갑옷 등 무사를 상징하는 무구와 함께 무사 계급의 후원으로 발전했던 노(能), 귀족 계급과는 다른 무사의 미학을 반영한 다도(茶の湯), 무사 계급의 여성이 혼례를 올릴 때 지참하는 마키에(蒔絵) 혼례 도구, 그리고 다이묘(大名)가 도쿠가와 쇼군(徳川将軍)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고급자기 '나베시마(鍋島)'를 전시한다.

칼을 든 전사이면서 교양을 갖춘 문화인이자 통치자였던 무사를 아는 일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여기에 인용된 자료는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원을 지키는 수호신 고마이누(狛犬)
일본 불교 조각의 대표적인 동물 도상 중 하나인 ‘고마이누(狛犬)’로 사자와 뿔이 달린 동물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자는 입을 벌린 모습으로, 뿔이 달린 동물은 입을 다문 모습으로 구분됩니다. 

고마이누 상은 불교가 일본에 전해지면서 무덤에 수호 사자상을 넣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후에 사찰과 신사 입구에 설치되는 것이 보편화되었습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한 쌍의 도상으로 성립되었고 13세기 후반 가마쿠라 중기부터 외형적 특징이 정립되면서 활발히 제작되었습니다. 이 고마이누 상은 가마쿠라 시대 불교 조각의 특징인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을 보여줍니다. 

특히 옥안玉眼(불교 조각에서 눈 위치에 수정을 박아 넣는 기법)을 감입해 부릅뜬 눈을 더욱 생생하게 재현했습니다. 조각의 바닥에는 고마이누 상으로는 드물게 쇼와(正和) 2년(1315년), 초유(朝愉) 등 제작시기와 제작자를 추정하게 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대일여래좌상(大日如來坐像)
대일여래(大日如來)는 밀교에서 중심이 되는 부처로, 진리를 드러낸 우주 자체를 상징합니다. 

일본에서는 밀교가 전래된 헤이안 시대 이후 각종 밀교의식이 성행했는데, 대일여래는 우주의 진리와 깨달음의 신앙 체계를 기하학적으로 시각화한 양계만다라(兩界曼茶羅)와 함께 중요한 존상으로 여겨지며 활발히 제작되었습니다. 

대일여래는 일반적인 부처상과는 달리 머리를 묶고 장신구를 걸친 보살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지권인(智拳印)은 금강계 대일여래의 대표적인 수인手印으로 진리를 상징합니다. 

이 조각상은 머리와 몸체, 팔을 별도로 만들어 조립하는 요세기즈쿠리(寄木造)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몸과 다리에 금칠의 흔적이 남아 있어, 나무 몸체에 옻칠을 하고 그 위에 금박을 덧붙이는 칠박(漆箔) 기법으로 장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옷의 주름 표현은 다소 형식적으로 처리되어 있어 후대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보여주지만, 정적이면서도 생기 있는 얼굴 표현은 14세기 무로마치 시대의 양식입니다.


관음보살(觀音菩薩)
둥근 청동 판에 두꺼운 부조로 구리 불상을 붙이고, 위쪽 양옆에는 사자 모양 금속 고리를 붙여 매달 수 있게 만든 관음보살상이다. 중앙에는 연꽃 대좌(蓮花臺座)에 앉은 불상이 있고 머리 뒤에는 넝쿨무늬의 둥근 빛 모양 조각이 있다. 

불상 좌우에는 꽃병을 대칭으로 배치했으며, 불상의 머리 위에는 천개(天蓋)를 설치했던 흔적이 있다. 둥근 청동 판은 일본 고유 신앙에서 신이 머무는 장소인 거울을 의미한다. 

이러한 청동 판에 관음보살 조각을 붙인 이 작품은 일본 고유 신앙과 외래 종교인 불교가 융합한 신앙인 신불습합(神佛習合)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러한 작품은 사찰이나 신사 내부에 걸려 숭배되었다.


두꺼비를 뜻하는 말인 ‘가와즈’가면은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오고눈두덩이 움푹 패여 있으며, 이마에 젖은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물에 빠져 죽은 남성의 혼령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여, <후지토(藤戶)>, <아코기(阿漕)>와 같이 익사한 자의 혼령이 등장하는 극에서 주로 사용된다. 눈이 붉게 충혈되고 눈썹과 수염이 솟구쳐 있는 것이 특징인 가면으로, 젊은 무사의 혼령 역할에 사용된다. 특히 ‘아야카시’는 바다에 나타나는 괴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기때문에, 후나벤케이(船弁慶)와 같이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극에서 자주 사용된다.
아쿠조는 이국풍으로 조각한 노인 가면입니다. 코에 혹이 있어 코가 딸기처럼 붓는 병을 뜻하는 ‘하나코부’라고 불립니다.  인간을 초월한 신이나 이국異國 인물과 같은 역할에 씁니다. 노 연극 『동방삭東方朔』, 『나니와(難波)』, 『다마노이(玉井)』, 『시라히게(白鬚)』 등에 사용됩니다.


























아쿠조는 이국풍으로 조각한 노인 가면입니다. 코에 혹이 있어 코가 딸기처럼 붓는 병을 뜻하는 ‘하나코부’라고 불립니다.  인간을 초월한 신이나 이국異國 인물과 같은 역할에 씁니다. 노 연극 『동방삭東方朔』, 『나니와(難波)』, 『다마노이(玉井)』, 『시라히게(白鬚)』 등에 사용됩니다.

























 

17세기에 일본에서 노(能) 공연을 할 때 쓴 가면입니다.  ‘노’는 소나무를 그린 무대에서 일본 역사에 나오는 영웅담이나 옛이야기를 공연하는 가면 노래극을 말합니다. 가면을 쓴 배우들이 피리와 북소리에 맞추어 매우 절제된 동작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춤을 춥니다. 고히메는 젊은 여성을 연기할 때 쓰는 가면입니다. 부푼 볼과 길고 가는 눈매, 살짝 올라간 붉은 입꼬리는 젊은 여성의 생기를 나타냅니다. 위에서 보면 웃는 얼굴이지만 아래에서 보면 슬픈 얼굴로 보이는 등 각도에 따라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가면 안쪽에는 이 가면을 만든 장인의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가는 볼과 길고 날카로운 눈매, 오똑한 콧대를 지닌 온나(女) 가면입니다. 다른 젊은 여성 가면에 비해 우아한 기품을 지닙니다  『하고로모(羽衣)』,『구마노(熊野)』, 『에구치(江口)』에 등장하는 천녀天女나 여신女神 등 고귀하고 신성한 여성 역할에 사용됩니다. 가면의 안쪽에는 ‘天下一近江’라는 소인을 찍었습니다. 이는 노 가면을 만든 고다마 미쓰마사(兒玉滿昌, 1611~1704)의 도장입니다.




 

나이가 많은 여성 역할에 사용하는 온나(女) 가면입니다. 노 연극 『다카사고(高砂)』의 노파, 『오바스테(姨捨)』의 늙은 여자의  넋 등 다양한 극에 사용됩니다.


한냐는 귀신 가면으로서 질투와 원한이 가득한 여자 얼굴을 나타냅니다. 뿔 두 개, 금속으로 덮어 표현한 빛나는 눈, 흩어진  머리카락과 옆으로 찢어진 입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팔자 눈썹에서 깊은 원한에 감추어진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고독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시히메는 질투로 원한을 품은 여자 얼굴을 나타냅니다. 노 연극 『가나와(鉄輪)』에서는 자신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함께한  남편을 원망하며 신에게 기도해 귀신으로 변한 여자 역할에 씁니다. 이 밖에 『하시히메』, 『야만바(山姥)』 등의 연극에서도 씁니다. 입을 살짝 벌리고 불만이 많은 표정이며, 작은 눈이 가늘게 찢어져 있다. 



 

눈썹을 모아 감아올려 앞을 노려보면서 입 끝을 뺨까지 끌어 올린 귀신 얼굴입니다. 이마와 두 눈썹 사이에 큰 주름을 잡고 눈에는 금으로 만든 고리를 박아 넣었으며 눈썹과 콧수염 끝이 휘날리게 표현했습니다. ‘시카미’라는 가면 이름은 ‘얼굴을 찡그리다(시카메루)’라는 말에서 생겨났습니다. 노 연극 『쓰치구모(土蜘蛛)』, 『오에야마(大江山)』, 『라쇼몬(羅生門)』, 『모미지가리(紅葉狩)』등에 씁니다. 지옥의 귀신 역에 사용되는 가면입니다.








도카이도 53역의 풍경과 그곳에 전하는 이야기(東海道五拾三次)
도카이도(東海道)란 에도와 교토를 잇는 태평양 연안의 간선도로로, 17세기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중에 53개의 역참을 두어 정비하였다. 오늘날까지 도쿄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신칸센이 지나는 주요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주변에 후지산 등의 명승지가 많아 예부터 그림의 소재로 자주 이용되었는데, 특히 덴포 3년(1832)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가 호에이도(保永堂)에서 출판한 풍경 판화<도카이도 54역의 풍경(東海道五拾三次)>이 많은 인기를 모았다. 

이에 힘입어 도카이도 53역의 주변 경치 경치뿐만 아니라, 각지를 배경으로 한 가부키의 한 장면, 역사적 사실 혹은 전설 등을 그린 시리즈도 유행하게 되었다. 

전시된 <도카이도 53역의 이야기들(東海道五拾三對)>은 히로시게와 우타가와 구니요시(歌川国芳), 우타가와 구니사다(歌川国貞)가 함께 그린 작품이다. <출처:국립중앙박물관>

 

▼ 도카이도53차는 (東海道五拾三次) 에도의 니혼바시(日本橋)에서 시작하여 시나가와(品川)을 거쳐 교토의 가모가와(鴨川) 삼조대교(三 大橋)까지 모두 53개역의 풍경을 판화로 그린 그림입니다.


겐지모노가타리 화첩(源氏物語畵帖)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11세기 초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라는 여성 작가가 창작한 일본의 대표적인 장편 문학 소설로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히카루 겐지(光源氏)라는 귀족 남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은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 궁정(宮廷)이 그 배경입니다. 모노가타리(物語), 즉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감상하는 방법은 『겐지모노가타리』 본문에도 등장할 정도로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야기 감상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겐지모노가타리』를 첩(帖), 회권(繪卷), 병풍(屛風) 등 다양한 형식의 그림으로 그린 것을 겐지에(源氏繪)라고 부릅니다. 겐지에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창작된 시기부터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8)에 이르기까지 활발히 제작되고 감상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겐지모노가타리 화첩>

국립중앙박물관 일본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겐지모노가타리 화첩>은 총 54첩의 『겐지모노가타리』를 첩 당 하나의 그림과 하나의 설명문으로 구성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즉 54장의 그림과 각각의 그림에 대한 고토바가키(詞書)로 불리는 설명문 54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겐지모노가타리 화첩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방식입니다. 

그림은 아래와 윗부분이 금빛 구름으로 감싸여 있고, 나머지 부분에 채색한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물의 복식과 풍경의 묘사가 매우 세밀하고 정교한 것이 특징입니다. 

고토바가키는 온갖 다채로운 풀과 꽃이 금으로 그려진 화려한 종이에 쓰였습니다. 고토바가키의 맨 오른쪽에는 각 첩의 제목이 쓰여 있어 어떤 첩의 내용인지 알게 해줍니다.


▼ 일본의 전통혼례 도구들

 

▼ 19세기 일본여성이 특이하게 이빨을 검게 물들이는 도구라고 해서 자료을 찾아 보았습니다

접시꽃무늬 모란 당초 마키에 미미다라이・와다이・누키스
19세기 일본 상류층 여성들이 이를 검게 물들일 때 썼던 화장 도구입니다. 이를 검게 물들이는 것은 에도 시대 귀족과 무사 가문의 부인들이 갖춰야 하는 중요한 몸가짐이었습니다. 오배자 가루에 철분을 더해 만든 검은색 물감으로 이를 검게 물들였습니다. 

오배자는 붉나무에 생긴 혹 모양의 벌레집인데 잉크·염료 따위의 재료로 쓰입니다. 이를 물들이는 검은 액체를 바를 때 주위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대야 양쪽에는 귀 모양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이 대야는 입이나 손을 씻을 때도 썼습니다.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둥근 통은 대야의 높이를 조절하는 도구입니다.

고위 무사의 딸이 혼례때 타고 간 가마 -  온나노리모노(女乘物)
검은 옻을 칠하고 금가루를 뿌리는 마키에 기법으로 벗풀과 덩굴무늬를 그려 넣은 가마이다. 벗풀무늬는 지금의 히로시마시에  근거지를 두었던 다이묘 모리(毛利) 가문의 상징이었으므로 이 가문의 여성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마키에 기법으로 가문의 상징과 덩굴무늬를 넣은 가마는 상류 무사 계급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가마 안쪽은 금색 바탕 위에 화려하게 색을 칠한 꽃과 새 그림으로 꾸몄다. 



 



일본 근대조각의 거장 다카무라 고운(高村光雲, 1852~1934)이 만년에 제작한 불교조각 <기예천(技藝天)>입니다.기예천은 불교 세계에서 ‘기예’를 관장하는 천녀(天女)입니다.


▼ 일본 근대 미술품

 

건칠 꽃무늬 단지
아카쓰카 지토쿠는 전통 칠기 기법에 회화적 기술을 적용하여 일본 근대 칠기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인물입니다. 이 작품은 몸체의 볼록한 형태가 돋보이는 건칠 단지로, 뚜껑부터 바닥에 이르기까지 전면에 가는 주름을 표현하고, 각 줄마다 여섯 잎의 작은  꽃무늬가 서로 교차하게 배열했습니다.

이 단지는 지토쿠가 사망한 해에 개최된 제1회 개조제전(改組帝展)에 미완성인 상태로 출품되었다가 그의 아들이 이왕가 미술관에 매도했습니다. 미완성작이지만 금속 틀 위에 건칠 기법으로 주름을 표현하는 고도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으며 지토쿠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의미가 깊습니다.


꽃병
화초 문양의 은선銀線을 세공하여 바구니의 형태를 만들고. 그 안에 녹인 유리를 불어넣어 제작한 꽃병입니다. 바깥쪽은 선명한 노란색, 안쪽은 하얀색이고 주둥이에는 은銀 장식을 둘렀습니다.

유리보다는 은의 유려한 세공과 교묘한 조합이 매우 뛰어납니다. 본래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금彫金 기법을 배운 유리 공예가였던 작가의 기술 경력이 잘 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닭 모양 주둥이 꽃병
일본에서 만든 특이한 모양의 꽃병입니다. 12각형 몸체에 병목이 길고 주둥이는 닭의 머리처럼 만들었습니다. 굽에서부터 뚜렷하게 각이 진 형태로 올라오다가 윗부분에서 점차 각이 완만해져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 되었습니다. 

닭의 몸처럼 보이는 주둥이 곡선은 닭의 꼬리로 표현된 손잡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무늬를 넣지 않아 투명하고 담백한 색채의 백자지만 목 부분에는 분사기로 푸른색 안료를 뿌려 은은하게 색과 문양이 퍼져 나가는 효과를 주었습니다.

훈염(薰染) / 고토 세이치 (藤淸一, 1893~1984) / 1941년 / 1980년 입수
가지런히 무릎을 꿇고 가는 몸체를 세워 턱을 위로 향하고 두 눈은 살짝 감았다. 하늘을 향한 얼굴 위로 나부끼는 날개옷 표현이  경쾌하다. 양손은 향로를 받쳐 들었다.

'훈염'이란 본래 '향기가 스며들다'라는 의미인데, 이것이 변하여 '좋은 감화를 받다'라는 뜻이 되었다. 만든 이인 고토 세이치는 쇼와 시대, 1926-1989) 전기를 대표하는 작가로, 왼쪽에 전시 중인 <기예천>의 작가인 다카무라 고운(1852-1934)에게 목조를 배웠다.

'훈염'은 현재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인 <마야부인과 천인상>의 천인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무사(武士), 일본 문화와 예술의 후원자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92) 말기, 강해진 사원 세력을 누르고 수도 교토의 치안을 유지하고자 고용한 무사들이 중앙 정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무사는 처음에는 귀족에게 고용된 신분이었으나 강한 무력을 바탕으로 중앙 조정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동시에 토지를 지배하며 점차 전국으로 세력을 넓혀 나갔다. 결국 이들은 막부 체제를 탄생시키고 지배 계급이 되었다.

그러나 무사들은 무력만을 앞세운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 문화와 예술을 후원하며 각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흐름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이전 지배 계층이었던 궁정 귀족들과는 다른 독특한 미적 감각으로 전통 예능, 다도, 회화, 공예, 도자 등에서 자신들만의 예술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예술은 무사가 '전사'라는 자아를 유지하면서 '통치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이루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2021년 1월 새롭게 개편하여 개관하는 세계문화관 일본실에서는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킨 무사의 새로운 면을 바라볼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 칼과 갑옷 등 무사를 상징하는 무구와 함께 무사 계급의 후원으로 발전했던 노(能), 귀족 계급과는 다른 무사의 미학을 반영한 다도(茶の湯), 무사 계급의 여성이 혼례를 올릴 때 지참하는 마키에(蒔絵) 혼례 도구, 그리고 다이묘(大名)가 도쿠가와 쇼군(徳川将軍)에게 바치기 위해 만든 고급자기 '나베시마(鍋島)'를 전시한다.

칼을 든 전사이면서 교양을 갖춘 문화인이자 통치자였던 무사를 아는 일은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바르게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 일본도의 크기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우치가타나(うちがたな [打刀])
전국 시대 이후에 일본 칼의 주류가 된 우치가타나는 칼집 그대로 허리춤에 끼워 칼날을 위로 향하게 하여 찹니다. ‘가타나’라고 부르기도 하며, 날 길이는 60cm 이상입니다.


와키자시(脇差)
19세기에 일본 무사들이 차고 다닌 칼입니다. ‘와키자시’라고 하며, 칼날 길이가 55cm 정도입니다. 와키자시는 80cm 정도 되는 큰 칼에 곁들여 허리춤에 차는 작은 칼입니다.

일본 무사들은 허리춤에 칼을 차고 다니며 자신의 신분이 무사임을 대외적으로 알렸습니다. 칼이 처음부터 무사 계급을 상징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본 무사들은 주로 활을 사용했습니다.

칼은 무사뿐만 아니라 농민과 승려도 쓰는 무기였습니다. 그러다가 16세기 후반에 사회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무사만 칼을 지니고 다닐 수 있게 하면서 칼이 무사 계급을 대표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 현대의 차 도구들

 

▼ 차를 마시는 방(다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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