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사람들은 수원에 있으면 수원성이지, 왜 화성이냐?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인터넷에서도 거의 대부분 "수원성"이라 부르는데 무척 안타깝고 꼭 "화성(華城)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번에 그 배경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새 수원의 이름은 화성 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수원의 화성 이야기는 화성 연구회에 있는 자료를 전적으로 인용하였으며 자세한 것은 다음의 사이트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 염상균 선생의 화성이야기

※ 유완종 박사의 화성축성과 배경

정조는 1789년 사도세자의 묘원(영우원)을 양주군 배봉산에서 수원부의 뒷산(화산;현재 웅건릉 뒷산)으로 옮기고 이름을 현릉원이라고 바꾸고.1790년에는 갈양사라는 옛절터에 새로이 절을 창건하고 용주사라 이름하고 아버지의 넋을 달래줍니다.

 

그리고 화산 지역에 있던 수원읍치(고을 관아)는 수원 팔달산 밑으로 옮기고 수원부의 이름을 바꿔서 화성유수부로 승격시켰습니다. 이후 부터 오랫동안 화성이라 칭하다 고종 32년 부터 수원군으로 불리렀으며 현재까지 그 지명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정조는 지금의 화성행궁 일대에 화성유수부를 설치하고 곧이어 성곽을 축성 하면서 계획도시 "화성"을 만들었습니다. 즉 성곽을 포함한  계획도시전체를 화성이라 하였으나, 현재의 지명이 "수원시"라는 지명으로 불리우더라도 남아있는 성곽과 시설 전체는  "화성"이라 불리우는 것이 마땅하고,또한 행궁도 수원행궁이 아닌 "화성행궁(華城行宮) 이라고 불러야 하는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화성시는 1949년 8월 수원읍이 시로 승격되고 여기에 편입되지 않은 나머지 지역을 화성군으로 칭하면서 오늘날  ‘화성시’로 불려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수원은 엄밀하게 말하면 화성이요, 화성은 예부터 수원이었으니 수원과 화성은 이름이 바뀐 셈이됩니다. 

 

 

여기서 화성(華城)이 생기기전, 원래의 수원은 그 위치가 안녕리 일대(현재 용주사 일대, 수원대학교,경성고등학교 주위) 인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아직도 그때 있었던 토성(수원고(古)읍성이라함)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삼국시대때 부터 수원부가 현재 용주사 일대에 있는것과 동쪽의 독성산성(또는 독산성)과 관계가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년대별로 수원의 지명변천 과정이며, 1793년(정조17년 이전의 수원은 현재 화성시 안녕리 일대입니다)

 







마한 (모수국) - 철기문화 발전 2,000년전 여기산 선사유적지
백제 1,600 - 2,000년전 오목천동 고금산 고분
고구려(장수왕) 475년  매홀
신라(경덕왕) 757년 수성군
고려(태조, 원종, 공민왕)  918년 수주,수원도호부,수원부
조선(태종) 1413년 수원도호부
조선(정조 17) 1793년 화성(華城)유수부 승격
한말(고종 32) 1895년  수원군
일제  1914년 3.01  수원군(남양군 · 의왕시 흡수)
대한민국 1949년 8.15 수원시 승격
     



 

 

※수원과 화성이라는 지명의 혼돈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 의한 것이므로 꼭 알아야할 필요성이  있어서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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